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용사에게 듣는다
보스톤코리아  2010-06-21, 15:23:33 
강경신 6.25참전유공자회장
강경신 6.25참전유공자회장
(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 김현천 기자 = “그 미군 병사는 총에 맞아 죽어 가며 “맘……맘……”하고 외쳤어요. 손으로는 땅을 긁으며 괴로워 했습니다”

60여년 전 6.25 전쟁이 한창일 당시 군인으로 전장을 누비던 강경신 6.25참전유공자회장의 말이다.

강 회장은 60년 전을 돌아보며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총성은 그치지 않았고, 곳곳엔 온통 시체가 뒹굴었으며, 언제 인민군에게 끌려가 죽거나 폭격에 맞아 죽을 지 모르는 순간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20대에 전쟁을 겪고 살아 남아 이제 80세를 훨씬 넘긴 나이에도 “지난 전쟁의 끔찍한 현장과 아픔을 잊을 수가 없다”는 그는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된다. 군인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며 여자며 할 것 없이 수많은 목숨이 죽어 넘어지고 온통 파괴 되어 지옥을 방불케 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평양 출신으로 평양고보를 졸업한 후 교사로 재직하다1948년 월남했다. 경기도 양평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6.25를 당하고, 북한 인민군의 눈길을 피해 숨어 다니다가 미 군대를 만나 미군에 입대했다.

서울 근교에 숨어 지내던 중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부모님이 거주하던 왕십리에 간 강 회장은 “아버지는 인민군에게 살해 당했고,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 회장은 옆집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의 시신을 호박밭에서 꺼내 수레에 싣고 화장터로 갔고, 유골을 화장해 나무 밑에 뿌렸다.

“아버지 뼛가루를 나무 밑에 뿌리고 난 후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 아버지 원수를 갚으려고 눈이 벌갰고, 젊은 혈기에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는 강 회장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눈시울을 붉히며 목이 메었다.

강 회장은 월남 당시 연로한 조부모가 북한에 남는 바람에 그들을 돌보기 위해 북한에 남았던 남동생을 아직도 그리워 한다. 전장을 돌 때마다 동생이 인민군으로 참전했을 거라 생각했다는 강 회장은 “인민군들 죽은 시체가 퉁퉁 불어 뒹굴고 있었다. 그 시체들을 마구 뒤져 봤다. 혹시 북에 두고 온 내 동생이 있을까 싶어서 그랬다”며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소식이라도 알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한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야만 했던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의 교차 순간을 넘나들었던 강 회장은 노병이 된 지금 매년 6월이면 메모리얼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참전용사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넋을 기린다.

참혹한 당시 상황을 말할 수 있는 노병들이 사라져 가는 세월을 아쉬워 하며 “하루 빨리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바램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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