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3세 풍월주風月主 군관공軍官公(4) |
보스톤코리아 2022-02-14, 11:12:14 |
풍월주 김군관은 김천광金天光을 부제로 발탁했다. 그것은 능력보다는 인척관계로 얽혀있는 고리가 더 많이 좌우된 것으로 보인다. 천광의 부모는 수품과 천장낭주(김염장의 누이)이다. 그들은 딸 천운天雲과 아들 천광을 낳았다. 천운은 절세가인으로 가히 당시 그녀의 아름다움을 따를 여인이 없었다. 화랑세기에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경국지색傾國之色’367) 으로 기록해 놓았다. 천광 또한 얼굴이 아름답고 재주가 많아 김양도가 총애하며 자신의 신하로 삼았다. 김양도는 당시 으뜸가는 미인으로 꼽혔던 천운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 천광을 더 사랑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계획대로 천광의 도움을 얻어 천운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이미 보량을 아내로 맞고 있었기에 정처로 드릴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천장낭주에게 찾아갔다. 결국 양도는 천운을 첩으로 얻는데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사랑 나누기에 몰두하였다. 그러자 보량은 시기보다는 염려가 앞섰다. 이에 보량은 군관의 도움을 청하였고, 군관은 상관이었지만 양도에게 처첩의 도를 직언했다. 즉 첩과 색사에만 몰두하지 말고 가정과 풍월주의 소임에 소홀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양도는 천운과의 관계를 정리하였다. 곧 군관의 사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운을 군관과 맺어 혼인시켰다. 그리고 천광은 군관에게 소속되었고, 김군관이 풍월주가 되자 천광은 김양도의 후광으로 부제가 되었다. 김군관은 사사로운 정으로 부제를 발탁한다면 낭도들이 부당하다고 원성을 쏟아낼 것이라며 염려했지만, 양도는 모든 것을 인지하면서도 특유의 과단성으로 전혀 개의치 않았다. 또한 천운도 동생 천광이 능력보다는 사정私情과 인척관계로 부제에 임명된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한 당연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의 남편이 된 김군관 역시 김양도의 첩인 명란의 동생이었기에 양도의 부제로 발탁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김군관은 비교적 소심하게 매사를 처리했다. 15살 부터 활을 잘 쏘았고 힘이 세서 당할 자가 없었으며, 또한 병서 읽기를 좋아했고, 그릇이 커서 당할 자가 없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하지만 후일 김양도와 함께 사신으로 당나라로 가다가 재미로 본 점쟁이의 말에 꽂혀서 점점 소심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점쟁이는 그들에게 “두 공公은 모두 장상將相의 운을 가졌습니다. 단 비명에 죽겠습니다” 라고 말했는데, 김양도는 과연 당나라에 억류되어 있다가 670년 옥사하였다. 군관은 점이 신통하게 맞는 것을 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소심해졌다. 그리고 그도 마침내 ‘김흠돌의 난’에 연루되어 사약을 받고 죽었다. 367) ‘나라를 기울게 하는 미인’ 이라는 의미의 고사성어인데 이연년李延年의 시에서 비롯되었다. 중국 한나라 무제武帝가 재임할 당시, 이연년이 궁중의 음악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타고난 음악의 천재로 노래와 춤이 특출하여 늘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그가 가무를 펼칠 때는 모두가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한다. 어느날, 이연년은 황제 앞에서 춤을 추며 ‘가인가佳人歌’를 불렀다. “北方有佳人북방유가인/絶世而獨立절세이독립/一顧傾人城일고경인성/再顧傾人國재고경인국/寧不知傾城與傾國영부지경성여경국/佳人難再得가인난재득; 북쪽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세상과 떨어져 홀로 서 있네/한 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두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우네/성을 기울게 하고 나라를 기울게 하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다만 아름다운 여인은 다시 얻기가 어렵다네” 황제가 이 노래를 듣고 나서 “훌륭하구나, 그러나 세상에 그런 여인이 어디 있겠는가?” 라며 탄식하였다. 황제의 누나인 평양공주는 이 노래가 이연년의 여동생에 대한 노래라는 것을 알고, 황제에게 이연년이 실제로 그런 동생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제서야 황제는 이연년이 동생을 자랑하기 위하여 그런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알고, 곧 그녀를 궁궐로 불러들였다. 그녀는 매우 아름답고 춤을 잘 추었다. 또한 황제의 총애를 받아 아들 하나를 낳으니, 그가 창읍애왕昌邑哀王이다. 애석하게도 절세가인 이부인李夫人은 젊어서 일찍 죽었다. 황제가 불쌍히 여겨 그녀의 모습을 감천궁甘天宮에 그렸다. 위사후衛思后가 폐위된 지 4년 후에 무제가 죽었고, 대장군 곽광藿光이 황제의 뜻을 받들어 이부인의 신주를 황실 사당에 모시고 존호를 효무황후孝武皇后라고 추서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사기(사마천),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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