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56 |
보스톤코리아 2016-12-05, 12:00:01 |
이어지는 화랑세기, [금진은 이에 설성 등 5인을 몰래 거느렸다. … 다시 불러 조하방부인으로 삼았다. 그 때 … 그 어머니에게 간언하여 …이 없도록 …. 금진이 깨끗하지 않다고 말했다. 왕이 이에… 했다. 금진이 이에 울며 말하기를 “첩이 불행이도 타락했는데 … 사노私奴 설성薛成 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했다. …설성을 나마奈麻로 삼아 돌려보내고 …. … 노奴를 따랐다. 상桑을 … 뛰어났다. 조하방에 다시 들어가 …. … 죽었다. 사다함은 이에 땔나무를 쌓아 … 하고자 했다.금진에게 물었다. 금진은 울며 말하기를 “우두머리는 … 곧 설성입니다” 했다. 왕은 이에 그 장長을 취하여 … 로 삼았다. … 설성은 인하여 또 사랑을 했다. 이 해에 이화랑이 풍월주가 되고 … 토함을 부제로 삼았다. 진흥제는 사다함 또한 …에 속하게…. 금진은 또 제帝의 딸을 낳았으니, 이가 난성공주였다. … 스스로 그 무리徒와 더불어 백제를 정벌하는데 따라가 공이 있었다. … ?찬의 위를 주고 금진을 처로 삼게 했다. 사다함은 “오히려…. … 색은 바로 만물의 근본天입니다. 어머니는 홀로 정해진 배필이 없어야 되겠습니까?” 했다. 사다함은 말하기를 “… 않는가” 했다. 토함이 말하기를 ‘비록 천한 어머니의 바라는 바이나 제帝가 이미 허락했으니 소홀히 할 수 없다” 했다. 사다함은 이에 금진이 설성에게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고, 따로 살며 임금이 내린 집賜宅과 본래의 전사全舍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옥진궁주가 듣고 크게 칭찬하여, “이 아이는 반드시 그 아버지를 귀하게 할 것이다” 했다.] 금진은 초대 풍월주 위화랑의 딸이다. 위화랑의 후처인 오도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옥진궁주가 언니이다. 둘은 함께 법흥왕의 후궁이었다. 법흥왕이 죽자 금진은 궁을 나와 문상蚊上(蚊川의 상류로 추측)에서 살게 되었다. 마침내 그녀를 사모하여 5년간이나 절에 가서 서원기도를 하던 구리지가 찾아갔다. 구리지는 금진을 원화로 추대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지소태후가 ‘남모와 준정의 살인사건’ 을 계기로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도’ 를 설치하는 바람에 그들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둘은 함께 살면서 토함과 사다함, 딸 새달을 낳았다. 그리고 구리지가 독산성 전투에 출정한 뒤 금진은 구리지의 용양신 설성과 사통하여 설원랑을 낳았다. 구리지는 전사하여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이 때 임금 진흥왕이 태자를 보았다. 정비 사도왕후의 맏아들 동륜태자가 태어난 것이다. 금진은 태자의 유모로 궁에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지소태후의 반대와 사도왕후와의 각별한 정에도 불구하고 진흥왕의 마음을 갖은 교태로 사로잡아, 진흥왕의 명주(현 강원도 강릉) 행차에 동행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하여 또 다시 출궁당했다. 위의 원문 전까지 금진낭주의 간략한 삶이다. 위의 원문 역시 탈자가 많아서 정확한 해역이 쉽지않지만 다른 기록들과 함께 풀어보면 어렵지 않게 내용을 파악할 수가 있다. 금진은 진흥왕의 승은을 입고도 그 음탕한 색기를 주체할 수 없어서인지 출궁 당한 후에도 설성을 비롯한 몇 명의 남자들과 사통하였다. 그녀의 남자관계는 정략적이나 도교적인 관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색정의 발로로 보인다. 심지어 아들인 토함이 ‘천한 어머니’라고 까지 표현하며 왕이 허락했으니 어쩔수 없다고 체념했을 정도였다. 다시 궁으로 불러드려 조하방부인으로 삼았다는 앞에 탈자가 6자나 있어서 정확하게 누가 어떠한 연유로 입궁시켰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녀는 재입궁하였다. 그녀는 짧은 기간동안 궁밖에 있으면서 설성을 비롯한 다른 남자들과 사통하였다. 하지만 설성 한 사람하고만 살았다며 용서를 빌었다. 이 때가 이화랑이 4세 풍월주로 올랐고 금진의 맏아들 토함이 부제가 되었다. 그리고 금진은 딸을 낳으니 진흥왕과 명주 행차시 동행하여 임신한 난성공주이다. 한편 금진과의 사통을 용서받은 설성은 나마奈麻(신라의 관등, 11등급)로 다른 화랑의 무리들과 백제 정벌에 출전해서 공을 쌓았다. 그 공로로 왕은 그를 ‘(?)찬’으로 승차시켜고 금진을 처로 삼게 하였다. 관등인 ‘찬’ 앞부분의 탈자가 많아서 정확한 그의 등급을 알 수가 없다. 참고로 11등급 나마에서 10등급 대나마를 건너 뛰었다. ‘찬’ 자가 들어가는 최하위 9등급인 급찬 부터 사찬, 일길찬, 아찬, 대아찬, 파진찬, 잡찬, 이찬, 그리고 1등급인 이벌찬이 당시 신라의 관등이다. 원효대사의 고조부로 알려진 설성의 골품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원효대사는 6두품으로 알려져 있다(그는 과부로 있던 태종무열왕의 둘째딸 요석공주와 결혼하여 설총을 낳은 대처승이었다). 만일 설성이 6두품이었다면 그의 허용 등급은 6등급 아찬이 최고위 등급이다. 금진의 아들들, 특히 효성 깊은 사다함 마저 친모의 색사행각을 수치스럽게 생각했으며, 다만 ‘천한 어미’의 바라는 바이니, 설성과의 결합을 허락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견목록 [의견수 : 0] |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 |
|
프리미엄 광고
161 Harvard Avenue, Suite 4D, Allston, MA 02134
Tel. 617-254-4654 | Fax. 617-254-4210 | Email. [email protected]
Copyright(C) 2006-2018 by BostonKorea.com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and Managed by Loopiv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