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규장각 도서의 수난
보스톤코리아  2013-03-11, 14:03:24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아침이었다. 모두들 늦잠을 자고 있을 때이다. 라디오 특별 방송을 통하여 북한군이 새벽에 38선을 넘어 남침을 해왔다는 뉴스가 나왔다. 8.15 해방 후 38선을 경계로 분단된 남북이 이념차이로 작은 전투가 종종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동족 간에 큰 전쟁이 일어나리라고 모두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북한 공산군이 무력통일을 목표로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오후가 되니 경찰대를 실은 트럭이 줄을 이어 미아리고개로 달려간다. 우리 집은 돈암동에 있었다.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가 않은 것 같았다. 27일 오후 7시 경에는 미아리 쪽으로부터 사람들이 보따리를 지고 메고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말은 동두천이 이미 공산군에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국군이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 하나를 바라고 사시던 어머니께서 걱정이 되시는지 어서 피난을 가라고 재촉하신다. 어디로 피난을 하여야 살 수 있을지는 모르나 옷 한 벌을 넣은 배낭을 메고28일 아침 집을 나섰다. 우선 서울역으로 가 보려고 창경원 뒷담을 돌아 종로 4가 까지 걸어갔다. 전차는 이미 스톱된 지 오래다. 종로거리는 온통 피난가려는 사람들로 좌왕우왕 모두 어찌할 줄 모르고 북적대고 있었다. 한강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가야 살 것 같기에 사람들의 물결에 따라 남대문까지 갔다. 그런데 웬일인가 앞서가던 사람들이 되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아침에 한강다리가 끊어져 건널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고관과 군 장성들이 건넌 다음에 한강 인도교를 폭파해 버린 것이다.

이미 저녁 10시가 넘어 어둡다. 어디로 가야하나 참으로 앞길이 막막했다. 사람들을 따라 다시 발길을 돌릴 수밖에. 그저 몽유병자와 같이 허둥지둥 걸어간 곳이 내 직장인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이었다. 도서관 정문을 열고 들어가니 숙직하는 직원은 간 곳이 없고 수위 김 씨 한분이 남아 도서관을 지키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 피난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하면서 도서관에서 자고 가겠다고 했다. 도서관의 서고는 콘크리트 4층 건물로 그 바닥이 철판으로 되어 있는 데다 70만 장서가 꽉 들어차 있어서 총탄은 말할 것 없고 폭탄이 떨어져도 끄떡없을 것 같이 생각되기에 서고에서 자기로 하였다. 숙직실에서 모포 한 장을 꺼내 서고의 맨 아래층에 들어가 신문지를 깔고 누웠다. 그런데 얼마 후 인기척이 나기에 나가 보았더니 이병도 관장님이 피난을 가시려고 나섰다가 길이 막혀서 못 가시고 도서관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현관에서 수위 김 씨로부터 백린 씨가 서고에서 자고 있다는 말을 듣고 서고로 오신 것이다. 도서관서고는 화재의 위험 때문에 일체 촛불을 켜지 못한다. 그리고 등화관제이다. 어두운 밤을 이병도 관장님과 함께 도서관 서고에서 보냈다.

이튿날 29일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 보았더니 대학가에는 개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는다. 그런데 북쪽에서 쿵쿵하고 포성이 터지고 있었다. 한강다리도 끊어져 도강이 어려워,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피난방법을 궁리하여 보기로 하였다. 이병도 관장님과 함께 도서관에서 나와 혜화동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소련제 따발총을 멘 북한 공산군 병사 2명이 혜화동 로터리를 돌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못 본체하고 동성고등학교 앞을 지나 급히 동서문 고개를 넘었다. 이병도 관장님 자택이 성북동이어서 고개에서 안녕히 가시라고 작별인사를 드리곤, 나는 줄달음을 쳐 돈암동 우리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서도 반가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난을 당한 걱정 때문이다. 1945년 해방되던 해 38선을 넘던 생각을 했다. 어찌하든 남쪽으로 가야한다. 그날 오후 배낭을 다시 메고 집을 나왔다. 세 시간을 걸어 대흥동까지 갔더니 역시 건너다니는 나룻배는 없고, 강둑에 몇몇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할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우리 집은 주택영단에서 지은 일본식 가옥이라 다다미방이 있다. 그래서 그 바닥에서 숨어 있기로 작정하였다. 땅 바닥을 고루고 가마니와 돗자리를 깐 다음에 그 위에 요와 이불을 펴 놓고 앉아서 지내기로 하였다.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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