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37 |
보스톤코리아 2014-06-09, 12:08:22 |
노론들의 눈에 빗나가 뒤주 속에서 굶어 죽은 사도세자는 정쟁의 희생양일 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정신병적인 증세를 보였다. 왕조실록이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에 보면 옷을 잘 갈아입지 않거나 갈아 입는데 장시간이 걸리는 소위 의대증이라는 증세가 심했으며, 그의 장인인 홍봉한은 “그의 병증에 대해 무엇이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도 없고, 병이 아닌 것 같은 병이 수시로 발작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증세들은 불같은 성격과 변덕이 심한 영조로부터 받은 모진 질책들로 인하여 생긴 조울증이라고 전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동복 동생인 화완옹주를 겁간하기도 하였다. 영조의 총애를 많이 받았던 후궁 영빈 이씨의 막내딸로 영조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자란 화완옹주는 노론계의 정치달에게 시집갔다. 딸을 낳고 잘 사는가 했는데, 딸이 백 일을 못넘기고 죽고난 후 정치달도 죽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부모들 모두 죽고 나니 오갈 곳이 없어서 영조가 궁에 와서 살라고 하였다. 그는 궁궐에서 살면서 정순왕후, 숙의 문씨, 노론들과 함께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일조했다. 마지막에는 생모인 영빈 이씨도 자식인 사도세자의 편을 들지 않을 만큼 그의 병증은 광적이었고, 무엇보다 정치적으로도 영조와 노론의 광폭을 제어할 힘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정도전과 무학대사를 좌우로 하여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송도의 지력이 다하였다 하여 천도를 계획하면서 한양과 계룡산 일대가 후보지에 올랐다. 결국 정도전의 주장에 따라 한양이 결정되었고, 또한 왕궁인 경복궁을 지으면서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여, 좌 청룡으로 북악산을 우 백호로 남산을 주장했지만, 왕궁을 동향으로 할 수 없다는 정도전의 주장에 또 밀린다. 하지만 무학대사의 눈에는 남향으로 하면 정궁의 좌측인 낙산의 기운이 우측의 인왕산보다 약해 장자의 기운이 약하고 차자가 강해 장자가 상속을 받더라도 앞의 관악산의 화기로 인하여 지탱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궁궐과 도성에 최소한 방책으로 불을 막는 해태상을 세웠다. 하지만 해태상들은 궁에서 일어나는 화기를 충분히 막지 못했고 무학대사의 예견이 적중하듯 조선의 27명의 왕 가운데 장자가 계승한 왕좌는 7번(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밖에 없다. 그중 세 왕은 외아들(단종, 현종, 숙종)이었다. 좀더 자세히 보면 2대 정종은 태조 이성계의 차남으로 장자 이방우가 40세의 나이로 태조보다 먼저 죽은 관계로 왕위에 올랐고, 3대 태종은 태조의 5남으로 1, 2차 왕자의 난을 통하여 왕좌를 차지하였고, 4대 세종은 태종의 3남이지만 태종은 성군의 자질이 보이는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고, 5대 문종은 세종의 장자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하지만 병약하여 일찍 죽은 관계로 어린 외아들 단종이 6대 왕으로 등극하였다. 그리고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수양대군은 세종의 차남이며 단종의 숙부이다. 그가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를 찬탈한 7대 왕 세조이고, 8대 왕 예종은 세조의 차남이다. 장남 의경세자(덕종으로 추숭)는 월산대군과 자산군(후에 성종)를 낳고 20세에 요절하였다. 그러자 세조의 차남 해양대군이 세자로 책봉되고 19세에 왕이 되었다. 병약하고 미성년이라 모후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이는 조선왕조의 첫 수렴청정이었다. 세조의 두 아들은 모두 병약하여 일찍 죽었는데 다행히 후손은 있었다. 예종의 첫 왕후 장순왕후의 아들 인성대군은 유아 때 사망하였고, 둘째 안순왕후의 아들 제안대군은 너무 어려서 정희왕후(세조의 비)는 의경세자의 차남 자산군을 왕으로 세웠다. 그가 9대 왕 성종이다. 10대 왕은 희대의 폭군 연산군이다. 그는 폐비 윤씨의 소생으로 성종의 장자이다. 11대 중종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등극한 정현왕후 윤씨의 소생으로 성종의 차남이다. 12대 인종은 중종의 장자이지만 첫 왕후인 단경왕후 신씨가 폐비된 후 맞이한 장경왕후 윤씨의 소생이다. 인종은 후사가 아무도 없다. 그래서 13대 왕이된 명종은 중종의 차남으로 문정왕후 윤씨 소생이다. 그리고 명종의 외아들 순회세자가 13세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왕비나 계비의 소생이 완전히 끊겼다. 조선왕조의 적통은 순회세자가 마지막으로 한명도 생존해 있지 않았다. 14대 왕 선조는 중종의 서손자이다.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의 차남이 덕흥군(후에 덕흥대원군 추숭)이다. 그 덕흥군의 3남 하성군이 선조로 왕위에 올랐다. 선조의 정비 의인왕후 박씨는 소생이 없고, 15대 왕 광해군은 후궁인 공빈 김씨의 차남이다.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의 소생인 영창대군은 광해군과 대북파에 의해 살해되었다. 16대 왕 인조 또한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인조는 선조의 서손자이다.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의 3남이 정원군(후에 원종으로 추숭)이다. 그 정원군의 장남이 인조이다. 인조의 장자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9년간 인질로 있다가 온 2달 뒤 갑자기 병사했다. 독살설이 유력하다. 인조의 차남이 17대 왕 효종이다. 18대 왕은 효종의 외아들 현종이고, 19대 왕 숙종 역시 현종의 외아들이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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