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젊은 느티나무
보스톤코리아  2016-02-08, 11:09:13 
  날이 추워졌다. 찬바람도 불었다. 오대호를 지난 캐나다발發  북서풍 일게다. 바람은 얼음된 눈덩이는 데려가지 못했다.  방한복防寒服입지 못한 나무가지만 세차게 흔들었다. 눈은 다시 내려 쌓일 것인가.

 ‘그에게서는 늘 비누냄새가 났다.’ 강신재의 소설 ‘젊은 느티나무’의 첫대목이다. 육십년대 초반이 배경이다. 요새 같았으면 막장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을 터. 그래서 그런가 나는 이 소설을 읽고 가슴 설레지는 않았다. 현실처럼 읽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교수라 했는데, 대단한 재력가처럼 보였다. 집안에 테니스코트가 있다고 했다. 오렌지 주스를 음료수로 마셨다고도  했다. 차라리 라면을 먹고, 소주를 마셨다면 어땠을까 모르겠다. 미제美製 다이알 비누냄새만 코끝에 감겨 돌았다. 비누냄새는 진하고, 느티나무 시詩는 맑다. 젊던 느티나무도 나이 들었다. 느티나무는 언제나 당당하게 늙는다.

삼백 년 묵은 느티나무에서 
하루가 맑았다고 
까치가 운다 
잡것 
(함민복, 묵상)

   나무의 나이는 수령樹齡이라 던가. 수령 높은 느티나무는 시골 동네 초입에 묵묵히 서 있다. 소설같은 장면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있다. 어디 동네 입구 뿐이랴. 창덕궁엔 나이 많은 나무들이 여전하다.  몇년전 창덕궁을 거닐 수있는 기회가 생겼다. 어릴적 소풍으로 촌에서 올라와 봤다. 수십 년후 그곳에 다시 들어가 볼 수 있었던 거다. 그날은 초겨울 인데,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내가 계절의 냄새와 구별할 수 없었다.  흙내음도 아닌것이, 진한 소나무 향내였지 싶다. 나무 냄새와 어울려, 그윽하고 고즈넉하기가 과연 임금님이 산책하던 곳이었다.  스스로 감탄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곳곳에 나무에 가마니로 덧옷을 입힌게 보였다. 월동준비越冬準備 인게다. 그날 그 곳에서 느티나무를 봤는지 그건 기억에 없다. 분명 있었을 게다. 그 자리에서 수백 년을 지키고 서 있었을 터. 수령은 높되, 여전히 젊어 풍모도 늠름할 게다.  온갖 세월의 풍파를 지켜봤음에 틀림없다. 윗편에 규장각이 보였던가. 

  왜 식솔들을 그곳으로 이끌었는지 그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궁궐안을 산책했다. 의도는 그럴듯 했다만 날씨는 짓궂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추운 날이었던 거다. 홑저고리 입고 갔다가 감기를 안고 돌아왔다. 내복을 입고 가지 않았다. 당연한 고뿔이었고 임금님 감기였다.  

  올해 겨울엔 젊은 느티나무인 나도 내복을 입었다. 한차례 감기치레를 한 다음이었다. 작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올해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내복은 미제美製 (실은 메이드인 차이나 일게다. 확인하지 않았다)라 그런가 몸에 달라붙었다. 여엉 편하지는 않다. 그래도 이 불편 감수해야 한다. 다시 감기에 걸리기 싫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가 말씀하시던게 귀에 생생하다. ‘멋은 무슨 멋. 뚜뜻한게 최고니라.’ (어머니는 따뜻한 걸, 뚜뜻이라 발음하셨다).  어머니 말씀에 순종한다. 조금 불편해도 뚜뜻한게 최고. 겨울이면 나무들도 외투를 입는다. 가마니든지 뭐든지 덧 씌우는 거다. 

  세월이 흐르면, 젊은 느티나무도 늙어 간다. 청춘도 지독한 비누향香 사라지듯 간다. 푸석푸석한 비누덩이가 된다는 말이다. 내복입은 늙은 느티나무는 마을입구를 지킨다.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누가 6:29)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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