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이 보는 세상 - 선인장
보스톤코리아  2008-06-30, 23:25:48 
몇 달 전 언니와 나는 같이 꽃집에 갔었다. 아빠가 오피스를 개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화환을 사러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선인장이 눈에 띄었다. 선인장은 건조한 지역에서도 잘 살아남지만 조금의 관심과 물이 필요한 식물이다. 완전히 마르도록 내버려두면 생명력이 떨어지지만 반대로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죽는다. 그래서인지 선인장은 게으른 사람들도 쉽게 키울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식물들 중의 하나다. 컴퓨터와 핸드폰 등의 전자제품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선인장은 전자파를 흡수하는 도움을 준다고 주인아줌마께서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에 혹해서 언니와 나는 각각 가장 작은 사이즈의 선인장을 구입했다.

내 책상은 지저분할 때가 많다. 내 미니선인장은 교과서와 컴퓨터 그리고 물건들에 부딪혀 넘어진 적도 많다. 난 내 방에 자주 들어가는 편이 아니라 가끔 책상 정리를 하려고 방에 들어가면 매번 책상 위의 선인장은 흙을 토해놓고 넘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갈 준비를 하기 위해 옷을 챙기려고 방문을 열었다. 흙을 흘리고 넘어져 있는 선인장에는 놀라지 않을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삐쩍 말라 있을 줄은 몰랐다. 빨갛고 탱탱하고 밝던 내 선인장은 어디로 가고 벌써 폭삭 늙어버리고 쪼그라든 노안의 선인장이 있었다. 처음엔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 뒀다. 몇 일이 지나고 언니의 선인장을 지켜봤다. 처음 샀을 때와 같은 거다. 하나도 변함없이 탱탱하고 신선한 모습의 선인장 말이다. 왠지 자존심도 상하고 열등감도 생겼던 것은, 오히려 선인장에 신경을 덜 쓰던 언니의 것이 더 건강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깟 선인장 하나 죽었다고 내가 신경을 썼어야 했을까? 물론 마음이 찝찝했다. 선인장에게 관심을 보이고 덜 보이고가 문제가 아니었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내 자신을 들킨 것 같아서 괜히 허무했다. 공부 하라는 엄마의 충고도 아니고 그저 키우던 선인장 하나 죽었을 뿐인데 난 그 날 이후로 자괴감에 선인장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물도 주고 녀석이 넘어질 때마다 잔 흙도 다시 담아주곤 했는데 왠지 선인장에게 배신감을 느낀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대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컨트롤을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남들 다 기본으로 5년 넘게 키운다는 선인장을 내 것은 고작 두 달로써 임종이라니. 정말 화가 났다. 나태해진 내 자신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을 잊고 사는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물을 더 주고 덜 주고의 문제이거나 자주 주고 아예 주지 않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인장의 특성을 깨우치고 그에 맞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선인장 주인의 임무를 제대로 끝내지 못한 내 시행착오였던 것이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 안 된다는 것이야 빤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나 타격이 클 줄은 몰랐다. 그 날 이후로 컴퓨터 책상 위에는 생기발랄한 언니의 선인장과 썩어빠진 이제 보기에 거의 죽은 듯한 내 선인장이 나란히 서있다. 볼 때마다 더 열심히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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