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18세 풍월주風月主 춘추공春秋公(12) |
보스톤코리아 2020-12-17, 16:22:42 |
진덕여왕 재위(647~654년) 시 당나라와의 외교활동은 김춘추의 몫이었다. 648년 아들 법민과 당나라로 갔을 때 당태종의 환대를 받으며 군사 지원도 약속받았다. 649년 귀국할 때는 당태종이 3품 이상의 모든 관원들을 불러 함께 성대한 송별연을 열어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좌무위장군의 벼슬을 받은 아들 법민은 숙위宿衛로 당에 남겨두고 돌아와서 연호를 비롯하여 많은 제도들을 당풍으로 바꾸었다. 이때 부터 신라는 관복도 당나라 처럼 입었고 정월 초하루에 백관들이 모여서 왕에게 하정례賀正禮를 치루면서 세배하는 풍습이 시작되었다(651년). 또한 동년에 차남 김인문을 당에 보내 숙위를 맡게 하였다. 진덕여왕은 재위8년인 654년3월에 죽었다. 당시 화백회의에서 상대등인 알천에게 섭정을 청했지만 알천의 사양으로 왕위는 김춘추에게로 이어졌다. 삼국사기에는 시조 혁거세 부터 진덕여왕까지의 28명을 성골, 태종무열왕부터 마지막 경순왕까지를 진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 용수/용춘이 진지왕의 아들이고 어머니 천명공주가 진평왕의 딸인데도 김춘추는 진골이다. 진지왕이 친모인 사도왕후(진흥왕의 정비)와 미실의 세력에 의해 폐위될 때 족강이 되었다면 몰라도 혈통상 성골인 김춘추가 진골로 기록되어 있다(폐위를 당했지만 족강의 기록은 없다. 반면에 진지왕의 비 지도황후는 폐위되지 않고 권세를 누리면서 살다가 진흥왕과 후궁 월화의 아들인 천주와 혼인하여 17세 풍월주가 된 염장을 낳았다). 한편 655년 고구려가 백제와 말갈과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여 북쪽 변경의 33개의 성을 탈취하였다. 이에 김춘추는 당에 사신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였고 소정방과 정명진의 군사들이 와서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당시까지는 상대등이 화백회의의 대표자로 왕권을 견제하거나 왕위계승 경쟁자였지만 무열왕 이후 상대등은 왕이 임명하였기에 화백회의는 왕권 아래 있었다. 이렇게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김춘추는 고구려와 백제에 대항하여 본격적으로 전쟁을 하였다. 660년 3월 신라의 요청으로 당나라 장군 소정방과 유백영 등이 이끄는 13만의 대군이 왔다. 이때 차남 김인문도 함께 귀국하였고, 이에 김춘추는 대장군 김유신 등 여러 장군들과 함께 5만의 군사를 지휘하여 출정하였다. 아들(태자) 법민을 보내 소정방을 맞아 사비성 앞에서 합류하기로 하였고, 당나라 군사와 함께 백제를 공격할 신라군의 지휘는 태자 김법민과 대장군 김유신, 김품일 장군과 유신의 동생이며 19세 풍월주를 지낸 김흠순 장군이 맡았다. 그해 7월9일에 대장군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은 황산벌(현 충남 논산)에서 백제군을 격파하였고, 동시에 당군도 기벌포323) 로 상륙하여 7월13일 사비성을 함락하였으며, 7월19일에는 웅진성으로 피신했던 의자왕이 항복하면서 백제를 명망시켰다. 사비성을 함락하고 나서 김법민은 백제의 왕자 부여융에게 침을 뱉으며 모욕을 주며 누이 고타소의 죽음을 잊지 않고 질책하였다. 한편 후방(금돌성)에 있던 무열왕 김춘추는 의자왕의 항복 소식을 듣고 사비성으로 입성하여 642년 대야성이 함락될때 백제군에 내응했던 검일과 모척을 잡아 처형하였다.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군 소정방은 의자왕을 비롯하여 왕족과 고위 관료 등 1만2천명의 백성을 데리고 당으로 갔다. 그리고 당은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다. 도독으로 왕문도를 파견하여 9월 28일에 무열왕을 만나 당고종의 조서詔書를 전달하였는데, 예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왕문도가 갑자기 죽는 일이 있기도 하였다. 그 후 백제땅에서 부흥군이 일어나 사비성을 지키던 나당의 군사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 해 11월에 모두 진압되었다. 백제를 멸망시켜 642년에 죽은 사랑하는 딸 고타소의 원한은 갚았지만 김춘추는 재위에 오른지 8년째인 661년 6월 60세로 사망하였다. 화랑세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세상을 구제한 왕이고 영걸한 임금이다. 한번 천하를 바로 잡으니 덕이 사방을 덮었다. 나아가면 태양과 같고 바라보면 구름과 같다. 세계: 아버지는 용수공으로 금륜왕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천명부인으로 진평대제의 딸이다. 천명의 어머니는 마야인데 복승공의 딸이다.] 김춘추의 조부 금륜왕은 제25대 진지왕이고, 외조부 진평왕은 제26대 왕으로 동륜태자의 아들이다. 동륜은 진흥왕의 장남이고, 금륜은 차남이다. 김춘추는 부인이 세명이었다. 첫째부인 보라궁주와 고타소를 두었으며, 보라는 둘째아이를 출산하다가 죽었다. 둘째부인 문명왕후(문희)와는 아들 김법민(문무왕), 김인문, 김인태(화랑세기에는 김용춘의 딸 용태의 아들로 나온다), 김문왕, 김노차, 김지경, 김개원 그리고 딸 지소공주(김유신이 60세에 결혼하였다)와 훈입(원성왕의 증조모)을 두었다. 그리고 영창부인(보희는 꿈을 동생에게 파는 바람에 왕후의 자리는 헛꿈이 되었지만 후궁이 되었다)이 있다. 보희와는 아들 김지개문, 김차득, 김마득(화랑세기에는 차득과 마득이 김용춘의 딸 용보의 아들로 나온다) 과 딸 요석공주(첫 남편 김흠운 사후 원효와 재혼하여 설총을 낳았다) 가 있다. 323) 금강 하구인 기벌포는 현 충남 서천군 장항이다. 660년에는 신라와 당이 연합군이었지만, 후일 676년에는 7년에 걸친 나당 전쟁에서 신라가 20만의 당나라 대군을 격파하고 최종 승리하면서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낸 역사적인 고장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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