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배달부의 하루 |
보스톤코리아 2022-04-11, 11:22:32 |
나는 우편배달부다. 아침 8시가 되기 직전 직원들은 모두 시계 앞에 줄을 선다. 시계의 숫자가 07:99에서 08:00으로 바뀌는 순간 출근카드를 긁는다. 1시간을 우체국에서는 100분으로 계산한다. 1분은 1.6666...분이 된다. 원리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소위 60진법을 10진법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1마일이 1.6666...킬로미터가 되는 것처럼. 다행히 우편물이 많지 않다. 가가호호 배달해야 하는 관공서 우편물이나 상업광고물이 없으면 물량은 대폭 줄어든다. 구역은 대략 두 시간씩 나눠 총 6시간이 소요된다. 일진이 안 좋은 걸까. 첫 구역부터 찜찜하다.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서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로 옮겨지는 사내가 얼핏 눈에 들어온다. 배달을 포기하고 나는 발걸음을 돌린다. 나는 콜롬비아 테라스를 나와 파인스트릿으로 향한다. 이름이 맘에 든다. 서울의 가로수길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 파인스트릿에는 두안씨 부부가 산다. 날이 더워지면 두안씨 부부는 거의 매일 내게 물을 주신다. 우편물이 없어 지나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아는지 급하게 나를 따라나와 물을 주신다. 이 은퇴한 세무공무원이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팬데믹이 터진 직후였다. 그 집 층계참에 앉아 잠깐씩 휴식을 취하곤 했었는데 팬데믹 이후 갑자기 시선이 차가워지는 것이었다. 집 앞에는 종이 상자를 두고 우편물을 거기에 넣게 했다. 출입문 중간에 달린 우편물 창구에 손이 닿는 것조차 두려웠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내 휴식처는 층계참에서 길가의 우편함으로 바뀌었다. 릴레이박스라 불리는 이 우체통에 트럭이 우편물을 넣어두면 배달부들은 여기서 우편물을 꺼내 배달을 한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부부는 예전의 경계의 시선을 거두었고 종이상자는 사라졌으며 매일 내게 물을 건네주신다. 다음은 콜롬비아로드. 이 구역에는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 에티오피아 콥틱 교회, 제7안식일 교회 등등. 비대칭적으로 큰 십자가들이 무자비하게 설치된 한국의 일부 교회들과는 달리 이곳 교회들에는 특별한 표식이 없다. 나도 우편물을 통해 그 정체를 알았을 뿐이다. 신은 정말 존재할까? 만일 신이 천지를 창조했다면 신은 존재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신이 천지를 창조했다면 신은 천지 ‘바깥’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신은 우주 바깥에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바깥’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마치 내가 빵을 만들면 내가 빵 속에 있거나 빵이 내 안에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아 머리 아파. 정오 무렵 나는 칸디푸르 카페에서 커피와 난으로 요기를 한다. 새참이 필요한 시간. 엄마는 인부들에게 새참으로 라면을 끓여주셨었다. 처음 본 삼양라면의 그 신기한 모습. 라면은 그 후 수십 년을 진화했지만 난 아직도 첫 라면이 그립다. 30분의 휴식을 마치고 나는 하버드스트릿으로 이동한다. <뉴요커>를 기다리는 크누드 부인네를 지나, 트리니다스 토바고에서 온 파군다씨네를 지나, 아이티에서 온 간호사 바네사네를 지난다. 최근에 가정법원에서 온 우편물이 부쩍 많아졌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리고 버지니아네. 그분과의 인연은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잘못 적힌 주소를 추적해서 그분의 수표를 찾아 전해준 이후 그분은 내게 각별하게 대해주신다. 가족 이야기, 최근에 돌아가신 파트너 이야기 (남편이라 하지 않고 significant other란 용어를 쓰셨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운영하다가 문을 닫은 아일랜드 관련 사업 이야기 등. 나도 오래 전 아일랜드를 방문했었기 때문에 우리는 공통 관심사가 생겼고, 그 분은 잡지며 지도 등 온갖 것들을 내게 주신다. 은퇴 후 아일랜드 카페를 열어볼까. 오후 3시. 배달은 거의 끝났고 나는 시간을 조절한다. 너무 일찍 들어가도 안 되고 너무 늦어도 안 된다. 뷰티플 피자에 들러 휴식을 취한다. 여기는 30여년을 근무한 베테랑 배달부 존의 아지트였다. 천천히 해라, 휴식을 취해라, 사무실에 일찍 들어가지 마라, 그는 나를 볼 때마다 충고를 잊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그는 안보였고, 소문에 의하면 그는 연방수사국에 마약 혐의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우체국에도 온갖 사람이 다 있다. 나의 좋은 동료였던 디에고는 자기네 나라로 돌아간 후 자동차 절도로 체포되었고 숀은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고 한곳에 처박아 두었다가 발각되어 해고되었다. 사람은, 아니 인생은 알 수 없다. 4시 반에 퇴근 카드를 긁는다, 똑같은 내일을 예상하며.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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