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의 만룡을 신부로 맞은 보리는 늘 아내를 업고 놀았다. 결혼하기 전에도 만호태후 궁을 찾을때면 질녀姪女인 만룡을 업어주곤 하였기에, 태후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노는게 더 자연스러웠다. 보리공의 어머니인 숙명공주를 중심으로 그들의 가족관계를 보면, 숙명의 부모는 태종과 지소(진흥왕의 생모)이다. 숙명의 동생은 미실의 남편인 세종이며, 숙명은 지소의 진골정통으로 왕후를 세우려는 계획에 의해 동복이부 오라비 진흥왕과 혼인하여 정숙태자를 낳았다. 정숙태자가 만호와 사통하여 만룡을 낳았다. 만호는 처음에 동륜태자(진흥왕과 사도왕후의 장자, 진평왕의 생부)의 정비였는데, 동륜이 ‘개 죽음’을 당하면서 과부가 되었고 그 후 정숙과 사통하였다. 진흥왕과 혼인했던 숙명은 왕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진흥왕은 숙명이 동복이부의 누이라 비妃로 맞길 꺼려하였다. 이윽고 숙명은 어머니 지소의 침신으로 있던 이화공과 눈이 맞아 어느날 밤 왕성을 월담하여 성밖에서 사랑을 키웠다. 졸지에 젊은 연인을 딸에게 빼았긴 지소는 ‘닭 쫓던 개’ 꼴이 되었지만, 하는 수 없이 곧 그들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 두 딸 화명과 옥명 그리고 아들 원광과 보리가 태어났다. 

한편 숙명의 장녀 화명은 하종을 좋아했다. 하종은 미실이 세종과 낳은 아들이다. 그래서 화명과 하종은 내외종간이다. 그럼에도 미실은 하종과 화명을 결혼시키려고 하였다. 이미 한번 보리를 빼앗겼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성혼시키려고 하였다. 미실은 자신의 딸 애함을 보리와 혼인시키려했지만, 당시 진평왕의 생모로 진골정통의 주主인 만호태후가 불허하였고, 만호는 진골정통의 인맥姻脈을 키우려 딸 만룡을 보리와 혼인시켰다. 결국 미실은 이번에도 만호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고, 게다가 숙명의 두 딸 화명과 옥명 모두 진평왕의 후궁으로 들어갔다. 장남 원광은 당대의 유명한 학자였고 승려로 중국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강연하면서 그 명성을 높혔다. 신라로 돌아 온 후 ‘여래장경사기’ 와 ‘대방등여래장경소’ 등을 저술하여 신라에 새로운 불교 지식을 전하였다. 또한 귀산과 추항에게 불교정신를 바탕으로 전한 윤리강령은 당시 청소년들이 지켜야할 생활윤리인 세속오계가 되었다. 곧이어 세속오계는 화랑도들의 실천덕목이 되었고 후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크나큰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원광의 부모인 이화랑과 숙명공주 모두 김씨인데 삼국유사에는 그의 속명이 박씨로 기록되어 있다. 차남 보리는 어릴때부터 ‘화랑놀이’를 좋아하였는데 결국 화랑의 수장인 풍월주의 위에까지 올라 수많은 정예 화랑들을 양성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어머니 숙명과 외숙모 미실의 사이에서, 관계가 좋지 않았던 그들을 잘 화해시키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대원신통의 미실과 진골정통의 숙명은 인맥姻脈이 다르기에 대립할 수도 있었겠지만, 숙명은 무엇보다 미실을 제부弟婦로서 좋아하지 않았다. 화랑세기에는 보리가 미실을 위로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여 하종에 이어 591년에 풍월주가 된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공은 늘 (만호)태후궁에서 만룡을 업고 놀았다. 그러므로 길례가 끝나자 만룡이 공에게 업어줄 것을 청하자, 공이 기뻐하며 허락했다. 태후가 웃으며 “지난날 형매兄妹가 지금은 부처夫妻가 되었다. 처는 이와 같으면 안 된다” 했다. 숙명이 “부처이자 형매입니다.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했다. 마침내 보리공에게 처를 업고 만호태후를 뵈러 가도록 명했다. (보리)공과 더불어 (만룡)낭주가 (만호태후)를 뵈러 업고 나아가니, 당시 사람들이 아름답게 여겼다.

(보리)공의 손윗누이 화명花明은 … 하종공과 더불어 좋아했다. 미실은 이미 (보리)공을 만룡에게 빼앗겼기에 …. … 화명을 하종공의 적처로 삼으려 했는데, 만호가 들어주지 않고 모두 … 받아드렸다. 미실이 좋아하지 않았다. 보리공이 좋은 말로 위로하기를 “비록 혼인을 하지 않았으나, 조카가 숙모를 어머니로 삼으니 주형主兄이 포형胞兄이 됩니다.175)  이러한 상태로 세월이 가면 어찌 또 혼인하는 날이 없겠습니까?” 했다. 미실이 기뻐하고 마음을 풀며 말하기를 “너는 진정으로 나의 아들이다. 또 무슨 혼인을 하겠느냐?” 했다. 보리공은 양 통의 사이에서 이쪽저쪽을 능히 화해시켰다.176) 

미실은 이에 하종공에게 풍월주의 지위를 전하도록 권했다. 보리공은 사양했으나 어쩔 수 없이 풍월주가 되었으니, 건복建福 8년 정월이었다. 서현랑을 부제로  삼았다. 서현랑은 아양공주의 아들인데 영특하고 통달한 기풍이 있어, 태상태후가 사랑했다.177)]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