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미시시피의 여름 - 세상을 바꾸는 힘, 공감
보스톤코리아  2014-06-23, 11:58:37 
공감: 함께 共 느낄 感
며칠 전,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에 공동 연사로 축사한 빌과 멜린다 게이츠 부부의 뿔테 안경이 화제를 낳았다. “여러분들(스탠포드 대학생들)에게 세상 사람들은 너드 (Nerd)라고 부르지만, 여러분들은 그런 딱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스스로 너드를 자처한다고 들었다… 우리 부부도 그렇다.”며 너드를 연상시키는 뿔테안경을 꺼내 끼면서 좌중의 폭소를 일으켰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뿔테 안경이라는 상징적 도구를 통해 ‘너드’들에게 가진 자신들의 공감대를 드러냈던 것은, 사실 축사의 청중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영민한 두뇌를 가진 그 ‘너드’들이 세상에 대해 가져야 할 공감에 대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술 혁신이 중요하지만, 기술 자체를 위한 기술(혁신)은 딜레마를 낳는다. 만약 부잣집 아이는 컴퓨터를 소유할 수 있고, 가난한 집 아이는 그럴 수 없다면, 기술(혁신)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기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면서 기술이 양산할 수 있는 빈부격차, ‘디지털 디바이드 (Digital Divide)’에 대해 언급했다. 또한 세상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혁신 그 자체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 대한 공감 (empathy)와 연민 (compassion)이라고 덧붙였다. 

미시시피 버닝, 1964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 공감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 메세지에 공감할만한 역사가 쓰여진 적이 있다. 1964년 6월 21일, 중부 미시시피의 내쇼바 카운티에서 민권 운동 단체 CORE (Congress of Racial Equality)가 미시시피에 파견한 두 명의 뉴욕 출신 백인 활동가Michael Schwerner와Andrew Goodman, 그리고 그 지역의 흑인 민권 운동 활동가인James Chaney가 실종되었다. 

실종 전날 이 세 명의 활동가들은 내쇼바 소재 흑인 교회인 시온산 감리교회 (Mt. Zion Methodist Church)에서 약 일주일 전 발생한 화재 사건을 조사했다. 사실 이 화재는 KKK 에 의해서 자행된 방화였다. 시온산 감리교회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미시시피의 흑인들의 ‘유권자 등록’을 위해 노력했던, 그리하여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타겟이 되어 있었던 Michael Schwerner가 “자유학교 Freedom School”로 사용하려고 했던 장소였다. 

어쨌거나 세 명의 민권 운동가들은 방화 현장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오히려 방화 혐의로 연행되어 일곱시간여의 조사 끝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조사 중 이들은 외부로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는 전화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곤 행방이 묘연해졌던 것. (영화 미시시피 버닝의 그 스토리다.) 

당시의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사에서 1950년대 중반에서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기간은 공립학교에서 흑백 분리가 위헌이라는 브라운 판결 (Brown Vs. Board of Education of Topeka, 1954)을 기폭제로, 흑인 민권 운동의 역사가 쓰여지던 시기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흑인들은 백인 승객에게 자리 양보를 거부한 로자 파크스가 체포된 사건에 대해 일 년 가까운 버스 보이콧으로 저항했고, 이듬해 마틴 루터킹은 민권 운동 조직인 SCLC (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를 조직하여 비폭력 불복종의 민권 운동을 뿌리내리게 했다. 

놀스캐롤라이나의 그린스보로를 비롯한 남부의 여러 도시에서는 런치 카운터에서의 싯-인 (Sit-In) 운동이 번졌고, 그 결과로서 음식점에서의 “백인 전용 좌석”은 폐지되기에 이른다. 민권 운동 조직인 CORE (Congress of Racial Equality)는 평화주의 단체인 화해 협회 (FOR: Fellowship of Reconciliation)와 손잡고 대학생들이 버스 혹은 기차를 타고 남부 각주를 돌며 인종분리 정책에 맞선 비폭력 평화 시위인 프리덤 라이드 (Freedom Ride)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 대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반발 또한 거대했다. 특히 인구의 절반이 흑인이었던 미시시피는 그야말로 백인 우월주의의 아성과도 같은 곳이었다. 1890년, 수정헌법 14조의 효력이 연방에 관한 것이며 각 주의 공민권은 각 주정부의 권한이라는 주장으로 흑인들의 투표권을 합법적으로 박탈한 첫 주가 미시시피였다.

이제 50년대~60년대, 흑인들이 투표권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자 2차 대전 중 금지되었던 KKK가 비밀리에, 그러나 사실상 공공연하게 부활하였고, 흑인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그 폭력의 대상은 흑인 민권운동에 연대한 백인들에게도 이어졌던 것. 
KKK는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적이다. 그러나 잔인했던 것은 하얀 두건을 쓴 KKK뿐만은 아니었다. 1960년대 당시 많은 남부 백인들은 그들의 인종차별적인 메세지에 박수를 보냈더랬다. 믿기지 않지만 고작 60년 전의 일이다. 

공감, “남의 일”이 아닌 일에 대한
얼마 후 실종된 활동가들의 총상입은 시신이 시온산 교회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암매장 된 것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전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살해된 활동가 중 두 명을 설명할 수 있는 “중산층, 북부 대도시인 뉴욕의, 백인, 대학생”이라고 하는 정체성이  공분을 더했다. 미시시피에서의 투쟁은 더이상 북부-백인들과는 관계 없는 일이 아니었다. 흑인 민권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 의회는 1964년 민권법을, 1965년 투표권법을 통과시켰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칼럼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은 WisePrep 소피아선생님 (617-600-4777, [email protected])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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