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37 ] 영어 속의 사족들 |
보스톤코리아 2018-11-12, 11:17:28 |
뱀의 발이라는 ‘사족(蛇足)’은 재미있는 표현이다. 없는 발을 그려 넣음으로써 일을 그르친다는 말이다.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우리말 속담만큼이나 운치가 있다. 경험으로 말하건대, 멀쩡한 피부를 긁어서 생긴 부스럼처럼 난감하고 속상한 일도 없다. 영어에도 사족이 있을까? 있다. 괜히 필요도 없는 철자를 집어넣어 후세들에게 불필요한 기억력 부담을 주는 단어들 말이다. debt(빚), doubt(의심), island(섬), 이런 단어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쓸 데 없는 짓을 했을까? 학자들이다. 학식이 넘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학식을 뽐내는 수가 있다.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스티븐 핀커는 학자들의 이러한 속성을 꼬집는 촌철살인의 명언을 남긴 적이 있다. They know more and more about less and less and finally about nothing. 우리말 번역은 냉소적인 표현의 묘미를 살릴 수 없지만, 대략 ‘그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점점 더 적은 것에 대해 알다가 마침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이다. 박학다식이 아니라 자신만의 전문 분야에 대해 깊이 깊이 공부하다가 결국에는 아는 것이 없다는 일침이다. 영국의 일부 학자들이 바로 그랬다. 프랑스어에서 단어를 도입할 때는 멀쩡하게 det(빚)라 쓰다가 라틴어 débĭtum을 생각해내고는 철자 b를 집어넣어 debt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미 [det]라 굳어진 발음은 바꾸지는 못함으로써 괜히 발음과 철자의 거리만 멀게 만들었다. 이런 행태야 말로 사족이요, 긁어 부스럼이 아닐까. ‘의심하다’란 프랑스어 동사 doute를 도입해놓고는 라틴어 dubius를 보고는 또 b를 집어넣어 doubt로 고쳤다. 그러면서도 발음은 프랑스어를 따라 [daut]로 고정시켰다. dubius란 단어 자체는 ‘둘’이란 뜻의 duo에서 왔다. 섬이란 단어 island는 또 어떤가. 프랑스어 île을 도입한 후, 다시 라틴어 insula를 참고해서 철자 s를 집어넣음으로써 island를 만들어냈다. 발음하지도 않을 s를 도대체 왜 넣어서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 철자를 암기할 때 생고생을 하게 했을까. 그러니 아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학식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학자들을 일컬어 현학적(衒學的)이라 한다. 영어로는 pedantic이다. 이 단어의 유래가 재미있다. pedant는 원래 ‘선생’이란 뜻이다. 일부 어원사전에서는 이 단어가 ‘교육학’을 뜻하는 pedagogy에서 나온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선생을 뜻하는 pundit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볼리우드 영화 <아쇼카>를 보면 아쇼카 왕자가 자기 선생을 놀리면서 pundit-ji라 하는 대사가 자주 나온다. 불교를 중흥시킨 왕으로 널리 알려진 아쇼카는 젊은 시절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슬픈 이야기처럼 적국의 공주를 사랑하면서도 공주의 가족은 물론 그 나라 전체를 파멸시킨 냉혈한이었다. 말년에 그가 독실한 불교도가 되는 계기이다. 아무튼 그가 자신의 선생을 골탕 먹이고 놀려먹으면서 냉소적으로 pundit-ji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힌두어에서 -ji는 우리말 ‘아버지’의 ‘-지’처럼 존칭을 나타내는 어미이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간디를 지칭할 때 그냥 Gandhi라 하지 않고 Gandhi-ji라 한다. 아이들이 장난삼아 선생을 teacher-ji라 하기도 한다. 필자도 Chaterjee란 지인을 볼 때마다 Chaterjee-ji라 놀리곤 한다. 아무튼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학자들이 나쁘다는 말. 섬이라고 할 때는 island라고 하다가, 거의 섬이란 뜻의 ‘반도’는 peninsula라 하고, 섬처럼 ‘고립시키다’라는 말은 insulate라 하는 게 얼마나 불편한가. 습관이 되면 불편함도 모를 수는 있다. debt는 ‘빚’이지만 debit card는 원래 빚쟁이처럼 꼬박꼬박 돈을 빼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른들 어떠랴. 생활 상에 하등의 불편도 없다. 하지만 doubt는 ‘의심’이란 명사인데, ‘의심스러운’이란 형용사는 doubtful과 더불어 dubious, dubitative란 라틴어 출신도 있으니 이 얼마나 불편하고 풍요로운가.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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