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 대법관 9명 성향따라 미국 사회 '좌우로 요동'
3권분립·법치 기반 최고 권위체…
대통령지명→상원청문회로 종신 대법관 임명
트럼프 때 3명 보수 대법관으로 교체해 보수 6명 우위 구축
보스톤코리아  2022-06-26, 12:25:33 
미국 연방대법관 9인
미국 연방대법관 9인
(워싱턴=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국 헌법을 해석해 하위법의 위헌 여부를 판결한다는 표면적 역할을 넘어 당대 미국 사회가 향해야 하는 가치의 틀을 제시하는 최고 권위의 법원이다.

이번에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곤 했다.

연방대법원은 미국 최고의 사법기관으로, 사법부를 총괄한다.

미국 헌법 3조는 "미 합중국의 사법권은 1개의 연방대법원에, 그리고 연방의회가 수시로 제정·설치하는 하급법원들에 속한다"고 규정해 설립 근거를 마련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같은 기관이 없어 헌법재판소 기능까지 수행한다.

3심 재판을 관할하는 상고법원이지만, 한국과 달리 국가적 중요성을 가진 사건에 대해서만 상고허가를 통해 제한적으로 심리대상으로 삼아 판단을 한다. 대략 연간 100여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에서 처리하는 건수가 많지 않더라도 대부분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거나 첨예하게 찬반이 대립한 사안이어서 판결 하나하나가 갖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더욱이 미국은 3권분립이 철저하게 보장되고, 법치를 사회를 움직이는 근본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사법부의 최고기관인 대법원의 판결에 행정부나 의회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미국 사회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동력은 백악관도, 의회도 아닌, 연방대법원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막강한 힘을 가진 연방대법원은 '최고의 현인'으로 불리는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다. 미국 헌법에는 대법관 수가 명시되지 않았고, 의회에 대법관 수를 정하는 권한을 부여(헌법 3조)하도록 규정한다.

대법관은 대통령이 후보를 지명하고 상원에서 청문회와 임명 동의(인준) 투표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상원에서 임명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경우엔 후보 지명이 철회되기도 한다.

또 종신임기제로 신분을 보장해 사망, 사직, 은퇴, 탄핵에 의해서만 물러나게 된다.

이 때문에 언제 대법관 자리가 비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1970년 초 한 주 차이를 두고 두 명의 대법관이 잇따라 은퇴를 선언한 것처럼 갑자기 여러 명의 공석이 생기는가 하면, 지난 1994년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 임명 이후부터 2005년까지 11년간은 새로 임명된 대법관이 없기도 했다.

현재 9명의 대법관을 임명한 대통령은 ▲조지 H.W 부시 1명(클래런스 토머스) ▲빌 클린턴 1명(스티븐 브라이어) ▲조지 W.부시 2명(존 로버츠, 새뮤얼 얼리토) ▲버락 오바마 2명(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레나 케이건) ▲도널드 트럼프 3명(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등이다.

대통령들은 새로 대법관을 임명할 기회를 얻게 되면 대부분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인사들을 후보로 지명해왔다.

이 때문에 '최고의 현인'으로 불리는 대법관이 새로 임명될 때는 누가 임명되느냐보다도 보수와 진보 성향 중 어느 쪽이 다수를 하느냐가 더 큰 관심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대표적인 진보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대법관이 사망하자 에이미 코니 배럿을 후임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등 3명의 신임 대법관을 모두 보수 성향으로 채워 연방 대법원을 보수 절대 우위(6대3)로 바꿔놨다.

그가 대통령 임기가 넉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보수 성향의 배럿을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하자 '알박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대법원의 정치적 지형이 바뀌게 되면서 미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간 치열한 쟁점이었던 낙태권에 대한 연방 대법원의 판례 파기 가능성은 충분히 예견돼 왔다.

실제로 이번에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표결 투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3명의 대법관은 모두 폐기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번 판결 폐기의 1등 공신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그가 재임시 지명한 대법관 3명의 전임자는 진보 1명(긴즈버그), 중도 1명(앤서니 케네디), 강경 보수 1명(안토닌 스컬리아)였다. 대법관의 보수, 진보의 비율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거치면서 4대5(또는 5대4) 정도에서 6대3으로 바뀐 것이다.

대법원에서 보수와 진보 성향 대법관 비율이 중요해지면서 일부 대법관은 직간접으로 자진사퇴 압박을 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 초 은퇴를 선언한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 사례다.

브라이어 대법관은 올해 83세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당시 대법관에 임명돼 28년째 자리를 지켜왔으나 올해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사퇴설이 나오기 시작했고, 1월말 퇴임을 공식화했다.

올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의 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브라이언 대법관 후임에 진보 성향 대법관이 채워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주장이 퍼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진보 성향 대법관 비율이 6대3에서 7대2로 더 보수화하는 것을 우려해 조기에 사퇴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이 사퇴를 공식화하자 후임에 흑인 여성인 커탄지 잭슨을 대법관으로 지명, 상원에서 임명동의까지 받아놓음으로써 첫 흑인여성 대법관 탄생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잭슨이 대법관이 돼도 연방대법원의 보수, 진보 비율은 6대3으로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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