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횡설수설 5 ] 미신적인, 너무나 미신적인
보스톤코리아  2019-12-02, 11:16:29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2A란 특이한 번지가 그냥 우연히 끼어있나 싶었다. 그렇지만 나열된 숫자들의 기묘함이 곧 눈에 띄었다. ...11, 12, 12A, 14, 15, ... 왜 12A란 특이한 번지가 있는 걸까? 13은 왜 없을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지 퍼뜩 떠오르는 생각. 아하, 미국인들이 13을 기피하는구나.

숫자 13이 기피의 대상이 된 것은 정말 비과학적이다. 어느 금요일에 주식이 폭락했는데 마침 그날이 13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이른바 Black Friday ‘검은 금요일’이다. 서양에서 재수 옴 붙은 날의 대명사이다. 모든 것을 합리성과 과학성으로 재단하는 앵글로 색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치고는 참으로 묘하다. 

어디 서양인들뿐인가. 한자문화권에서는 죽을 死자와 발음이 같다고 해서 엘리베이터에서 四층을 F층으로 표기하거나 아예 4층 대신 5층이라 표기하기도 한다. 4층이 없는 건물들. 엄밀히 말하면 존재하는 4층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름만 5층으로 바꾼 것이다. 

중국인들은 동음이의어에 의한 기피와 선호가 특별나다. 숫자 八이 발전하다의 發과 발음이 같다고 해서 자동차 번호나 전화번호로 8을 선호하는 것은 유명하다. 오죽하면 웃돈을 주고 8이 들어간 번호를 사기도 할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미신적인 데가 있는 듯하다. 13이 왠지 불행을 초래할 것 같은 기분, 4층은 왠지 죽음을 불러올 것 같은 기분, 8은 왠지 성공을 보장할 것 같은 기분. 인간은 기분을 중요시하고 기분에 따라 살게 만들어진 듯하다. 미신으로 치부하면서도 어떤 곳의 어떤 사람들은 이런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그만큼 행복에 목마르기 때문이리라.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에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리며 들떴던 어린 시절. 어두워진 후까지도, 잠들기 전까지도, 기다리던 손님은 오지 않았다. “엄마, 우리집에 손님 안 왔어?” 선잠이 깨워 엄마에게 물어보았지만, 여전히 손님은 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를 하는 이유를 엄마는 모르셨을 것이다. 

지금은 많은 미신들이 쫓겨났다. 사람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온갖 미신을 몰아냈고 삶은 각박해졌다. 나는 차라리 과학보다는 미신을 택하겠다. 오체투지로 6천 킬로를 걸어 신의 도시 라싸에 도착하는 어떤 불교도의 고행을 보면서 나는 그걸 차마 미신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그가 모시는 신이 있든 없든, 그의 행동이 보상을 받든 못 받든 상관없다. 그는 그 행동 자체로 이미 보상받았기 때문이다. 

꿈자리가 좋은 아침, 나는 아내 몰래 복권을 산다. 그것이 나만의 미신이고 비밀이다. 2달러짜리 복권 열장을 사서 쿼터를 이용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긁는다. 물론 결과는 늘 좋지 않다. 기껏해야 4달러 정도 돌려받고 어쩌다 10달러짜리가 맞는다. 그래도 지금까지 100달러 이상 맞은 적도 있다. 그 기억으로 난 복권을 산다. 비과학적이고, 비경제적이고, 비상식적임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돼지꿈이 언젠가는 효력을 발휘하리라는 강한 미신적 신념을 따른다. 

흔히 말로 전해지는 것은 미신이라 불리고 글로 전해지는 것은 종교라 불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원시인들이 믿은 것은 미신이라 불리고 현대인들이 믿는 것은 종교라 불리는 경향 말이다. 본질적으로 동일한데도 불구하고 힘의 우열에 의해 미신과 종교가 구분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미신이 디오니소스적이라면 종교는 아폴로적인 듯하다. 미신이 원초적이라면 종교는 형이상학적이다. 미신이 본능적이라면 종교는 이성적이다. 나는 아무래도 전자에 기우는 듯하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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