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4. 제로니모와 나바호의 천리 길 (1)
보스톤코리아  2016-04-17, 17:34:28 
크레이지 호스 기념관 (계속)
이 크레이지호스 조각상은 Richard Cavendish가 지은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1001개의 역사적인 장소’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공사가 시작된 지 7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그 절반도 진척이 안 된 것으로 보이는데 완공까지는 최소한 수십 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14.  제로니모와 나바호의 천리 길
아파치 부족
미국의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콜로라도 등의 남서부지역과 멕시코 북부에 걸쳐 살고 있었던 인디언 부족을 총칭하여 아파치족이라 부른다. 나바호족도 역사적으로는 광의의 아파치 범주에 포함되나 현대에 와서는 분리하여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아파치족에 속하는 주요 부족으로는 Navajo, Western Apache, Chiricahua, Mescalero, Jicarilla, Lipan, Plains Apache (Kiowa-Apache) 등 7개의 부족이 있으나 이 밖에도 수많은 소수 부족과 지파가 있다. 

이들의 언어가 캐나다 서북부 인디언의 언어인 아타바스칸(Athabaskan)언어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미대륙 북쪽의 추운 지역에서 지금 미국의 남서부지역으로 1300년경에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목민이었던 이들은 전부터 그곳에서 살아온 푸에블로 인디언으로부터 옥수수와 콩 등의 농사법을 배웠다. 이들은 위그웜(wigwam, wickiup 또는 wetu)라 불리는 반구형의 움막집을 짓고 살았다. 앞에서 살펴본 아나사지 문명이라는 이름은 나바호 말에서 유래하였는데, ‘옛 사람들’ 또는 ‘옛 적들’ 이라는 뜻을 가진 옛 푸에블로 사람들을 지칭하는 나바호어이다. 그들은  스페인 이주자와의 접촉 후에는 양등의 목축도 시작하였다. 나바호족과 아파치족은 스페인과 멕시코로부터 지배를 받던 시절부터 자기네 땅을 침범해 들어오는 유럽 이주민과 갈등을 빚어왔다.

배스컴 중위 사건
대평원전쟁이 1854년 8월 19일 그래턴 소위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듯이 서남부의 아파치 전쟁도 1861년 2월 5일 벌어진 배스컴 중위(George N. Bascom) 사건이 시발점이 되었다. 1월 27일 톤토(Tonto) 아파치족 무리가 워드(John Ward)라는 이름의 백인 목장을 습격하여 가축 몇 마리와 12살 난 그의 아들(Felix)을 잡아왔다. 워드는 이 사실을 미군에게 알렸고 배스컴 중위가 사건 해결의  책임자로 선정되었다. 배스컴 중위는 치리카우아족이 이 일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하여 1861년 2월 3일 코치스(Cochise) 추장을 만나러 갔다. 배스컴의 숨은 의도를 경계하여 코치스는 부인, 동생, 조카 둘 그리고 아이 둘을 데리고 회담장소로 갔다. 배스컴이 꺼낸 문제에 대하여 코치스는 전혀 아는 게 없다고 이야기하자 배스컴은 코치스와 그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두겠다고 나섰다. 이 때 코치스만 재빨리 칼로 천막을 베고 회담장에서 빠져 나왔다. 코치스가 배스컴에게 인질을 풀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배스컴은 납치된 아이를 데려오지 않으면 인질을 석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다음날 코치스는 백인 무리들을 습격하여 이 중 세 사람을 인질로 잡았다. 대치 상황이 악화되어 두 쪽 모두 인질을 살해해 버렸다. 이때부터 치리카우아족이 멕시코인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적개심이 미국인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1858년 3월 5일 멕시코의 Kas-Ki-Yeh에 살고 있던 때에 남자들이 멀리 읍내로 교역하러 나간 사이에 카라스코(José María Carrasco) 대령이 지휘하는 멕시코 군인 400명이 마을을 급습하여 거기 있던 여자와 어린아이들의 대부분을 살해한 사건이 있은 뒤로 아파치족은 멕시코인들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이 학살사건에서 제로니모의 처와 세 자녀들도 피살되었다고 한다. 배스컴 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그 후 반세기 이상에 걸쳐서 아파치족과 백인간에 보복이 악순환 되는 살육전이 서남부 지역에서 벌어지게 된다.

아파치 패스 전투
아파치족의 첫 보복은 아파치 패스에서 발생하였다.  아파치 패스는 미대륙의 남부를 동서로 연결하는 애리조나의 동남쪽에 위치한 길목으로서 대륙관통 옛길 중 하나인 Butterfield Overland Trail이 이 고개를 통과한다. 1862년 7월 북군의 칼턴(James H. Carleton) 대령이 수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캘리포니아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아파치 패스로 접근하고 있었다. 고개 위 바위산 뒤에는 아파치 전사 약 500명이 매복해 있었다. 미군이 고개 가까이 접근하자 인디언들은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미군은 잠시만 응사하다가 곧 후퇴해버렸다. 다시 나타난 미군은 이번에는 엄청 큰 대포를 가져 왔다. 아파치족이 이렇게 큰 대포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대포 때문에 인디언들은 정면 공격으로는 승산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여 일단 물러섰다가 다음날 대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기병대를 공격하였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두 명이 사망하고 아파치는 약 열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전투중 추장인 망가스(Mangas Coloradas)가 크게 다쳤다. 그는 몇 달 간의 치료로 건강을 회복한 후 그들의 은거지인 밈브르산(Mimbres Mountain)으로 돌아왔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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