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35회
보스톤코리아  2012-02-13, 12:57:43 
"세상이 싫어서 절에 갔더니 세상이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道)가 산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기에 불교성지를 비롯하여 유럽과 미국까지 떠돌며 찾고 있습니다. 세속 출세는 시작도 못해봤으며 글자 그대로 속세에서 뛰쳐나오는 출세(出世)를 했습니다." "도범 스님은 1967년 합천 해인사에서 동곡당 일타 스님의 상좌로 출가하신 후 해인사선원을 시작으로 봉암사, 망월사, 극락암, 도솔암 등에서 참선수행을 하셨고 해인사 율원 제1회 졸업생이다. 스님은 대학 시절 대학생불교연합회 발기인으로 수련회를 통해 불교에 입문하셨다. -도범 스님의 <구도자의 발자취> 중에서- 

처음 도범 스님을 뵈었던 때가 벌써 훌쩍 10여 년이 흘렀다. 가깝게 지내는 동네 친구들 몇이 불교 신자들이 있어 문수사 행사 때 방문하여 자연스럽게 친구들을 통해 처음 인사를 드렸었다. 그 인연의 길 따라 흘러온 것이다. 교인이 절에 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거니와 신발을 벗고 법당을 들어서는 마음과 몸의 행동이 어색하기 그지없다. 물론 법당을 향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교인을 바라보는 불자들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일 게다. 그리고 다른 교인이 이 얘길 들으면 화들짝 놀라 하기도 한다. 여하튼 1년에 두 번 정도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절(문수사)을 찾아 큰스님(도범 스님)도 만나뵙고 다른 절 친구들도 만나고 돌아온다.

"하늘이 왔어?" 하며 반가운 웃음으로 맞아주시는 스님께서는 합장이 익숙하지 않아 먼저 손 내미는 교인의 손이 민망할세라 얼른 잡아주시며 평소 불자들에게 하기 어려운 포옹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오래전부터 불리는 예명이 '하늘'인데 늘 잊지 않으시고 그 이름을 불러주시니 감사한 마음이다. 종교는 달라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소통하는 보이지 않는 언어가 있음을 깨달으며 어찌나 감사한지 모른다. 2012년 2월 5일 '문수사 창건 20주년 기념법회'가 있어 절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문수사를 찾아 스님을 뵙는 날에 듣는 설법은 불법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도 알아듣기 쉬운 일상의 어체로 일러주시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듣고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절 친구들과 얘기를 주고받으며 나누는 절 음식은 채식을 좋아하는 내게 담백하고 개운해서 좋다. 그 맛 난 음식 맛만큼이나 보이지 않은 곳에서 정성의 마음과 손길이 있었음을 알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돌아온다. 함께 간 가깝게 지내는 동네의 동생이 떡을 좋아하는 언니를 알고 테이블 위에 남았던 떡을 주섬주섬 챙겨주기도 하는데 그 따뜻한 마음이 고맙기만 하다. 이렇게 사는가 싶다. 서로 다르지만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게 인생인가 싶다. 이 세상은 그 무엇이 그 어떤 무엇보다 특별할 것도 하찮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양과 색깔과 소리를 존중해주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좋은 관계란 아름다운 칼라 빛으로 곧잘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희미해져갑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 흑백사진 같은 지난날을 뒤돌아 보기도 하고 고운 물감으로 현실 속에 다시 그려보고도 싶어 합니다.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 같고 물속에 잠긴 달과 같이 잡을 수도 건질 수도 없습니다. 관계란 서로 간에 길들이는 것이며 길들이는 것도 관계가 있어야 이어집니다. 길들이고 나면 이제까지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대상의 세계가 관심이 생기며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추억이 아름답다는 것도 길들여진 지난날들이 연관되어 다시금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서로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삶이길 바라며 마음의 깊은 묵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서로 의미 있는 존재로 남아 오래도록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인생이길 간절히 기도한다. 인연이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때론 신비롭기까지 하지 않던가. 나와 너무도 다른 또 하나의 나를 만나는 인연을 가만히 생각해 보자. 아무리 싫어도 만나지는 인연이 있고 아무리 좋아도 만날 수 없는 인연이 있지 않던가. 우리의 생각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음을 느꼈을 때 더욱 인연에 대한 귀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설령 그 만남이 버겁고 힘겨운 연으로 이어졌을지라도 그것 또한 인연임을 깨닫고 받아들이며 사는 지혜의 삶이면 좋겠다.

스님께서 보내주신 <구도자의 발자취>의 귀한 명상집은 아직 다 읽어보지 못했다. 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차근차근 스님이 걸어오신 그 발자취를 함께 따라 걸어보고 싶다. 스님께서 출가하신 후 봉암사에서부터 보스턴까지 이어진 스님의 그 발자취를 낮은 발걸음으로 만나보고 싶은 것이다. 10여 년 동안 뵈었던 스님과의 인연을 생각하며 깊은 묵상(명상)의 시간을 갖고 싶다. 서로 다른 종교와 생각과 모습으로 만났지만, 그 다름 속에서 만나는 그 무엇이 깨달음이고 은혜라는 생각에 바로 그것이 인연이지 않을까 싶다. 서로 다른 모양과 색깔로 있기에 더욱 선명하고 맑게 보이는 것이다. 도범 스님을 만나뵙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인연을 생각하며.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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