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70 |
화랑세기花郞世紀, 11세 풍월주風月主 하종夏宗(11) |
보스톤코리아 2019-04-15, 10:29:05 |
574년경, 진흥왕은 해궁에서 살다가 돌아온 미실의 가족을 위하여 사도왕후 궁宮 왼편에 새로운 궁을 하나 건축하였다. 왕의 특별배려로 모든 가족을 데리고 신궁新宮에 입주한 미실은 이모인 사도왕후와 가까이서 지내면서 대원신통의 세력을 더욱 키워나갔다. 마침내 삼생三生(과거, 현재, 미래의 삶)의 일체가 되자고 결의하였다. 한편 진흥왕은 점점 노쇠하고 병약하여 정사를 볼 수가 없었다. 당시 왕경에는 사도왕후 외에도 미실과 보명, 옥리와 월화 등의 후궁들이 있었다. 하지만 왕은 미실의 ‘품안’ 에서만 지냈다. 결국 모든 정사는 사도왕후와 미실로 부터 하달되었다.159) 특히 생의 마지막 해인 576년에는 병마와 싸우면서 연명하였고 왕후가 몇 개월 대리청정을 하다가, 미실이 맡기도 하였고, 그들의 주도로 당시 태자였던 김사륜(진흥왕과 사도의 둘째 아들)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기도 하였다. 그런 와중에 진흥왕은 만50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 때가 576년 8월, 예상은 하였지만 갑자기 왕이 승하하였다. 당시 실권을 잡고 내정을 관장했던 사도왕후와 미실, 외정을 잡고있던 세종과 미생은 왕의 붕어 사실을 비밀로 했다. 그리고 미실로 하여금 사륜태자와 거래를 하게 하였다. 색공을 통하여 왕후의 위를 보장 받으면서 실권을 놓지 않으려 했다. 당시 태자의 부인 지도知道부인 박씨는 흥도의 딸로 미실과 같이 사도왕후의 또 다른 이질녀였다.160) 그러나 사도는 미실을 총애/편애하였으며 정치적으로 한배를 타고 있었다. 사도와 미실의 계획/계략으로 미실은 사륜태자와 상통하였고, 그들은 사륜을 왕위에 올리고 미실을 왕후로 봉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사도왕후가 제위帝位에 올라서 진지왕을 통제하였다. 또한 거칠부 황종공161) 을 상대등으로 임명하였다. 거칠부가 상대등이 된 내용은 삼국사기 진지왕 원년(576년)의 기록과도 일치된다. 거칠부의 부인은 말보였다. 그들은 딸 윤옥과 윤궁, 아들 윤황을 두었다. 윤궁은 미실과 세종의 중매로8세 풍월주를 역임한 문노와 혼인하였다. 그리고 윤궁은 미실의 심복이었다. 윤옥은 미생의 첩이었고 남동생 윤황은 진흥왕의 부마였다. 진흥왕과 사도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 월륜공주가 윤황의 부인이었다. 이러한 인맥으로 인하여 왕권이 교체되는 격동기에 노장군 거칠부가 상대등에 임명되었다. 그는 나이가 많아 업무를 관장하기가 힘들어 대등의 위에 있던 노리부(사도왕후의 남동생)에게 전권을 맡겼다. 이렇게 하여 미실은 권세를 유지하였다. 미실의 아들 하종은 그 당시 ‘정변’에 참여하여 잘 마무리 한 공로로 9등급 급찬으로 승진하였다. 하종은 15세에 화랑도에 입문하였다. 그리고 그는 화랑도가 터득하고 갖추어야할 덕목을 당시의 인일자들로 부터 전수 받았다. 역사는 토함공(사다함의 형)에게 배웠고, 노래는 이화공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격검술은 문노에게 배웠고, 춤은 미생에게 배워 그 정수精秀를 터득하였다. 159) 제24대 진흥왕은 540년7월부터 576년 8월까지 재위하였다. 540년7월 ~ 541년3월 보도태후가 섭정(법흥왕의 왕후), 541년3월 ~ 551년3월 지소태후가 섭정(진흥왕의 모후), 551년3월 ~ 559년3월 친정, 559년3월 ~ 563년3월 상대등 구해공 대리청정(532년 신라에 항복한 가야국의 마지막 왕), 563년3월 ~ 575년 12월 다시 친정, 575년12월 ~ 576년3월 사도왕후 박씨 대리청정, 576년 4월 미실이 대리청정, 그리고 동년 4월부터 8월 붕어할 때까지 태자 김사륜(진흥왕의 차자, 제25대 진지왕)이 대리청정하였다. 160) 옥진의 부모는 1세 풍월주 위화랑과 오도부인이다. 옥진은 박영실과 혼인하여 딸 묘도, 사도, 흥도 그리고 아들 노리부를 낳았다. 화랑세기에서 노리부는 세종과 동일인이 아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세종과 노리부가 동일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묘도는 어릴때 법흥왕의 후궁으로 있다가 2세 풍월주 미진부와 혼인하여 딸 미실과 아들 미생을 낳았다. 사도왕후는 진흥왕의 왕비가 되어 동륜태자, 사륜태자(진지왕), 구륜, 그리고 태양공주, 아양공주, 운륜공주, 월륜공주를 낳았다. 흥도는 기오공(선혜왕후의 아들, 아버지는 홍기공洪器公, 선혜왕후는 소지왕의 왕비였는데 승려 묘심과 사통하다가 폐위되었다. 삼국유사의 ‘사금갑 사건’ 의 주인공들이 그들일 것으로 사료된다. 묘심과의 사통에서 옥진의 어머니 오도부인이 태어났다)과 혼인하여 지도를 낳았다. 지도왕후는 진지왕의 왕비다. 지도는 김춘추의 조모이다. 161) 김거칠부金居柒夫(502 ~ 579), 혹은 김황종金荒宗, 그는 진흥왕, 진지왕 때의 학자, 장군 그리고 상대등을 지냈다. 삼국사기 권 44에 나오는 그의 열전에 의하면 ‘내물왕의 5세손이고 조부는 각간 잉숙仍宿이고, 부친은 이찬 물력勿力이다. 승려가 되어서 유람을 하다가 고구려를 염탐하고자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혜량법사가 설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갔을 때 혜량이 거칠부가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아보고 잡힐까 염려되니 빨리 돌아가라고 일렀다. 동시에 부탁의 말도 잊지않았다. 후일 장수가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올때 자신을 해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신라로 돌아온 거칠부는 환속을 하여 관품이 대아찬에 이르렀다. 545년에는 여러 문사들과 ‘국사國史’를 편찬했다. 그리고 파진찬으로 올랐다. 진흥왕 12년(551년) 거칠부는 구진, 비대, 탐지, 비서, 노부, 서력부, 비차부, 미진부 등의 장군들과 함께 왕명으로 백제와 고구려 침공 하였다(혜량법사로 부터 입은 은혜를 잊지않고 말에서 내려 군사예법으로 보답하였고, 혜량의 뜻에 따라 신라로 데려와서 왕을 배알하니 왕은 혜량을 승통으로 임명하였다). 거칠부는 576년에 상대등이 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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