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04회
보스톤코리아  2011-06-27, 14:56:43 
책 선물을 받았다. 선물이란 늘 상대방에게 기쁨과 행복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 선물이 어떤 것인가이기보다는 선물 그 자체, 선물을 준 이의 마음이 고맙고 감사해서일 게다. 그 어떤 선물보다도 귀하고 값진 선물은 책 선물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5여 년 전 큰 녀석이 운동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동네의 병원에서 보스턴 시내의 병원으로 헬리콥터를 타고 옮겨졌던 그때쯤이었을 게다. 자식의 아픔과 고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란 참으로 형용할 수 없는 가슴 찢어지는 고통이다. 누구나 상대방의 고통을, 그 다급한 상황에 있어보지 않고서야 그 아픔들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이 무렵 병문안을 위해 찾아왔던 교회의 젊은 전도사가 전해주었던 선물이 다름 아닌 박완서 선생의 자전적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였다. 박완서 선생의 많은 작품 속에는 전쟁에 대한 처절한 아픔과 고통 그리고 상처들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크든 작든 간에 자신의 아픔과 고통이 제일 크고 아프다고 느낀다. 하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의 처절한 아픔과 고통이 내 가슴으로 다가와 치유되기도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간에 예술은 그 어떤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힘이.

"박완서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후속편 150만 부 돌파 기념, 출간 13년 만에 양장본으로 새롭게 출판되었다. 이 책은 작가가 전적으로 기억에 의지해 쓴 자전적 소설로 작가가 스므 살의 성년으로 들어서던 1951년부터 1953년 결혼할 때까지의 20대를 그렸다. 예민하고 감수성이 강한 스므 살의 작가가 전쟁이라는 야만의 시간을 견디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눈물겹게 그려진다. 작가는 1950년대 당시의 거리풍경과 상황,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한 아름다움으로 복원했다."

박완서 선생의 작품을 통해 한국 전쟁에 대한 아픔과 처절하고 애절한 가슴 저 밑바닥에 응어리진 앓이를 느끼게 한다. 전쟁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으며, 그가 문학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한국 전쟁과 박완서 선생의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혼불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유년의 뜰을 서성이면 늘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는 전쟁에 대한 당신의 기억들을 하나 둘 꺼내어 늦은 밤이면 소설처럼 들려주셨다. 그 얘기가 어린아이에게 즐거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얘기들이 지천명을 오르는 길목에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우"로 시작된 작가의 말을 통해 지금의 현실과 내일을 생각하며 어쩔 수 없는 자신의 과거 속에서 또다시 아픔을 달래는 흐려지는 작가의 말은 가슴 아픔으로 남았다. 그가 살아낸 세월은 흔하디흔한 개인사에 속할 터이나 펼쳐보면 무지막지하게 직조되어 들어온 씨줄 때문에 그가 원하는 무늬를 짤 수가 없었다고 고백하며 동시대를 산 누구나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고, 현재의 잘사는 세상의 기초가 묻힌 부분이기도 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펼쳐 보인다는 박완서 선생의『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서문에 남긴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우".

"올해 초 타계한 박완서 작가는 바로 자신의 PX 경험담을 바탕으로 데뷔작 『나목(裸木)』(1970)을 썼다. 이 소설에 나오는 화가 옥희도는 박수근 화백을 모델로 한 것이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옥희도의 그림 '나무와 여인'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박 화백의 실제 작품으로, 지난해에 열린 그의 45주기 회고전에 전시되기도 했다.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이렇게 그림 속 나무를 묘사하며 박 작가는 옥희도가, 즉 그 모델이 된 박 화백이 나목과 같다고 했다."

유월을 맞으며 친정아버지가 많이 그리운 달이었다. 문득 내 아버지를 떠올리며 쉰둥이 막내딸에게 들려주시던 피리 소리와 속으로 흥얼거리며 당신의 恨(한)을 풀어내셨던 唱(창)의 여운이 더욱 생생하게 내 귓전에 머물렀다. 그리고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시던 전쟁 이야기가 쉰둥이 막내딸에게 남은 아버지의 기억이다. 전쟁에 대한 얘기를 떠올리려니 박완서 선생을 비켜갈 수 없어 오래전 선물 받아 읽었던 책『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다시 펼쳐보았다. 전쟁의 비참한 시대를 겪으며 20대 여린 감성에 닿은 아픔들이 가슴에 남은 상처들이 내 가슴에 파고든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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