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47회
보스톤코리아  2010-05-10, 15:05:28 
이제는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 분과의 인연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만난 지 언 21년이 지났으니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다. 어찌 강산만 변했을까. 그 세월 속에서 말이 아닌 몸소 겪었던 시집살이의 크고 작은 일들이 내게 큰 경험으로 남았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에 나도 없을 것이다. 그 경험들이 마음속에서 불덩이가 되었다가 눌리고 또 눌리다가 어쩔 수 없이 혼자서 타다 숯이 되어 삭이는 법을 알았다. 나무가 타서 숯이 되고 숯이 오래되면 보석이 된다 하지 않던가. 바로, 이런 경험이 지혜가 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아 간다.

우리 부부는 막내아들과 막내며느리지만, 큰아들과 큰며느리 역할을 많이 하고 살았다. 큰아들 부부가 군인(미 공군 대령)이기에 3년 정도마다 이 나라 저 나라 이사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역할도 그다지 힘들지 않고 프로 수준이 다 되어간다. 그만큼 시부모님과 정이 든 이유일 게다. 결혼 후 살면서 시어머니보다 시아버지의 시집살이가 더욱 힘들었던 기억이다. 그 분(시아버지)의 꼼꼼한 성격 탓에 곁에 있는 시어머님은 옴싹달싹 못하고 지내던 분이었다. 시어머니가 아닌 한 여자로 바라보면 참으로 안쓰러운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 시어머님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가 때로는 답답해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시부모님 밑인 며느리인 입장에서 무어라 말씀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결혼 10년은 그렇게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참으로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우리 집 남자(막내아들)는 아버지의 그 꼼꼼한 성격보다는 어머니의 성품을 더 많이 닮았다. 시어머님은 여느 시어머님들처럼 남들 앞에서 두 며느리의 부족한 부분(흉)을 드러내놓지 않으시는 편이다. 물론, 가까이에 친정 동생들이 살고 있어 만나고 돌아오시면 안색에 따라 그 정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말이다.

지금은 시부모님 두 분이 한국에서 몇 년째 살고 계신다. 40여 년이 되도록 미국에 사셨는데도 연세가 드시니 한국이 편안하고 좋으신가 보다. 이제 80을 앞둔 두 분이 더 연세 드시면 자식과 같은 집에 살지 않더라도 가까운 거리(자식 곁)에 계셔야 자식은 마음이 더 편안해질 듯싶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만나 20년이 넘도록 지내다 보니 이제는 내 어머니처럼 느껴진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참으로 묘하지 않던가. 아들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아내가 실랑이도 벌이고 시샘도 하며 풀리지 않는 숙제에 골머리를 싸매기도 하지 않던가.

시부모님의 자식교육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잘하셨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의 엄하신 성격과 어머니의 따뜻한 성품이 자녀들에게 큰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세 자녀 모두가 자기의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 큰아들은 '미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 공공 대령으로 지금은 와싱턴(펜타곤)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이번 유월에 한국(대사관/무관)으로 발령을 받아 한 3년 근무를 하게 되었다. 딸과 막내아들도 코넬에서 졸업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 또한, 큰아들의 작은 손자도 '미 공군사관학교'를 올봄(5월)에 졸업을 한다.
시어머님의 손자 손녀들에게 베푸시는 그 따뜻한 사랑과 정성은 그 무엇으로도 다 갚지 못할 은혜이다.

우리 집 세 아이가 할머니를 유난히 따르고 좋아한다. 지금도 셋이 모이면 할머니 얘기를 하는데 할 얘깃거리가 많은 모양이다. 세 아이를 키우며 힘겨울 때마다 어머님은 늘 곁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지금도 생각하면 시어머님께 진 큰 인연의 빚이다. 그래서일까, 남편이 어머니를 위해 무엇인가 의논을 내놓으면 단 한 번도 싫은 표정을 지은 적이 없다. 그저, '그렇게 하면 좋겠다' 좋은 생각인걸! 하며 마음을 나누니 서로 고마운 것이다.

아이들이 어려서 가끔 시집에 대한 상한 감정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의 할머니'를 많이 떠올렸다.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한 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할머니' 하면 고마움이 먼저 떠올랐기에 시아버님이나 그 외 다른 시집 식구들의 섭섭함이나 속상한 일들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시어머니'라는 호칭은 거의 쓰지 않는 편이다. 왠지 '시'자를 넣어 '어머니'를 부르면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재미있게 지내는 것을 가끔 곁에서 시아버지께서 질투를 하신단다. 늘 고마운 이름 '아이들의 할머니!'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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