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 코리아 초대석 한국인은 어디서 왔는가 2 |
보스톤코리아 2014-06-02, 14:50:48 |
해안을 따라 남쪽에서 한국땅에 처음온 사람들 아프리카를 탈출한 현생인류는 바닷가에서 조개와 물고기를 잡아먹던 사람들이었다.지금의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 사이에 홍해가 있는데, 아프리카 해변에 살던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지금의 아라비아 반도로 움직였다. 약 6 만년전 지구환경은 빙하기여서 지금보다 해수면이 훨씬 낮았고 대륙의 크기가 지금보다 훨신커서 걸어서 이동하기가 훨신 쉬웠다. 홍해의 해수면이 약 25미터나 내려가 있고, 섬이 징검다리가 되도록 노출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바다 건너 신천지가 빤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이 지역에는 12만 5천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조개무지(패총)가 있어서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조개를 먹고 살았다는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미토콘드리아 DNA, Y 염색채 유전형 분포 패턴과 그 형성시기 등 여러 자료들을 고려할 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나타난 선조가 에티오피아 부근으로 확장하여 L3유전형 후손 일부가 6 만년전에 아프리카를 나온다. 그 일부가 해안을 따라 아라비아 반도를 지나 이락, 이란, 파키스탄, 인도 남쪽해안을 지나고 동남아시아 남쪽, 동북 아시아 동쪽을 거쳐 약 3 만년전에 한국땅에 처음 도착한다. 이들은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형 큰그룹 M에 속한 C,D,E,G,M,G 형을 가지고 있다. 약 4만 5 천년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선조가 위와 같은 해안 루트로 이동하여 약 1만 5 천년전에 한국땅으로 두번째로 이동해온다. 이들은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형 큰그룹 R 에 속한 B 와 F 형 계열 사람들이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시베리아를 통해 들어온 세번째사람들 약 4 만 5 천년전 아프리가 에티오피아 부근에서 L3 유전형 후손 일부가 중동으로 들어가고 중앙아시아로 들어가고 약 2만년전 북쪽으로 이동하여 시베리아로 이동하고 바이칼 호 부근에서 원-몽골리안이 형성되어 그 일부가 한국으로 이동한다. 이 세번째 들어온 사람들의 유전형이 한국인의 60 ~ 70% 를 차지하고 있고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형 큰그룹 R 에 속한 A, N9 형 을 가지고 있다. 약 4만 5 천년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L3 유전형 후손들이 빠르게 증식하면서 중동에 정착하고 전세계로 퍼진다. 약 4 만년전 빙하기가 해빙기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잠시동안 따뜻한 기후로 변하여서 L3후손들이 중앙 이시아로 움직인다. 이 후손들은 오랫동안 산과 바다로 분리되어 있었고 아프리카보다 춥고 태양열이 약한 환경 속에서 오래 살아오게 됨으로 유전형은 같으나 피부색이 연한 아시아인이 형성된다. 약 3만 5 천년전 중앙아시아 후손 일부가 유럽으로 이동한다. 약 2 만년전 중앙 아시아에 살던 후손들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시베리아와 북극주변으로 이동한다.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부근으로 이동한 후손들은 그곳에서 아주 추운 기후에 적응하면서 원-몽골리안이 형성된다. 바이칼 호수 부근의 말타 마을에는 2만3000년 전의 사람 주거지 유적이 남아 있다. 바이칼호는 넓이는 세계 7번째지만, 담수량을 기준으로 볼 때는 세계 최대의 호수이다. 지금도 바이칼호 주변에서는 매년 3천번 이상 지진이 일어난다. 특히 지금도 수심 420m 에서 뜨거운 물이 솟는 구멍이 있고 호수 주변에는 온천이 많다. 이곳은 소나무, 자작나무, 전나무 등 땔감이 많아 빙하기에 인류가 추위를 견디며 살아남기에 적합했다. 빙하기에 이들은 강풍과 추위에 적응하면서 체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부지고 뭉툭한 체형을 가지게 되었다. 찬바람에 대처하려 눈은 작고 가는 실눈, 추위로부터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눈꺼풀에 지방이 두툼한 눈으로 변했다. 요하 문명(흥륭와, 홍산 문화)과 동북아 사람들 약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바이칼 호 부근에 있던 원-몽골리안들은 남하하여 앞서 도착해 살고 있던 남방계 사람들과 섞인다. 이 사람들은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만 전해지는 O형의 Y염색체 유전형을 가지고 있었고 , A, N9, X등의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형을 가진 여성들을 동반하였다. 요하 부근으로 남하한 원-몽골리안들은 이 지역에 들어와 살고 있던 남방계 사람들과 섞이면서 새로운 문명을 발전시켰다. 이 문명이 요하문명이고 약 1만년전 부터 시작하여 3천 5백년전 까지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요하문명이 ‘동북아시아 시원문명’이라고 불린다(우실하, 제 5 의 문명 요하, 2012). 요하문명이 탄생할 때는 중국도 한국도 일본도 없었다. 이곳에서 고조선을 건설하였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로 연결된다. Y염색체 유전형 O2b형을 가진 남자들이 한국, 만주, 일본에 많이 살고 있으며, 요하 문명의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요녕성, 산동반도 사람들과 한국, 일본 사람들의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형 분포가 동일한 것으로 보아 여성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현지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전적인 분화 정도를 통해 분석한 결과, 한국인은 중국 조선족과 만주족 그리고 일본인 순으로 가까웠다. 그러나 중국 한족은 베트남과 함께 다른 계통에 묶여 한국인과는 유전적으로 다소 차이를 보였다. 동북아시아에 속한 중국 북경의 한족은 한국인과 다소 비슷한 결과를 보였지만 중국 남방의 한족과는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특히 만주족과 중국 동북 3성인 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중국 한족보다는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더 가까웠다. 과거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활동했던 고구려인의 유전적 특성은 중국 한족 집단보다 한국인 집단에 더 가깝다 (김욱, 과학향기, 2006). 몽골리안은 바이칼 지역에서 그원형이 잉태되고, 다양한 루트로 한반도, 중국 북부, 유라시아, 북아메리카로 이동해 간 사람들로서, 요하 부근에서 남방계 사람들과 섞이면서 동아시아 최초의 요하문명과 홍산문화를 만들었다. 이사람들이 한국인의 원형이자 한국문화의 원형을 만들었다. 중국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 동북방에 인접한 홍산 부근에서 발견된 대규모 후기 신석기시대 유적의 연대는 8천 5 백년 ~4 천 9백년전 으로 추정된다. 1955년 학계에서 홍산문화라 명명하였다. 홍산문화의 대표적 유적지는 우하량유적지다. 거대한 제단, 신전, 적성총, 여신묘, 성곽 등 국가체제의 흔적이 뚜렷하여 놀라움을 주고 있으며, 특희 적성층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보다 약 1000 년 전에 지어졌고 성벽에서 고구려 성의 특징인 치가 발견되고 곰뼈, 곰 숭배 유물들을 보아 한국 학자들은 고조선 문화와 연결시키고 있다. 신라의 곡옥을 상기시키는 용,봉, 곰 형상의 장식품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박영철(유전학 박사) 서울대학교 농생물과 졸업, 1968년 도미유학 40년간 대학교 밒 세계적인 제약연구소와 바이오텍 연구소에서 신약개발을 하고 최근 은퇴함. 현재는 우리몸에 영원히 살아있는 유전자를 통하여 보는 역사, 고고학, 신학 의 관계를 연구중임.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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