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35 |
화랑세기花郞世紀, 8세 풍월주風月主 문노文弩(25) |
보스톤코리아 2018-07-23, 11:02:19 |
신국神國 신라新羅에는 신궁神宮이 있었다. 거기에는 신들을 모셔놓고 배향하였다. 여기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기록들을 고찰하면서 설치년대와 주신主神과 제사를 주관한 제관/신관 등에 관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본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은 화랑세기를 함께 읽으면서 연구한 신궁과 삼국사기(또는 삼국유사도 포함)에 기록된 부분만을 볼때는 그 개념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국사기 안에서도 그 설치연대를 상이하게 기록하고 있는 점은 몇 가지 추측과 상상을 더욱 부추긴다. 먼저 삼국사기 ‘잡지 제사조’ 에 나오는 내용을 간추려 보면 “신라의 종묘제도는 살피건데, 제2대 남해왕 3년(서기6년) 봄에 처음으로 시조 혁거세 묘를 세워 네 철에 제사지내고, 친 누이동생 아로阿老에게 제사를 주관케 했다. 제22대 지증왕은 시조가 탄강(내려와 태어남)한 곳인 나을奈乙에 신궁神宮을 세워 제향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음으로 ‘신라본기’ 에는 “소지왕9년(487년) 봄 2월에 나을奈乙에 신궁神宮을 설치했다. 나을은 시조가 처음 태어난 곳이다” 라고 기록 되어 있다. 한 곳에서는 소지왕(제21대, 재위 479 ~ 500년)대로, 다른 한 곳에서는 지증왕(제22대, 500 ~ 514년)대로 기록되어 있다. 두 왕의 통치기간이 도합 35년이니 약 650년이나 지난 1145년에 완성된 삼국사기의 기록이 큰 격차가 나는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500년을 전후하여 신궁이 설치되었음이 분명하다(아니면 소지왕때 지어진 신궁을 지증왕때 증축 확장했을지도 있지 않겠는가?). 다음은 신궁의 주신은 누구였을까? 학자들도 여러가지의 견해를 나타내지만 그 견해들은 먼저 신라의 건국시조이자 박씨 왕 시조인 박혁거세, 다음은 김씨 시조인 김알지, 그리고 김알지 후손으로 김씨로서는 최초의 왕인 미추왕, 마지막으로 김씨가 신라의 왕위를 독점하는 계기를 마련한 내물왕이라고 나누어진다. 즉 종합적으로 봤을때의 공통점은 주신이 조상신이란 것이다. 그리고 박혁거세라는 주장이 우세한데 그 신궁의 설치 장소가 바로 박혁거세 탄강한 나을이기에 설득력이 강해진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주신이 조상신이 아니라 천신天神이란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그럼 왜 학자들 간에도 여러가지의 견해가 표출되고 있는가? 삼국사기 어디에도 명확한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제 22대 지증왕 부터 제55대 경애왕 까지의 기록에 신궁이란 단어는 20여 차례 등장하지만 모두가 “왕이 친히 신궁에 제사를 드렸다” 는 기록이지 누구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은 없다. 그런데 여기서 화랑세기를 읽어보면 신궁의 주인들을 밝혀낼 수 있다. 즉 신궁에는 한명이 아닌 여러 신들이 모셔져 있었으며, 신궁의 모든 주인들을 가려낼 수는 없으나 그 중 몇 명은 명확하게 가려낼 수 있다. 먼저 화랑세기 서문의 첫 구절을 다시 본다. “화랑은 선도仙道다. 우리나라에서 신궁神宮을 받들고 대제大祭를 행하는 것은 마치 연燕나라의 동산桐山, 노魯나라의 태산泰山과 같다. 옛날 연부인이 선도를 좋아하여 많은 미인을 길렀는데 이름하기를 국화國花라고 했다. 그 풍습이 동쪽으로 흘러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로서 원화源花를 삼게 되었다. 지소태후가 원화를 폐하고 화랑을 설치하여 국인들로 하여금 그들을 받들게 했다” 화랑세기 서문에 등장하는 첫 구절인데 화랑의 유래와 전개과정을 아주 간단하게 나타내고 있다. 위 기록의 상세한 고찰은 ‘화랑세기 서문(1~4편)’ 에서 다루었기에 참조하기 바라며, 여기서는 신궁神宮만 국한해서 보면 신궁에서는 대제를 올렸다. ‘대제’의 사전적인 의미는 ‘천지사방에 제사를 지내는 것’ 을 말하는데, 이것 또한 당시의 대제가 여기에 해당되는지도 고찰하고 연구해 봐야할 부분이다. 그래서 다만 여기서는 간단히 화랑이나 원화가 신궁의 제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만 명확하게 짚고 넘어간다. 즉 화랑과 원화들이 신궁에서 대제를 지내는데 참여하였을 것이란 사실이다(김태식은 “비약이 허락한다면 원화 혹은 화랑은 신궁이나 대제에 봉사하는 신관神官 정도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라고 기술하였다 – 화랑세기, 또하나의 신라, 67쪽). 그 다음으로 화랑세기에 신궁이 등장하는 곳은 4세 풍월주 이화랑조이다. 원문이 너무 많이 훼손되어서 인용하여도 신궁이 발원發願의 장소였다는 것 외에 얻을 것이 별로 없다. 이 원문 역시 ‘화랑세기 4세 풍월주 이화랑(13편)’ 을 참조하길 바라며 인용을 생략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5세 풍월주 사다함조에 보면 신궁이 그냥 신궁이 아니라 특정 인물의 신궁이라고 등장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나무위키,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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