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밖 역사 읽기 (12) : 1886년 워배시 판결과 공공의 이익에 관하여 |
보스톤코리아 2012-09-10, 15:32:48 |
소피아의 <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칼럼이 “교과서 밖 역사 읽기”라는 여름방학 지면특강 시리즈로 나갑니다. 여름 방학 동안 중고생 자녀들의 독서지도를 고민하시는 부모님들과, 독서를 통한 분석적 독해 및 비판적 사고 훈련에 관심을 가지신 부모님들께 길잡이로 활용되었으면 합니다. 칼럼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은 WisePrep 소피아선생님 (617-600-4777, [email protected])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애플-삼성 간 특허 침해 소송이 애플의 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는 뉴스는 거의 무감각하게 지나쳤었다. 사실 소송 자체에 무관심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글로벌 기업들인데, 애국심을 결부시키는 언론들도 마뜩찮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워낙 세세한 디자인과 기술 부분이 거론되기에, 소송의 내용을 따라잡는 것조차 귀찮았다. 그러나 판결 후 애플이 새롭게 제기한 소송에 대한 뉴스를 보다가 우연히 애플이“e-메일 등에서 전화번호•메일 주소를 탐지해 터치 한 번으로 전화를 걸거나 메일을 발송해 주는 기술…”등에 대한 특허권을 주장했다는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위에 언급한 이 기술은 아이폰 사용자인 나나 갤럭시폰 사용자인 내 룸메이트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기능이다. 만약 삼성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생산되는 스마트폰은 그런 기능을 생략해야한다면, 소비자들은 새로운 불편함에 적응해야하는 과제가 생기지 않을까? 선도업체가 그동안 해당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혹은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치러야했던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보호해주는 특허법 본래의 취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래도 괜찮을까 싶은 특허법 적용사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가령, 몬산토는 유전자 변형 종자에도 생물학적 특허권을 주장함으로써, 과거 정상적으로 간주되었던 농업활동들을 불법적 특허 침해로 만들고 생물종을 파괴하고 있다. 로슈나 노바티스같은 초국적 제약업체들 역시 연구, 개발을 위한 투자비를 회수하고도 오랫동안 특허법을 무기로 막강한 독점을 행사하고 싼 값의 제네릭 약품들의 시장 진입을 원천 봉쇄한다. 서론이 길었다. 어쨌거나 오늘은 대기업의 독점을 보호하기 위해‘법’이 앞장섰던 다소 오래된 케이스로 1886년 워배시 판결 (Wabash, St. Louis & Pacific Railway Company v. Illinois Case )을 소개하려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 판결은 주정부가 주간 통상 (Interstate Commerce)을 규제하는 것은 위헌임을 확인한 케이스다. 이 판결에 따라 주간 통상 위원회 (Interstate Commerce Committee)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건국기 쓰여진 미합중국 헌법은 물론, 주와 주 간의 통상문제에 대한 규제는 연방 의회의 권한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Article I, Section 8, Clause 3). 이 부분은 존 마샬 대법원에서 Gibbons v. Ogden 따라서 워배시 판결이 헌법에 기초한 판결이고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야 한다. 적어도 워배시 판결의 맥락을 알기까지는. 워배시 판결의 중요성은 그것이 1877년 Munn v. Illinois 판결을 뒤엎었다는 데에 있다. Munn v. Illinois 에서 대법원은 “공공의 이익에 관계된 산업일 경우, 그것이 일리노이 주 경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일리노이 주정부가 민간 사업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Munn v. Illinois 판결은1860년대 후반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그레인지 (Grange 농민 공제 조합) 운동의 결실이었다. 1870년대 중반 가량에는 전국적으로 약 80만명에 이르는 다수의 농민들이 그레이저 운동에 참여했는데, 이를 추진한 가장 중요한 동력은 철도회사의 횡포였다. 19세기 후반, 농산물 수송을 담당했던 철도 회사들은 당시의 독점 체제를 악용하여 농민들에게 비 현실적으로 높은 운송 요금을 부과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대부분 철도 회사가 소유하고 있던 곡물 창고 역시 독점적으로 운영이 되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의 몫이었다. 이 상황에서 철도 회사와 곡물 창고의 횡포에 맞서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농민들이 단결한 운동이 바로 그레인지 운동이었다. 결국 1871년, 일리노의주 의회는 철도 회사와 곡물 창고업자들이 농민들에게 부과하는 요금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요금 규제법을 제정하였고, 미네소타, 위스 콘신 중의 다른 주들이 그 뒤를 이어 일명“그래인저 법 (Granger Laws)”으로 불리는 요금 규제법을 만들기 시작한다. Munn v. Illinois 판결은 한 곡물 창고업자가 그레인저 법에 불복하여 제기한 소송의 결론인데, 결국 일리노이주의 승리였다. 당시 철도 요금 (혹은 곡물 창고 이용요금)은 농민들“공공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였음은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10년이 되지 않아 대법원은 워배시 판결 (Wabash Case)을 통해 “공공의 이익”에 대한 생각자체를 접어두기 시작한다. Wabash, St. Louis 와 Pacific Railway Company가 일리노이주의 그레인저 법들을 상대로 낸 이 소송 사건에서 대법원 “주간 통상을 규제할 의회의 권한”이라는 “헌법에 부합”하는 해석을 내렸다. 여기서 이 판결의 핵심은 주 간 통상을 규제할 권한이 주에 있는것인지 혹은 연방 의회에 있는 것인지에 대한 힘겨루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판결의 궁극적인 수혜자는 여러 철도회사를 합병하여 덩치를 키워온 워배시 같은 대형 철도들이었다. 워배시 케이스는 판결의 법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실종해버린 “공공의 이익”에 대한 관심 덕에 씁쓸해지는 그런 판결이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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