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13 |
보스톤코리아 2016-01-11, 11:54:18 |
[위화랑은 섬신공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벽아부인碧我夫人이다. 어머니가 총애를 받아 비처왕의 마복자가 되었다.] 화랑의 초대 풍월주 위화랑은 김대문의 5대조 할아버지이다. 그리고 위화랑의 어머니 벽아는 소지왕이 사랑하여 날이군(현 경북 영주)에서 데려온 벽화의 어머니다. 그래서 벽화와 위화랑은 이복 남매지간이다. 섬신공은 염신공으로도 읽으며, 그는 날이군에서 살던 벽화의 아버지 파로波路가 아니다. 그러니까 소지왕이 벽화를 왕궁으로 데려올 때 가족이 모두 경주로 온 것이 아니라 파로의 부인 벽아와 딸 벽화만 온 것이다. 위화랑의 아버지 염신공과 파로가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설도 있는데, 염신공의 할머니가 청아靑我이고 이 청아가 박제상(치술공주 사이에서)의 딸이기에 가능성이 희박하다. 비처왕은 제21대 소지왕(재위기간 471 ~ 500)이다. 어머니가 왕의 총애를 받아 마복자摩腹子가 되었다는 것은 어머니 벽아부인이 위화랑을 임신했을때 왕과 성관계를 했다는 말이다. 즉 임금의 승은承恩을 입었다는 것이다. 마복자란 신라시대에 있었던 독특한 풍습으로 일종의 대부代父제도 인데, 배를 문질러 낳은 아이란 뜻이다. 특히 귀족여자가 임신한 후 왕의 승은을 입고 태어난 마복자는 왕자나 공주는 아니지만 그에 상응하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뿐만 아니라 화랑이나 일반 귀족집단에서도 마복자 제도는 존재하였다. 일례로 화랑도 간부들인 낭두들은 대다수 풍월주의 마복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종욱은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소나무)’에서 “신라의 독특한 제도로 임신을 한 여자가 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후 낳은 아들을 마복자라고 한다. 여기서 비처왕과 그들의 마복자들은 일종의 사회적, 정치적 의제擬制 가족관계를 맺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비처왕은 마복자로 구성된 정치적 추종자들을 거느리게 되는 것이며, 마복자는 비처왕이라는 정치적 후원자를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복자의 존재를 단순히 성적 문란의 증거로 볼 수는 없다.” 라고 했다. [세간에서 말하는 이른바 마복칠성摩腹七星이다. 아시공의 아버지는 선모이고 어머니는 보혜이다. 수지공의 아버지는 이흔이고 어머니는 준명이다. 이등공의 아버지는 숙흔이고 어머니는 홍수이다. 태종공의 아버지는 아진종이고 어머니는 보옥공주이다. 비량공의 아버지는 비지이고 어머니는 묘양이다. 융취공의 아버지는 덕지이고 어머니는 가야국의 융융공주이다. 혹은 말하기를 “법흥대왕은 칠성의 우두머리이며, 위화랑은 어머니의 신분이 낮아 포함되지 않았다” 한다. 그런데 ‘칠성록七星錄’ 및 ‘보혜기寶兮記’에는 모두 이등공이 없고 위화랑을 기재하고 있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잘 알 수 없다.] 이렇게 화랑세기에 비처왕의 마복자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그들은 아시공阿時公, 수지공守知公, 이등공伊登公, 태종공苔宗公, 비량공比梁公, 융취공 등이다. 그리고 법흥왕(김원종)이 그들의 우두머리였다. 이들이 왕의 ‘승은’을 입고 태어난 신라의 마복자 중에서도 가장 지위가 높은 마복칠성이다. 마복칠성은 북두칠성에서 따온 이름이다. 위화랑은 어머니의 신분이 낮아 ‘마복칠성’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어머니 벽아부인이 날이군의 지방토호 파로의 전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화랑의 아버지 염신공(섬신공)은 파로와 동일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비처왕이 날이군에서 데려온 신라 최고의 미인 벽화는 나중에 법흥왕의 후궁이 되었다. 그런데 법흥왕이 총애하는 마복칠성 중의 하나인 비량공이 왕의 후궁인 벽화를 사모했다. 하지만 사모하는 만큼 사적으로 만날 기회가 좀처럼 없어 그는 왕후가 다니는 뒷간에서 기다렸다. 법흥왕은 이들의 행위를 알고 있었지만 비량공을 총애했기에 막지 않았다. 벽화와 비량공의 사랑은 깊어져만 갔고 결국 측간에서 계속되는 사통으로 인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의 이름은 ‘구리지’이다. 아마도 뒤간에서 정을 통하고 낳은 아이라서 ‘구리지’로 지었다고 추측된다. 구리지는 사다함의 아버지다. 삼국사기의 사다함열전에 보면 사다함은 내물왕奈密王의 7세손으로 그 아버지는 진골인 구리지仇梨知라는 한 대목이 나온다. 사다함의 가문에 관한 기록이 이것이 전부인데 화랑세기에서 가계가 좀더 밝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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