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망과 치매 그리고 가족
보스톤코리아  2008-05-26, 23:23:36 
"얘, 나는 정말 두렵다."
"혹여, 늙어서 다른 병도 아니고 '치매'에 걸리면 자식도 못 알아보고, 엉뚱한 짓을 할까 두렵다" 몇 년 전, 시어머님께서 지나는 얘기로 들려주셨던 얘기다. 그때는 별스럽지 않게 지나쳤었는데 문득, 엊그제 어머님의 이메일을 보면서 다시 떠올려 보았다. 한국에서 몇 년 살고 싶으시다며 훌쩍 두 분이 한국에 가신지 벌써 3년이 흘렀다. 당신들은 한국생활이 편안하시다고 하지만 가끔 우리(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들은 어른들의 손길이 그립고 아쉽기만 하다.

며칠 전, 낯선 이름의 이메일이 하나 날아들었다. "누구지?"하고 편지함을 열어보니 한국에서 시어머님께서 보내신 메일이었다. 올해 연세로 만 72세의 할머니(시어머님)가 며느리에게 보내신 메일은 가히 감동이었다. 또박또박 적으신 글이 왜 그리도 고맙던지, 물어오신 안부가 통화하며 나누던 느낌보다 더 강하게 마음에 남았다. 때로는 글이란 것이 마주 보며 나누는 얘기보다 더 깊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서로에게 거리에 대한 안도감 내지는 편안함이 있기에 하고 싶은 얘기를 더 길게 나눌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딸아이가 6월 초에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다. 그 손녀딸 졸업식에 참석하시려고 오신다고 하시며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우리 집 할머니와 손녀딸의 관계는 유독 진한 사랑의 특별한 관계이다. 연년생으로 아이 셋을 낳아 기르는 며느리가 안타까워 손녀딸을 거의 몇 년 동안을 키워주셨다. 물론, 그 손녀딸이 예뻐 놓아주시질 못하신 일일 게다. 어려서 딸아이가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따르고 좋아해서 엄마인 나는 내심 걱정을 했었다. 그것도 잠깐 딸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니 엄마를 따르고 좋아하니 얼마나 다행스럽든지 모른다. 헌데, 손녀딸을 유난히 예뻐하시던 할머니(시어머님)께서는 서운한 눈치를 여러 번 보이신다. 눈치 있는 어른이야 눈치껏 한다지만, 눈치를 모르는 아이야 제 마음 내키는 대로이니 가끔 할머니의 그 섭섭함을 알기나 했을까. 이제는 대학을 앞둔 딸아이에게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손녀딸과 딸'의 미묘한 관계(여자의 질투)를 설명하면 딸아이가 재미있다고 깔깔거린다.

엊그제 메일을 통해서 "얘야, 며칠 있으면 만나겠구나! 헌데, 이제는 혼자 여행(움직인다는 것)이 두려운 마음이 드는구나!" 하시는 그 편지를 보며 오래전 들려주셨던 "얘, 나는 정말 두렵다... 혹여, 늙어서 치매에 걸릴까?" 하시던 말씀과 함께 나의 마음에서 오버랩되어 며칠 동안 남았다. 그래, 나도 저 어른의 나이가 되면 저런 걱정을 할 거야. 참으로 고마웠던 것은 시어머님이 며느리에게 솔직하게 표현하며 나눌 수 있는 '고부간의 대화'가 고맙고 감사했다. 늘 자식과 손자 손녀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정성을 아끼지 않으셨던 그 마음을 어찌 잊을까. 언제나 부족한 며느리를 감싸주시느라 힘드실 때도 많았을 시어머님의 깊은 사랑이 고마운 날이다.

몇 년 전, 가까이 지내는 아는 분의 시어머님께서 '치매'로 고생을 하고 계셨다. 지금은 아니 계시지만 그 어른을 생각하면 많은 깨달음을 얻곤 했었다. '치매에 걸린 한 시어머니와 한 며느리'를 곁에서 바라보면서 때로는 눈물도 흘렸고 그 속에서 깊은 사랑과 행복을 배웠다. "애기 엄마, 아이가 몇이에요?"하고 물으시는 치매에 있는 어른의 물으시는 안부가 감사했다. "네, 아이가 셋이에요."하고 답을 드리면 영락없이 또 뒤돌아서서 또 물어오신다. 그분의 물으시는 그 '물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물어오시는 그 말씨와 태도가 어찌나 곱고 아름답던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래, 나이가 들어 생각하지 못했던 병도 생기고 그 와중에 노망 아닌 '치매'의 병도 생길 줄 그 누가 알았을까. 그 해맑고 깨끗한 노인이 젊어서 '치매'라는 것을 떠올리기나 했었을까

그 누구도 모를 일 앞에 영영 젊을 것 같은 염치없는 기분은 어디까지 일까. 그때 깊은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다. "그래, 제대로 잘 살아야지" 하고 말이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내 속의 나쁘고 못된 습성이나 성품들마저도 감추고 보이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울까. 하지만, 내가 혹여 정신을 놓았을 때(치매)의 상상을 해보라. 나의 못된 습관과 성격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쑥불쑥 쏟아져 나온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 어른을 만나면서 마음에서 나만의 고요를 만나고 싶어졌다. 그 치매 노인(어른)을 곁에서 뵈면서 내가 얻은 깊은 고요의 시작이었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와 곁에서 함께 나누는 며느리의 아름다운 모습은 내게는 큰 감동이고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어찌 어려움이 없었을까. 그 시간이….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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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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