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609회 |
72주년의 광복절을 맞으며 아직도 남은 그 아픔과 설움에 울고... |
보스톤코리아 2017-08-21, 11:39:46 |
"아, 대한민국 만세!!!" 우리 조국의 광복 72주년을 기념하는 "광복절 기념행사"가 지난 8월 14일(월요일) 보스톤총영사관에서 개최되었다. 이 행사에는 지역 단체장과 전 한인회장들 그리고 노인회 어른들과 주민들이 모여 만세삼창과 광복절 노래를 부르며 광복절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특별히 독립유공자 유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들었던 독립운동 얘기를 우리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되었다. 광복절, 해방의 기쁨에 젖은 우리의 남은 설움이 세월이 흘렀다고 그 아픔이 슬픔이 잊힐 리가 없지 않던가. 엄성준 총영사님의 인사 말씀을 시작으로 제72주년 광복절 기념식은 시작되었다. 인사 말씀으로 대한 독립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투쟁과 헌신으로 조국의 광복을 맞이한 뜻깊은 날이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 유공자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를 당부하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애쓴 재미동포들의 노력 또한 잊지 않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200만 재미교포들은 굳건한 한미협력 관계의 중심임을 강조하며 강력한 한미안보협력을 통해 김정은 북한 정권의 무모한 핵미사일 도발을 응징하고 무력화시키는데 재미동포들의 역량을 발휘해 줄 것을 당부했다. 엄성준 총영사님의 인사 말씀 후에 오진관 영사의 보스톤지역에 거주하는 김철중, 노원찬, 신현모 독립유공자들의 유족 소개와 이들의 독립유공자 공훈록 소개가 이어졌다. 공훈록을 듣는 내내 참으로 감명 깊은 시간이 되었다. 이처럼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어 우리가 이렇게 해방의 감격을 누릴 수 있었고 72주년의 광복절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공훈록을 읽는 내내 유가족들뿐만 아니라, 자리에 앉아 듣던 귀빈들도 눈시울이 뜨거워 눈물을 훔치며 듣는 분들이 여럿 계셨다. 특별히 신현모 유공자의 유족 신좌경 할머님은 103세의 연세에도 또렷또렷한 말씀으로 아버지와의 일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전해주시어 참석한 모든 귀빈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으셨다. 김철중 유공자의 유족 김휘순 님은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와 겸상을 늘 받았던 기억과 할아버지에게서 직접 들은 손기정 선수의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사건을 전해주시고 그 옛 기억을 떠올리시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셨다. 노원찬 유공자의 유족 노명호 님은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던 할아버지와 숭실대학교 태극기의 일화에 대한 얘기를 나눠주셨다. "김철중 유공자(유족 김휘순)동아일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항일기사를 게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철중은 1926년 3월 송진우(宋鎭禹)와 함께 국제농민회 본부로부터 ‘조선농민에게 전하는 글’을 전달받고 3.1운동7주년을 맞는 때에 이 글을 동아일보에 게재했다. 동년 3월 5일 ‘국제농민본부로부터 조선 농민에게 본사를 통하여 전하는 글’이라는 기사명으로 실린 이 글에서는 “제7회의 슬픈 기념일에 즈음하여 국제농민본부는 세계 40개국이 조직한 농민단체를 대표하여 동지로서의 동정을 조선 동포에게 바친다." "노원찬 유공자(유족 노명호) 평남 평원(平原) 사람이다.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평양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부터 8일까지 일어났는데, 그는 평양 숭실학교 학생들을 주도하면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 일로 일경에 피체된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양흥청년회(兩興靑年會)를 이끌며 청년운동을 전개하던 그는 1920년 12월 청년운동단체인 조선청년회연합회(朝鮮靑年會聯合會)의 창립 총회 때 양흥청년회 대표로 참가하면서 항일투쟁을 벌여 나갔다." "신현모 유공자(유족 신좌경) 황해도 연백(延白) 사람이다. 1917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와 흥사단(興士團) 및 청년혈성단(靑年血誠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2년에 귀국하여 「국사강의록(國史講義錄)」을 발간하고, 물산장려회(物産奬勵會)에 참가하여 활동했으며,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에 가입하여 〈조선어사전〉편찬의 재정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7년 6월에 수양동우회사건(修養同友會事件)으로 피체되어 일제의 잔혹한 고문을 받고 1941년 11월 17일 고등법원에서 무죄로 석방되었으나 실질적으로 3년여의 옥고를 겪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 발췌문 중...)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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