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1세 풍월주風月主 선품공善品公(8) |
보스톤코리아 2021-08-30, 11:38:55 |
21세 풍월주 김선품에 관한 내용은 화랑세기의 기록과 삼국유사를 편찬할 때 ‘이제가기’349) 를 인용했다는 기록이 비슷하다.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김선품에 대한 기록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먼저 화랑세기의 기록을 보면, [찬贊하여 말한다: 보화의 아들이고 진흥대왕의 손자이다. 녹이 있으나 받지 않아 복이 자손에 미쳤다. 세계世系: 아버지는 구륜이고 어머니는 보화이다. 구륜의 아버지는 진흥이고 어머니는 사도이다. 보화의 아버지는 진평이고 어머니는 미실이다.] 김선품은 진흥왕과 사도왕후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난 구륜이 종손녀인 보화공주를 맞아 609년에 낳은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선품은 35세의 나이로 643년에 사망하였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그의 사망시 나이가 만滿으로 치면, 그는 608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634년에 풍월주에 취임해서 637년까지 그 위位에 있었다. 그리고 내성內省에 들어갔다가 곧 예부에서 관직을 가졌다. 선덕여왕의 명을 받들어 인평仁平10년(643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병을 얻어 귀국하여 곧 유명을 달리하였다. 생시 김선품은 아내 보룡과 함께 장녀 자눌을 낳았는데 그가 나중에 문무왕의 왕비가 되는 자의왕후이다. 그리고 문무왕이 661년에 즉위하면서 김선품을 파진찬(4등급)으로 추증하였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김선품의 작위가 삼국유사에서 인용한 이제가기의 기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신라는 골품을 유지하기 위하여 근친혼과 족내혼을 하였다. 그리하여 성골과 진골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는 성골과 진골의 기록은 없지만 왕비를 공급하는 인통姻統이 있다. 이 인통이 바로 진골정통眞骨正統과 대원신통大元神統인 두 계통이다. 신라에서는 이 두 ‘혈통’ 에서만 왕에게 여자를 공급했다. 이 혈통은 부계가 아닌 모계로 이어져 내려 왔다. 즉 어머니가 진골정통이라면 그 자식들은 모두 진골정통이다. 다만 아들은 1대에 국한되지만 딸들은 계속 모계로 이어진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인통/혈통이 다른 경우가 상당히 많다. 진흥왕은 어머니 지소가 진골정통이기에 진골정통이지만 그가 왕후 사도와 함께 낳은 아들들 동륜, 금륜(진지왕), 구륜은 모두 대원신통이다. 그리고 김선품은 어머니가 보화공주로 대원신통이지만 부인 보룡은 어머니 만룡이 진골정통이기에 선품과 보룡이 낳은 자식들은 모두 진골정통이다. 김선품의 가계를 정리해 보면 부모는 구륜공과 보화공주이다. 구륜의 부모는 진흥왕과 사도왕후이다. 보화의 부모는 진평왕과 미실이다. 진평왕은 진흥왕의 장손이고 미실은 진흥왕의 동복아우 세종의 부인으로 있을 때 진흥왕의 후궁으로 총애를 받았다. 그 후 진흥왕이 사망한 뒤에 또 다른 후궁 보명과 함께 어린 진평왕의 좌우후가 되어 색도를 하였다(진평왕은 만 12세인 579년에 즉위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에는 기록이 없는데 화랑세기에는 567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와중에서 보화공주가 태어났다. 김선품은 보룡낭주를 아내로 맞아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장녀 자눌은 문무왕 김법민의 왕후가 된 자의왕후이고, 차녀 운명은 김오기와 혼인하여 화랑세기의 집필자 김대문을 낳았다. 삼녀 야명은 문무왕의 후궁이 되었다. 외아들 순원은 대아찬(5등급)의 관등으로 효소왕 7년(698년) 2월에 중시로 취임하였으나, 700년 경영慶永의 모반에 연루되어 파면당했다. 하지만 곧 정계에 복귀하여 딸 소덕왕후를 성덕왕의 후비로 보냈고(성덕왕19년, 720년), 739년에는 손녀 혜명을 외손자(소덕의 아들 김승경)인 제34대 효성왕에게 시집보내면서 막강한 외척 세력가로 위세를 떨쳤다. 비록 김선품은 일찍 죽었지만 그 자녀들과 후손들은 제36대 혜공왕대까지 번창하였다. 다음 22세 풍월주는 김선품 밑에서 부제로 있었던 김양도金良圖가 이엇다. 양도 역시 선품과 같이 진평왕의 외손자였는데 어머니는 양명공주良明公主이다. 349) 이제가기는 견훤의 가계보家系譜로 추정되는 책으로 삼국유사(권2 기이2,) 후백제 견훤조에 두 차례 인용되었다. 현존하지 않기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고, 신빙성과 해석에 관해서도 논란이 있다. 앞부분에 “진흥대왕의 비 사도의 시호는 백숭부인이다. 그의 세째 아들 구륜공의 아들 파진찬 선품의 아들인 각간 작진이 왕교파리를 아내로 맞아 각간 원선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아자개이다.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이며,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으로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 맏아들이 상보 훤이고, 둘째 아들이 장군 능애이며, 셋째 아들이 장군 용개이고, 넷째 아들은 보개이며, 다섯째 아들이 장군 소개이고, 딸은 대주도금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뒷부분에는 “견훤에게는 9명의 자식이 있었다. 맏아들은 신검, 둘째는 태사 겸뇌, 셋째는 좌승 용술, 넷째는 태사 총지, 다섯째는 대아간 종우, 여섯째는 이름을 알 수 없으며, 일곱째는 좌승 위홍, 여덟째는 태사 청구이며, 딸 하나는 국대부인인데 모두 상원부인의 소생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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