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1세 풍월주風月主 선품공善品公(5) |
보스톤코리아 2021-08-09, 11:30:16 |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데 화랑세기에는 선원전군仙元殿君이 문명태후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문무왕과 선품의 미망인 보룡과의 만남, 보룡의 딸 자의와 아들 순원, 보룡이 첫남편 선품이 아닌 다른 남자와 낳은 당원幢元 등 그들의 관계가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삼국사기와 교차 검증해보면 그들의 관계가 복잡하기도 하지만 상당히 미묘하다. 거기에 681년 역모죄로 처형된 신문왕의 장인 김흠돌의 관계까지 더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한편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화랑세기의 기록을 인용해보면, [그 때 문명태후가 선원전군을 낳고 보룡에게 젖을 먹여 줄 것을 청했다. 문무제가 이로써 보룡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했다. 보룡이 제帝에게 장녀를 허락하고 스스로 여승이 되었다. 제帝가 애석하게 여겼다. (문무가) 태자가 되자 보룡의 딸 자눌慈訥을 비妃로 삼아 궁을 세워 자의慈義라 하고, 보룡에게 명하여 입궁入宮하여 감監이 되도록 했다. 순원은 이로써 궁중에서 자랐으며 선원仙元, 당원幢元 전군殿君과 더불어 같은 예로 작爵이 올라가니 영화와 행운이 지극했다. 사람들이 모두 일러 공의 음덕을 누린 것이라 했다.] 먼저 이들의 관계를 살펴보자. 602년에 태어난 김춘추는 625년 문희(문명태후)를 만나기 전에 이미 부인 보라와 딸 고타소가 있었다. 하지만 김춘추는 김유신의 ‘장작불 사건’으로 문희를 아내로 맞아 드렸고, 곧 보라가 죽으면서 문희는 정궁부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626년에 아들 김법민(문무왕)을 낳았다. 김춘추는 654년 무열왕으로 즉위해서 661년 사망하였고, 이어서 아들 법민이 차기 왕이 되었다. 그리고 문무왕과 문명태후 모두 681년에 사망했다. 한편 21세 풍월주 김선품은 608년에 태어나서 643년에 죽었다. 부인 보룡과 함께 자의, 운명, 야명의 셋 딸과 아들 순원을 낳았다. 남편 선품의 죽음과 함께 보룡은 문명태후가 낳은 선원전군의 유모로 들어갔다(그런데 당시는 문희는 태후는 물론 왕후도 아니었다. 김춘추는 654년에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문희가 낳은 아들 선원의 존호가 ‘전군殿君’ 이다. 물론 후일 붙혀진 존호이겠지만, 전군이란 왕의 후궁에게서 태어난 왕자나, 또는 왕비가 왕이 아닌 다른 남자로 부터 낳은 아들에게 붙히는 존호이다. 그리고 602 ~4년에 태어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문희의 가임기를 봤을 때 선원전군은 분명 김선품이 죽은 643년 무렵에 태어났다. 선품의 막내 아들 순원의 출생시기도 그와 비슷하리라고 본다. 그리고 당시 보룡은 30세 전후이고 장녀 자의는 10세 전후라고 보여 진다. 643년 보룡이 어린자녀 넷을 데리고 김춘추와 김문희가 살고 있는 궁에 보모로 들어 가니 그들의 장남 법민은 이미 성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30세 전후의 미망인의 아름다움에 빠진 법민은 보룡에게 구애를 했지만 보룡은 자신의 어린 딸 자의를 법민과 맺어주고 자신은 승려가 되었다. 위의 기록이 상당히 시간적으로 압축되어 있기에 이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자의는 법민과 혼인을 하였고 태자빈을 거쳐 661년 문무왕의 왕후가 되었다. 681년 7월1일 문무왕이 죽은 후 태후로 몇 개월 살다가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자의가 태자비가 된 후에는 보룡이 다시 궁으로 돌아 왔음을 볼 수 있다. 이 역시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 654년 김춘추가 왕위에 오른 직후로 추측해 본다. 위의 인용문에 등장하는 또 한명의 전군殿君, 당원전군은 보룡의 아들이다. 당원의 아버지는 무열왕 김춘추이다. 즉 보룡이 보모로 있을때 당원이 태어났다. 한편 김흠돌(신문왕의 장인, 신문왕 김정명은 문무왕의 둘째 아들이다)은 자의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녀를 첩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보룡의 완강한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보룡을 험담하였고, 또 보룡이 임신을 한 것을 안 그는 (왕자를 잉태한 것도 알지 못한채) 사람들을 시켜 추한 소문을 내고 있었다. 곧 이어 자의가 태자비가 되자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며 문명왕후의 힘을 믿고 자의가 덕이 없다고 험담을 하기도 하였다. 김흠돌은 문명왕후의 조카이다. 당시 김법민의 정비 자의는 진골정통파였고, 첩으로 있던 신광은 김유신과 영모의 딸로 가야파였다. 김흠돌의 어머니 정희(김유신의 누이)는 김서현의 딸이고, 부인 진광은 신광의 언니이다. 즉 자의를 험담하여 밀어내고 처제 신광으로 태자비를 삼자고 문명왕후에게 졸랐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렇게 긴장관계를 계속 유지하다가 문명태후가 681년 죽자 후견인이 없어진 김흠돌은 사생결단으로 ‘흠돌의 난’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국사기에 보면 선원전군, 당원전군, 순원은 모두 중시를 역임하였다. 선원은 아찬(6등급)으로 신문왕10년(690년) 2월 원사元師의 후임으로, 당원은 이찬(2등급)으로 효소왕5년(696년) 1월에 원선元宣의 후임으로, 순원은 노환으로 물러나는 당원의 후임으로 효소왕 7년(698년) 2월에 대아찬(5등급)으로 중시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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