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헌법 26조
보스톤코리아  2014-11-10, 11:29:34 
1960년 9월 26일. 같은 해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 간 토론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다. 텔레비전이 미국 정치사에 등장한 것은 트루먼의 2차 대전 수습과 관련된 1947년 10월 2일의 TV연설이 시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미국의 어지간한 가정이 TV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았던 시절의 최초보다는, 미국 유권자의 1/3이 시청했던, 그리하여 1960년 선거의 향배를 바꾼 것으로 평가되는 1960년의 대선 후보 TV토론을 기억한다. 

<매사추세츠 상원의원> 존 F. 케네디와 <현직 부통령> 리처드 닉슨 간의 빅매치가 케네디의 최종 승으로 일단락 지어진 데에는 그가 TV를 통해 젊고 건강하고 유연하며 자신감 넘치는 이미지를 보여 주는 데 성공했다는 데에는 거의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실 언변이나 화술로 따지자면 닉슨도 크게 뒤쳐지는 인물은 아니었다. 순발력도 있었다. 아이젠하워와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였던 닉슨이 (당시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1952년 대선 당시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혹에 휩싸였을때, 닉슨은 TV에 나와 해명 연설을 했다.

“Dana Smith라는 후원자로부터 정치 후원금 1만 8000달러를 받았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리겠다. 하지만 이 자금의 단돈 1센트도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않았으며, 공여자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지 않았으며, 비밀로 조성한 기금이 아니다. 다만 선거 후에 선물로 받은 작은 코커 스패니얼 강아지가 한마리가 있다. 마땅히 돌려줬어야하지만, 딸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그러지 못했다.” 가족과 강아지를 동원한 닉슨의 감성연설은 뇌물 수수 의혹으로부터 닉슨이 무탈히 살아남게 한 큰 힘이 되었다. 어쨌거나 닉슨은 TV 방영권을 사는데는 7만 5천불을 썼다고 한다. 

1960년은 그러나 1952년의 “체커스 연설”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 가정에 TV가 공급되어 있던 시기다. 그런데 닉슨은 TV 토론을 앞두고 무릎에 부상을 당해 수술을 한 뒤 회복 중인 상태인지라 뭔가 불편한 표정을 계속해서 연출했다. 게다가 적절한 의상을 선택하지 못해 스튜디오의 조명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다. 케네디는 화면으로 비쳐질 비쥬얼에도 치밀하게 신경을 쓴 데다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엘리트 교육만 밟아오면서 몸에 밴 세련된 매너라는 자산이 스튜디오에서 크게 빛을 발했다. TV의 주 시청자인 젊은 세대는 케네디에게, 같은 연설을 라디오로 시청한 비교적 높은 연령대는 닉슨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고 한다. 

60년 선거의 유권자 표 차이는 49.5%대 49.7%로 고작 0.2%에 불과했던 초접전의 선거였으니 (물론 훗날 1968년과 1972년 선거에서 대권을 거머쥐게 되지만), 닉슨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결과였다. 
흥미롭게도 1971년 미국의 투표 가능연령을 18세로 낮추는 수정 헌법26조를 비준한 대통령이 닉슨이었다. 그리고 투표 연령과 관련된 개헌은 닉슨 대통령의 재선 공약 중 하나이기도했다. 

미국사를 통털어 투표 자격과 관련된 개헌은 총 세 차례  “미국시민의 인종, 피부색 또는 과거의 예속여부(노예)가 시민의 인종, 피부색 또는 이전 예속상태(노예)를 바탕으로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한 수정헌법 15조 (1870년),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수정헌법 19조 (1920년), 그리고 투표 연령 제한을 종전의 21세에서 18세로 낮춘 수정한법 26조 (1971)이다. 오늘날 정신이 온전한 그 누구도 여성 혹은 유색인종의 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않겠지만, “어린 애들”에게 투표권을 허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전히 플로리다, 켄터키, 유타를 비롯한 몇 몇 주에서는 수정헌법 26조에 대해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수정헌법 26조가 등장한 데에는, 그리고 그것이 닉슨 재임기였던 까닭은 베트남전이라고 하는 특수성이 작용했다. 2차대전 시기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최소 징집 가능 연령을 21세에서 18세로 낮추자 “전쟁에 나가기에 충분한 나이라면, 투표하기에 충분한 나이 Old enough to fight, old enough to vote”라는 슬로건 하에 투표 연령을 낮추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베트남전 확전은 더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야 했고, 그 중에서도 18세에서 21세 사이의 젊은이들은 상당수였다. 결국 상, 하원과 대통령의 전격적인 지지를 받으며 26번째 수정헌법이 통과했다. 

18세라는 연령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만큼 충분히 성숙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는 사실 없다. 하지만 21세 이상만 투표하는 나라 (대한민국을 포함해서!)의 정치적 의사 결정이 혹은 민주주의의 성숙도가 18세 이상이 투표하는 나라보다 더 나은지를 평가할 방법도 없다. 하지만 “(충분히) 어른도 아닌 그렇게 (더 이상) 아이도 아닌” 그들의 판단과 시각이 누가 봐도 성인인 이들에 비추어 덜 성숙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얼마 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17세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오바마 대통령과 만났을 때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 세계를 무장시키는 대신 책과 선생님을 보내라”고 말했다.  중국 주도하의 독단적인 홍콩 행정장관 선거방식에 반발하여 거리로 나와 경찰의 물대포 진압을 우산으로 일명 우산혁명의 주역도 젊은 학생들이었다. 이집트의 부패한 장기집권 대통령 무라바크를 하야시킨 주역도 SNS로 무장한 젊은 청년들이었다. 이 세대, 투표권은 차치하고라도, 발언의 자유가 억압되면 안되는 이유들이라고 해두자.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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