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회 홍하상의 일본상인 탐구 |
보스톤코리아 2013-01-14, 13:29:36 |
일본의 젓가락은 유난스럽습니다. 그 용도와 모양에 따라 수십 종으로. 음식물을 찢을 때, 두 사람 이상이 공동 사용할 때, 밥을 먹을 때, 생선회를 먹을 때, 된장국을 먹을 때 등이 모두 다릅니다. 또 그 길이나 젓가락 끝의 모양에 따라 틀리며, 옻 칠을 한 것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중일 3국 중에서 젓가락 문화가 가장 세분화된 나라입니다.
바로 그 일본 젓가락을 대표하는 가게가 교토의 니시키 시장에 있는 이치하라(市原)입니다. 1764년에 창업한 가장 오래된 젓가락 가게이자, 천황가에 젓가락을 납품하는 가게입니다. 이치하라란 이름도 어용상인으로 지정된 후 천황가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헤이뵤란 자신의 이름 앞에 이치하라를 붙여 이치하라 헤이뵤에(市原平兵衛)가 이 상점의 정식 상호가 되었죠. 하지만 이치하라 젓가락은 줄곧 천황가에 젓가락을 납품하다가 효명천황(孝明) 때 납품이 중단됩니다. 효명천황의 아들인 메이지천황 때 일본의 수도가 교토에서 도쿄로 옮겨갔기 때문입니다. 토쿄로 거처를 옮아간 천황가에서는 도쿄 지역의 가게로부터 입찰 받아 젓가락을 썼습니다. 그러다가 이치하라 젓가락이 다시 유명해지는 일이 생기는데요. 쇼와 천황이 교토를 방문 했을 때 이치하라 젓가락을 준비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이치하라 젓가락은 다시 어용상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천황가가 반드시 어용가게의 물건만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궁내청이 해마다 입찰해서 쓰기 때문입니다. 어용상점도 끊임없이 긴장해야 합니다. 재밌는 것은 천황은 젓가락을 매끼마다 바꾼다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독살 등의 위험을 방지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원래 소모품의 경우 한번만 사용하고 버리는 전통 때문입니다. 이치하라에서 천황이 사용하는 젓가락을 볼 수 있었는데, 층층나무로 되어 있고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한 840엔이었습니다. 일반 젓가락이 약 2-3천엔, 비싼 것이 1만엔이 넘지요. 이치하라 젓가락의 가훈은 <쓰지 않는 물건은 판매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현재 약 400종의 젓가락을 팔고 있는데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것만 판다는 것입니다. 또 지금까지 8대를 이어오면서 각자 자신의 세대에서 한가지의 특징 있는 젓가락을 개발해 왔습니다. 대대로 창작 젓가락을 하나 이상을 남겨야 하는 것이죠. 가장 특별한 것은 미야코 바시라는 대나무 젓가락입니다. 지금 사장의 아버지인 7대째 사장이 개발해낸 이 젓가락은 150년 이상 된 가옥의 천장에서 뜯어낸 대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일본은 과거에 집안에서 취사를 해서 밥을 지으면 연기가 초가지붕을 받치고 있는 대나무를 그을리게 합니다. 수십년 간 그을려진 대나무는 나무 자체가 질겨질 뿐만 아니라 병충해가 없고 썩지 않습니다. 일반 대나무 젓가락 수명이 1년이라면 이것은 무려 15년이나 쓸 수 있습니다. 이치하라는 150년 이상 된 대나무를 전국 방방곡곡에서 구해 젓가락을 만들어 팔고 있었습니다. 또 현재의 이치하라 다카(市原高.55) 사장이 개발한 젓가락은 헤이안바시입니다. 참깨 한 알도 집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끝이 섬세한 것이 특징인데 무척 인기가 있었습니다. 헤이안 바시나 미야코 바시의 공통점이라면 쓰기 편리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써보니 일단 손가락 사이에 착 달라붙어 착용감이 좋고, 무게감이 느껴져 젓가락이 헛놀지 않더군요. 저는 이치하라 타카시에게 400종의 젓가락중의 어느 종류가 가장 마음에 드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모든 젓가락이 사랑스럽다고 대답하더군요. 이치하라 젓가락 가게는 자신들이 젓가락을 직접 만들지 않습니다. 교토에서 80km 떨어진 오바마 지역에서 젓가락 장인들이 만든 제품을 납품받아 판매만 하고 있습니다. 대신 장인들에게 젓가락의 디자인이나 나무의 재질, 칠기의 디자인 등을 주문합니다. 유행에 따라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도록 기획하죠. 또 일반가정용, 요정용, 식당용 등 업소에 따라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달라는 주문도 넣습니다. 그렇게 납품받은 젓가락을 이치하라 가게에서는 표면, 디자인, 칠기 상태, 완성도 등을 점검하여 합격된 물건만 판매하고 불합격된 물건은 모두 반품 처리 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전통적인 젓가락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매년 8월4일을 <젓가락의 날>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젓가락 문화의 전통을 후세에 이어주겠다는 것이죠. 그 문화계승의 한복판에 240년 전통의 젓가락 가게, 이치하라가 있습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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