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옥 칼럼니스트님께 |
보스톤코리아 2017-04-17, 11:24:47 |
한담객설을 늘 즐겨 읽어 보는 독자입니다. 그렇게 재치있게 또 그렇게 짧고 간단하게 쓰시면서 읽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크게 자극하시는 분으로 늘 존경하는 독자입니다. 특별히 금년 설날을 맞으며 쓰셨던 ‘떡 방앗간’ 이야기를 읽고 아직까지 마음 아픈일이 있어 ‘운명의 떡 방앗간’ 저의 이야기로로 답글을 올려 드립니다. 6.25로 서울집을 떠나 진해로 피난을 갔었습니다. 아버님께서 피난중 임시 작장으로 진해에 있는 공군사관학교에 영어교사로 일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아버님 직장 근처에 독사골이라는 곳에 방을 빌리고 피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해 설날이 주말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쌀을 깨끗이 씻어 머리에 이시고 어린 저는 막내동생의 손을 잡고 어두운 저녁에 떡 방앗간으로 어머니를 따라 갔었습니다. 떡 방앗간에 도착하니 말씀하신 대로 우리쌀을 바닥에 있는 줄에 놓고는 찾아 갈 날짜와 시간까지 알려주는 떡 방앗간을 돌아보면서 차도 없는 시골 바닷가길, 뱀들이 널려 있는 독사골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노래도 부르고 달도 쳐다보면서 “엄마 왜 오늘 떡집에 갔지?” 물으니 “주말이 정월초하루 새해라 아빠와 언니 둘이(임시 피난학교들이 있던 부산서) 집에 오거든 그래서 가래떡을 만들어와야 떡국이라도 끓여 먹을게 아니니?” 하시기에 “그런데 왜 떡국을 먹어야 하지?”여쭈니 “ 떡이 길게 기계에서 나오거든 그래서 명이 길어지라고들 먹는 습관 때문이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보니 먼 시골길도 금방, 셋방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방에 들어오시던 어머님이 갑자기 쓰러지시면서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저는 집 주인을 찾아서 호소를 했더니 와서 보시고는 엄마가 중풍(Stroke)에 걸린 것 같다고 하며 따뜻한 자리에 누워드리고는 가셨습니다. 그 추운 겨울밤에 무거운 쌀을 머리에 이시고 그 먼 산길을 걸어서 떡 방앗간에 갔다 오신것이 원체 심장병(Congestive Heart Failure)이 있으셨던 어머님께 무리가 갔던 모양입니다. 1년 좀 넘게 한약으로 연명하시다 결국 서울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어요. 저의 “운명의 떡 방앗간!” 지금도 설날 떡 방앗간 기계에서 길게 나오는 가래떡 그 구수한 냄새가 가득한 공장이건만 시끄러운 기계소리도 맛있게만 생각됐던 그 날밤의 기억을 오늘까지 해마다 다시 기억하고 살아왔습니다. 운명의 떡 방앗간 때문에 엄마없이 자라서 이 외국땅에서 설날마다 한 없이 울며 살아온 저의 운명. 바로 그 방앗간 이야기를 김 선생님께서 쓰신거예요. 읽고 또 읽고…. 이렇게 김화옥 선생님의 글로 인해 한 없는 감명과 추억이 떠오르는 떡집 기억으로 한 없이 울고 지낸 2017년 새해를 동감하여 주실 것으로 믿고 제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말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듯(창세기 1)이 ‘말’, 즉 ‘글’이 이렇게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을 새삼 인식했습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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