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흥망과 발해국의 태조 대조영 1. |
보스톤코리아 2008-04-14, 13:31:03 |
백린 (역사학자)
머리말 한국 TV에서 사극 주몽, 연개소문, 대왕사신기, 대조영 등이 방영되면서 한국의 고대사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들 사극이 문화적 가치와 정서 그리고 역사와 현실을 왜곡한다는 비난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사극 대조영을 시청하였지만 과연 한국의 고대사에 발해라는 나라가 있었느냐에 대하여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고구려의 후예인 발해는 근래에 이르기까지 먼 나라의 역사같이 생각되어 왔다. 일본의 사학자 우에다다께시는 그의 저 '발해사' 에서 말하기를 "발해국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동아시아의 고대국가였다."라고 했다. 어쨌든 사극 대조영의 방영으로 한국인이 발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_다. 나는 전쟁이나 내란을 결코 좋아하는 입장이 아니다. 그런데 평화가 계속된 나라의 역사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물을 볼 때 당쟁과 찬탈, 반란과 현명, 폭동과 구테타, 침략과 정복 등의 내란과 전쟁사의 기록이 집대성 이어야만 로맨틱하여 흥미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사극이 역사적인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장면을 보여줄 수 있다. 그로나 우리가 역사적 지식을 좀 가지고 사극을 시청하면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 비판의 의식도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우리조국의 역사를 잘 간직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국가민족의 과거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전용물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 내지 국민의 역사 이어야 한다. 사극은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하여 제작된 드라마이다. 그러므로 사극 그 자체를 모두 역사적 사실이라고 본다면 큰 오해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역사에 있어서 아이러니한 것은 그 동기가 폭동, 반란, 혁명, 구테타, 침략, 등의 전쟁사적인 기록의 집대성 이어야만 매력을 느낄 수 있어 대중의 흥미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관중의 '삼국지'가 700여 년을 널리 익히고 있는 것도 그것이 스릴이 넘치는 장면을 잘 묘사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극은 명칭 그대로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하여 작성한 드라마임으로 산업적인 측면을 생각해야 했을 것이고 또한 문화예술의 가치를 최고도로 높여야 하는 이유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극을 시청할 때 역사지식을 가지고 시청하면 역사의식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흥미 있게 시청할 수 있다. 우리가 사극 대조영을 시청했지만 이때까지 발해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었다. 사실 사극 대조영이 방영됨으로서 발해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고구려가 망하지 않았다면 발해라는 나라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발해국의 태조 대조영은 고구려가 망한지 30년 후에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사람을 이끌고 당나라 군사와 싸우면서 옛 고구려의 영토를 찾아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668년 고구려가 망한 뒤 그 지역에서 일어난 발해가 해동 성국으로서 250년간의 역사문화를 자랑하던 발해국이 왜 한국의 고대사에서 무시되다시피 하였는가 이다. 이조 정조시의 실학자 유득공은 그의 저 '발해고' 에서 지적하기를 "고려의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었지만 발해사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마저 찾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고 했다. 사실 고려 인종 22년 (서기 1145년)에 편찬한 '삼국사기'에는 발해에 대한 사실이 한 줄도 실려 있지 않다. 그 열전에서도 역사가 짧은 후삼국의 궁예와 견훤의 전기를 실으면서 발해 대조영에 대하여는 그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고려의 일연(一逸)은 '삼국유사'를 지으면서 중국의 역사서인 통전(通典)의 기록을 인용하여 발해의 역사를 말갈과 함께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신당서의 잘못된 기록을 그대로 고증 없이 전제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하여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어쨌든 발해의 역사가 간단하지만 일연의 삼국사기에 실려 있어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발해국의 역사가 이때까지 알려있지 않는 이유는 그 국력이 미약해서가 아니라, 고구려의 역사에 가리워져서 그 빛을 충분히 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앞서 본 바와 같이 발해에 대한 역사기록이 전무 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1979년 북한의 김일성 대학교수 박시형 선생이 발해사를 저술하여 김일성 대학에서 출판하였는데 이 책을 찾아 이용한 분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박시형의 발해사는 현지 하버드 대학교 옌칭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옛 발해의 영토는 지금의 중국 동 삼성 즉 만주 땅이었다. 1970년 이후로 중국의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가 발해의 유적을 본격적으로 조사하면서 발해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역사서 중에 발해전이 실려있는 것은 구당서와 신당서 그리고 통전 등 3책이다. 구당서와 신당서의 기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구당서는 발해의 태조 대조영이 고구려의 별종이라고 한데 반하여 신당서는 대조영을 본래 송말, 말갈인 이라고 하였다. 문제는 통전이 신당서의 기록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고구려와 발해국이 중국의 역대왕조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 왕조의 패권에 대항하여 싸워온 항쟁사 이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도 함께 알 필요가 있다. 중국은 사기, 한서, 후한서, 신당서, 구당서 등 역대왕조의 역사가 잘 정리 편찬되어 있어서 우리 고대사는 오히려 그 자료를 중국의 역사서에서 찾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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