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寓菴)이냐 퇴제(退齊)냐? |
보스톤코리아 2012-04-16, 13:27:04 |
한국의 미래는 ‘보수’가 불고 있는 하메린의 피리를 따라 저 광란의 군사독재가 쳐놓은 불의의 함정에 안주할 것인 지, 아니면 민족사에 정의의 새 지평을 열려는 ‘개혁’의 기적(汽笛)을 따라 민족의 평화와 번영의 대안(對岸)을 향해 달리는 ‘통일호’에 탑승할 것인 지에 달려있다
17세기의 프랑스 사상가 데카르트는 이성(理性)을 억눌러 온 스콜라의 철학사조인 ‘관념적 질서’에서 인간을 해방시킨 걸출한 철학자였다. 인간의 가치를 자아적 의식(自我的意識)에서 찾았던 그는 명저(名著) [방법론 서설]에서 “양식(良識)은 인간의 공통 소유물이다” 라고 말했는 데, 그가 말한 양식은 바로 이성(理性)을 의미한다. 이성은 한마디로 인간이 사물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흑백 즉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힘이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주변의 관념이나 타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이성에 비추어 사실여부를 탐구해야 한다고 데카르트는 역설했다. 사유(思惟)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故)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명언을 남기고 있다. 파스칼도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라고 말했다. 그의 명상록은 이렇게 적고있다. “인간은 저 광활한 우주와 영원한 침묵 속에 핀 한 오라기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가운데 가장 약한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어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붕정만리(鵬程萬里) 21세기를 희망의 대안(對岸)으로 인도할 가교를 건설하여 피로 얼룩진 분쟁의 민족사에 화해와 단합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마치 프랑스의 7월혁명 직후에 발호했던 거센 반동(反動)에 비견되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조국이 겪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 어쨌든 시정잡배가 아닌 청포(靑袍)의 정치권에 아직도 낡은 관념적 질서, 저 악의에 찬 “우리가 남이가” 하던 하메린의 피리소리를 따르는 무리가, 저 광란의 유신 망령이 아직도 서울을 활보하도록 허용되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지난 주 서울에서 전해온 외신에 의하면 일부 유신잔재들이 총선 선거 유세에서 “헌법을 위반한 6.15남북평화선언을 폐기하고 관계자를 처벌하라”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외쳤다고 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고 하니 그 굴절된 ‘애국심’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이들이 지향하는 보수란 도대체 무엇인가? 미국의 경우 보수는 독립과 건국의 정신인 자유와 자주, 청교도 정신, 공화주의에 입각한 에브러햄 링컨의 노예해방 등 과거의 가치 혹은 질서를 수호하자는 운동의 집합체이다. 즉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미국의 도덕적 가치가 그 근간을 이룬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과거에는 미국이 전 세계의 피압박 민족에게 희망의 등불 구실을 했다. 그러나 네오콘으로 불리는 신보수는 국내외에서 공화주의가 표방하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오히려 짓밟고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파괴하는 ‘비미국적’ 광란을 자행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언론에서는 이들을 보수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이들에게 붙는 수식어는 극우, 혹은 ‘텍사스의 갱’이다. 문제는 조국의 보수가 지켜야할 과거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데 이들의 비극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떠받드는 어제의 질서는? 그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한 마디로 일제식민체제, 분단, 독재와 불의가 연속된 정치질서에서 악어새로 기생하면서 왜구의 힘을 빌어 동포의 피를 빨고, 분단을 막기 위해 남북합작을 주장하던 김구 선생을 죽이고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분단체제를 악용, 이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늑대출몰!)을 외쳐 파쇼체제를 강화하고, 군사독재의 비호로 민중의 노동을 착취하여 치부했던, 저 중세 암흑시대보다 더 암울했던 그 시대로 되돌아 가자는 것이 수구세력이다. 캄캄했던 야반의 억압 하에서도 민중들의 한이 한 표 한 표의 꽃을 피워 우리의 민족사 최초로 민중의 의지로 세운 ‘국민의 정부’ 초기에 민중의 거센 개혁염원의 봇물을 탄력으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 바로 오늘 수구세력의 발호(跋扈)를 가져왔다. 과오를 청산하지 못하고 불의를 덮어둔 ‘관용’이 이같은 굴절된 착각을 갖게 만든 원인이다. ‘수구(守舊)’냐 개혁이냐, 선택은 자명하다. 아리스토델레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더불어 고대 인류문화의 전성기였던 그리스의 대철학자였다. 그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라고 정의했다.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그는 “국가는 가정과 사회를 아우르는 상위조직으로서 그 목적은 선(善)을 추구하는 데 있다”는 이상론을 폈다. 정치적 동물인 인간의 특권은 바로 투표권일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내일 나의 조국에서 실시되는 총선에 모두 한 표를 던져, 아직도 서울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저 광란의 유신 망령의 잔재를 청산하고 조국의 미래에 진보적 가치의 깃발이 휘날리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여명이 밝아오기를 고대해 본다. 지금 조국의 식자간에는 과거청산에 대한 방법논으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그러나 선택은 자명하다. 그것은 우리 역사상 불의의 상징인 연산군의 간신 김안로의 퇴제(退齊)에 들어 군사독재 파쇼체제의 연장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연산군의 폭정을 고발한 충신 홍언충 우암(寓菴)의 손을 들어 민족의 화해와 통일, 그리고 번영의 길로 갈 것인가로 집약된다. 이선명 US News 주필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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