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입신入神과 수졸守拙
보스톤코리아  2015-08-19, 12:14:09 
  겉절이는 맛이 상큼하다. 맵고 아삭인다. 묵은지는 묵었는데, 또다른 맛이다. 맛은 깊고 두터우며 깊다. 김치찌게는 겉절이보다 묵은지로 끓여야 제맛이다. 삼합三合일진대, 두부와 묵은 김치와 족발이라면 거의 환상이다. 
= 이 시詩가 서산대사의 것인 줄 알았다. 한시漢詩인데, 이양연의 시詩란다. 번역이 오히려 뜻이 더 깊다. 먼저 길을 내고 간 선배들의 발자욱을 후배들이 쫓아간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양연, 야설野雪)

  오늘도 바둑 이야기이다. 바둑은 일본에서는 예술이고, 한국과 중국에서는 체육으로 규정하는 모양이다. 하긴, 바둑도 아시안 게임에서는 당당한 체육종목이기는 하다. 나에게는 그저 오락이고 게임이지 싶은데 말이다. 바둑기사 조치훈趙治勳이 벌써 환갑을 바라본단다. 이즈음 그가 한국을 방문했고, 그의 인터뷰기사를 읽었다. 그가 말했다.

“만약 바둑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오히려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생이 행복하기만 하면 사는 게 재미없었을 것 같다. 불행하고 힘들기 때문에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바둑 때문에 내 인생은 재미있다. 그래서 나는 바둑을 둔다.”

  풍문으로 들었다. 조치훈은 여전히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오래 전 그에게도 당연히 군대에 가야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그게 70년대 중반일텐데, 그에게 병역면제혜택을 주어야 하는가 논란이 일었다. 당시 법에는 ‘예술이나 체육에 공헌한 자’ 만이 혜택을 받았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 당시에는 바둑이 예술인지 체육인지 정의할 수 없었다. 논란 끝에 그가 군대를 면제 받았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프로바둑에서 초단은 수졸守拙이라는 별칭이 있단다. 보잘 것 없는 것을 지키는 것이라 던가. 한편 최고의 경지인 구단은 입신入神이란다. 유튜브에서 봤다. 바둑황제 조훈현曺薰鉉이 열 대여섯살 수졸守拙 초단 기사와 한판 붙었다. 조훈현이 또 누구인가. 황제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았던 최고의 기사였다. 그는 최고의 경지인 구九단이고, 입신入神에 올라 있는 게다. 바둑 상대와 나이로만 따진다면 사십오륙년 차이일게다. 초짜 프로와 신의 경지에 이른 고수가 맞대결하는 거다. 바둑을 보면서 은근히 조훈현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같은 세대라고 내가 스스로 부추겼던 거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조훈현이 졌다. 황제는 이제 용상에서 내려왔나 보다. 조훈현을 응원하고 있는 내가 우스웠다. 치고 올라오는 젊은 기사들에게 그가 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족이다. 조훈현은 공군에서 병역의무를 마쳤다고 들었다. 

  조훈현과 조치훈을 보고 나이든 바둑팬들이 반갑다. 조치훈에게 조훈현이 라이벌이냐고 물었단다. 조치훈의 대답이 진중하다. ‘라이벌은 무슨. 존경하는 선배다.’  조치훈의 대답이 그가 젊을 적과 사뭇 다르다. 그의 마음도 정녕 입신의 경지에 올라선 모양이다. 프로바둑 후배는 선배를 배우고, 선배가 걸은 길을 따라간다. 세상이치가 어찌 바둑에서 뿐이랴. 묵은지는 역시 맵지 않아 맛이 깊다. 겉절이도 묵으면 묵은지가 되던가?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가 2:14)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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