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보리밥의 진미
보스톤코리아  2006-07-08, 00:13:20 
홍순영 (한미역사연구소 위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차 협상이 순조롭게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한미 양국은 첫 마남에서부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분위기 속에 회담이 부드럽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또  FTA협상에 반대하는 한국 농민들이 미국측의 쌀시장 개방 요구에 반대하기 위해 미국 워싱톤 현지까지 달려와서 시위를 벌였으나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큰 마찰 없이 끝냈다고 하니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농업국이었던 한국이 선진 공업화를 이루면서 쌀을 비롯 일체의 농산물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해 먹고 사는 나라가 되어 수입해 쌓아둔 쌀이 남아돌아 배고픔을 겪는 북한에 무려 100만톤 이상의 쌀을 퍼주고도 남아돌아 가축의 사료로 전용되고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려웠던 지난 시절 우리민족은 먹을 식량이 없어 초근목피로 배고픔을 견뎌내며 보리 싹이 피어나기만을 한숨쉬며 기다리던 보리고개를 언제 겪었느냐고 지난날의 배고픔을 쉽게 잊어버리고 풍요의 자만속에 배부름을 자랑하는 나라가 한국이고 보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의 실체를 오늘의 한국인으로부터 보는 것 같다. 얼마전 어느 본국 지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이 보리타작을 실습하는 장면이 사진과 함께 실린 신문기사를 보고 본국의 농촌에선 요즘 모내기와 함께  보리베기 일로 한참 일손이 바쁠 때가 지금임을 떠올려 봤다. "포아풀"과 식물인 보리는 서아시아가 원산지로 대맥(大麥)이라 부르며 보리를 도정(搗精)한 것이 보리쌀이다. 이런 보리쌀은 어려웠던 지난 시절 식량이 떨어져 배고픔을 겪어야 했던 우리네 부모들이 허기진 배로 4,5월 긴긴해 보리 싹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던 애절한 한때를 우리는 보리고개, 맥령(麥岺)이라 불렀다.
이른 새벽 까치새끼 울음소리에 깬 농부들의 일손은 논두렁 밭두렁을 고르는 일을 시작으로 한나절 보리베기 일로 구슬땀을 흘릴 때가 바로 지금이다. 보리베기 일이 끝나면 이내 보리타작이 시작되는 7,8월로 접어든다.
보리타작이야말로 뙤약볕이 내리쬐는 타작마당의 도리깨질로 숨이 틀어 막힐 듯 고된일이며 비지땀 속에 먼지와 따가운 보리가랭이가 묻어 괴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 보리를 타작하는 일이다. 그래서 보리타작은 복더위 속에서도 논에 김매기와 함께 연중 농사일 가운데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넓다란 타작마당에 황금빛으로 물든 보리단을 마당 가득히 깔아 놓고 목도리깨를 쥔채 앞사람의 연입소리에 따라 흥겹게 부르는 타작의 노래 소리 또한 쉴줄을 모를때다. 모든 가락이 그렇듯 타작의 노래 소리야말로 먼데서나 가까운데서나 듣기에도 좋으며 애잔한 가운데서도 한가닥 구슬픔이 담긴 가락은 지난날 우리네 농촌의 애환을 그대로 읊어낸 특색있는 노래 가락임에는 틀림이 없다. 힘든 타작일이 끝난 저녁에는 남포불 심지를 돋으며 집앞 개울가에 나가 찌들은 땀과 먼지를 말끔이 씻고서야 저녁상을 받게 된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햇보리 밥을 그릇 가득히 담았어도 순식간에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구수한 햇보리 밥의 진미야말로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그 맛을 모를 일이다. 햇보리 밥엔 역시 된장찌개나 싱싱한 열무김치가 곁들여야 제 맛이 난다. 질그릇 주발에 끓는 된장찌개를 먹는 맛도 일품이거니와 삶은 호박잎에 싸서 먹는 맛도 일미중에 일미다. 굳이 더운 밥이 아니래도 좋다. 아침에 지은 보리밥을 서늘한 그늘에 식혀 두었다가 한나절 복더위 속에 찬 우물물을 길러 마시면서 싱싱한 풋고추를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도 이맘때다. 이제는 우리네 기억에서도 아득히 살아져 버린 오랜 기억들! 숨 가빴던 보리고개 끝이라 맛이 긴하지 않은 음식이 또 무엇이 있었을까 마는 타작 후에 먹는 뜨끈한 햇보리 밥이야 말로 밥 맛 중에 밥 맛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쯤 고향집 마당가 울타리엔 푸릇푸릇한 강낭콩이 영글고 앞집 초가 지붕위엔 흰 박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을 때다.  저녁 상을 물린 마당가 멍석위에 둘러앉은 이웃 아낙네들의 저녁 한때를 즐기는 이맘때의 정경만은 그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는 지난날의 훈훈한 내 고향 농촌의 참모습이기에 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국의 초복을 비교해 보는 감회에서 그리운 고향 산천의 풍미를 새롭게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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