같은 영화 다른 생각 - 인어공주
보스톤코리아  2008-05-12, 16:08:06 
인어공주  

2004년 작
감독: 박흥식
주연: 전도연, 고두심, 박해일

사람들은 목록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 리스트’라고 하면서 이것저것 분류해서 순위를 매기지요. 이를테면 ‘올해의 인물 베스트10’, ‘영화 흥행 순위’, ‘베스트 드레서’,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 들’ 대충 이런 게 있겠지요. ‘인어공주’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리스트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나영이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리스트를 작성하면 어떤 것들이 목록에 오를 수 있을까요?
하나, 날이면 날마다 일방적으로 퍼부어대는 엄마의 악다구니 쓰는 소리.
둘, 늘 미안함에 고개 떨군 아버지의 뒷모습.
셋, 목욕탕 때밀이인 엄마가 가져오는 팔다 남은 삶은 계란.
넷, 엄마가 밖에서 주워오는 낡은 가구들.
다섯, 수도 없이 자신에게 달래듯이 되뇌었던 ‘○○는 나중에도 할 수 있다’란 말.

영화에서 우체국에 다니는 나영이는 억척스런 때밀이 엄마와 착해빠졌으나 무능한 아버지를 보면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합니다. 한 번도 행복이란 걸 느껴볼 겨를 없이, 지긋지긋한 현실만이 반복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나영이가 엄마의 고향에서, 결혼 전의 엄마와 아버지를 만나본 후에는 더 이상 이런 것들 때문에 슬퍼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자식은 부모를 보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왜 저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것일까 탄식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자식은 알지 못합니다. 보여 지는 것 이면에 감춰져 있는 부모만의 역사를 말이죠. 자식은 자신이 본적 없는 그들만의 세월을 감히 짐작도 못합니다. 결국에는 ‘자식도 부모가 되어봐야 알 수 있다’는, 정말이지 식상해서 더 이상 되풀이 할 필요도 없는 이 말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불변의 진리로 다가 오는 순간입니다.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도 살아봐라.’ 산다는 것이 우리가 짐작하는 것만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살아본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죠. 그래서 자식은 부모를 존경할 수밖에 없나봅니다. 앞으로 자신들이 살아가야 할 그 인생을 부모는 먼저 살아내고 꿋꿋하게 딛고 서서 자식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니까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라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잘 살아낸 것만이 장할 뿐입니다. 우린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나 지금까지 잘 살아낸 시간에 대해 칭찬을 아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또 앞으로 잘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한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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