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스 뚱스 in 보스톤
보스톤코리아  2011-09-12, 15:52:03 
트리니티 교회를 배경으로 한 딩스 뚱스의 메인 페이지
트리니티 교회를 배경으로 한 딩스 뚱스의 메인 페이지
(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 김가영 기자 = <보스톤 코리아> 편집부로 반가운 제보가 들려왔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만화 속 세상’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dings)을 통해 활동 중인 웹툰 작가 중 보스톤 출신이 있다는 것. 게다가 작품의 소재 역시 보스톤에 갓 정착한 신혼 부부의 얘기라고 했다.

확인 결과, 그 인기는 이미 상당한 수준. 연재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안됐지만, 블로그(www.dingstoon.com) 방문자 또한 1만명을 넘어선지 오래다.

비결이라면 역시 올망졸망 귀엽기 그지없는 그림체와 보스토니안은 물론 외국 생활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탄탄한 스토리에 있다 하겠다. 게다가 그 중독성이라니. 벌써부터 작품이 올라오는 목요일과 일요일이 기다려질 정도라고나 할까.

카플리, 하바드 스퀘어, 뉴베리 스트리트와 같은 익숙한 지명들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긴 마찬가지다. 만화와 함께 올라오는 보스톤 이곳 저곳의 사진들 역시 ‘아, 내가 있는 이 곳이 이렇게 예쁘구나’ 새삼 깨닫게 할 정도. 가히 보스토니안 모두의 필독 만화라 할 만하다.

그럼 이 놀라운 반응들에 관해 주인공 ‘딩스’, 이다혜는 과연 무슨 생각 중일까. 딩스의 단짝, 남편 ‘뚱스’까지 자리한 가운데 이야기를 청했다.

▶딩스? 뚱스?
별 다른 의미는 없다. ‘딩순이’라는 내 오래된 별명과 늘 내게 뚱뚱하다고 놀림받는 남편을 떠올려 짓게된 이름이다. 어감도 귀엽고, 부르고 보니 완벽한 콤비 같단 느낌이 들었다.

▶연재를 시작한 지 두달이 안됐다. 계기가 있었나.
작년 말, ‘딩스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으로 다음 ‘도전만화’라는 아마추어 공간에 여러차례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그걸 보고 다음 쪽에서 정규 연재를 제안해왔다. 때마침 보스톤행을 결정한 터라, 미국 생활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를 구상하게 됐다.

원래는 웹 디자인을 했던 터라 데뷔가 좀 늦은 편이다. 초등학생 시절 부터 만화가를 꿈꿨지만, 철야와 밤샘이 이어지는 일에 쫓겨 엄두를 못냈다. 물론 지금은 이제서야 만화를 시작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어렸을 때 그렸으면, 이런 느낌의 작품은 나오기 힘들었을거다.

▶그림체가 아기 자기하니 귀엽다.
3등신 캐릭터를 워낙 즐겨 그린데다, 생활툰엔 귀여운 이미지가 아무래도 잘 어울리니까. 동물로 그려볼까 고민도 했었지만, 결국엔 사람으로 낙찰됐다. 핑크색을 좋아해 주인공 딩스의 옷과 모자를 그에 맞췄고, 웹디자이너였던 경력을 살려 색을 칠할 땐 포토샵의 블러쉬 효과를 십분 활용하는 편이다.

▶연재가 시작된지 두 달이 안됐는데, 벌써부터 독자들의 반응이 상당한 걸로 알고 있다. 체감하고 있나.
첫 작품이여서 연재 전 사실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3편이 나가고 나자 블로그 방문자 수가 5,6000명이 넘어가더라. 덧글도 평균 100개씩은 달린다. 예고편만 보고 책을 내자는 제의도 받았다. ‘초반이니까 조금 더 지켜봐달라’, 하는 식으로 고사 했는데, 이후에도 같은 얘기가 들려와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첫 작품이라 하기엔 내공이 상당하다. 비법이랄게 있을까.
늘 마음 한쪽에 만화가의 꿈이 자리했던 터라 일하는 틈틈히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언젠가 소재로 쓸까 싶어 적어둔 리스트만도 수 백개는 될거다. ‘용비불패’, ‘슬램덩크’와 같은 무협만화와 스포츠만화도 줄기차게 봐왔다. 미스테리, 연애, 수사물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강풀 선배를 ‘이 분은 천재가 아닐까’ 싶을 만큼 존경한다. 역시나 다음에 연재 중인 ‘어쿠스틱 라이프’의 난다 역시 가장 좋아하는 웹툰 작가 중 한명이다.

▶마감에 관한 압박 같은 건 없나.
다행히 아직은 없다. 7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곤 저녁 무렵까지 내내 그림만 붙잡고 있어서다. 펜 마우스로 글씨까지 일일히 손으로 그려 작업하는 까닭에 한편을 완성하는데만도 4일이 걸리지만, 워낙 하고 싶던 일이라 힘들다고 못느낀다. 원고를 4편 쯤 비축해 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물론 이젠 다 떨어져 큰일 난 건 맞다.(웃음) 그래도 첫 연재부터 펑크 내고 싶진 않다. 독자들과 약속한 거니까.

 ▶보스톤에서의 신혼 생활을 엿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결혼은 언제, 어떻게 하게 된건가.
1년차다. 호주 멜번에서 만났다. 그 무렵 호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분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 분 말이 ‘멜번 의대에서 연구 중인 외로운 형 하나’ 가 있다고 해서 대신 만나게 됐다. 191cm에 달하는 큰 키가 어디서도 눈에 띄는 부산 남자였다.

그런데 이 남자, 내게 첫 눈에 반했는지 만난 첫날 커피숍에서 가방을 도둑 맞고서도 삼겹살을 먹으러 가자 하더라. 그러곤 일주일만에 사귀는 것도 아닌 사이에서 반지 선물을 받았다. 그래서 사기꾼일거라 오해도 했다. 그런데 계속 만나보니 참 착하고, 공부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1년쯤 연애를 더하고 결혼해 부산에 살게 됐다.

▶둘다 실업자가 되곤, 남편이 보스톤에 일자리를 갖게 돼 오게 된거라는 게 사실인가. 드라마틱한 구석이 있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웃음) 그 무렵 다니던 디자인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아, 두 달치 월급이 밀린 상태였다. 나아질 기미 또한 보이지 않아 그만 두게 됐는데, 남편 역시 같은 시기에 연구소를 나와야 할 일이 생겼다. 하지만 의외로 걱정이 안됐다. 둘 다 아직은 젊고, 남편이 박사 학위가 있었던 터라 전세계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후로 남편은 만화에서처럼 전 세계 연구소에 40여통의 이력서를 넣었다. 그 중 지금 다니는 하바드 연구소를 포함, 일본, 홍콩, 디트로이트에서 4통의 합격 통지서를 받았고, 어디서든 영어가 필요할 거라 생각해 보스톤을 선택하게 됐다.

결혼 전 남편과 약속한 게 있다. 아직 30대 초반이니까, 마흔 전까지 전세계를 돌아보자고. 결국 말이 씨가 돼, 구직 후 한달이 안돼 이곳에 왔고 꿈에 그리던 만화까지 시작하게 됐다. 올해로 서른이 됐는데, 이를 기점으로 아예 다른 인생이 열려 버린거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은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부모님들이 좋아하시겠다.
대견해들 하신다. 어린 시절 엄마가 장사를 하셨고, 스무살 부터는 고향인 원주를 떠나 서울과 호주로, 결혼하곤 부산을 거쳐 지금의 보스톤까지 늘 떨어져 있는 터라 그렇지 않아도 엄마와의 애정이 각별하다. 매일 두번씩 통화하곤 하는 데도 엄마 생각만 하면 늘 눈물이 나는 건 아마도 그래서이겠지.
만화가로의 데뷔를 가장 기뻐한 것도 엄마였다. 엄마가 아닌 척 리플까지 달며, 주변에 홍보하느라 얼마나 열심이신지 모르겠다. 항상 ‘얼마 받느냐’고 물어봐서 곤란하긴 하지만(웃음).

▶남편에게 지금 하는 연구에 관해 듣고 싶다.
당뇨, 관절염, 류마티스와 같은 자가 면역 질환 치료를 위한 면역학을 연구 중이다. 작년 12월말 부터 하바드 치의대 소속 연구소에서 포스트 닥터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의대를 다시 갈까 생각도 했지만, 공부를 계속 하길 원했던 아버지의 바램에 따라 여기까지 오게됐다.

공부 계속 하는 거 힘들지 않냐는 얘기를 종종 듣는데, 석 박사는 사실 시간이 해결해 주지 내가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할 줄 아는 게 이것 밖에 없었던 터라, 하루 13시간씩 학교에 붙어 있으면서도 그러려니 했다. 물론 동급생들의 높은 연봉 얘기를 듣는 날이면, 부럽기도 했지만, 발을 빼기엔 너무 늦은 후였다.(웃음)

▶겸손이 지나치다. 하바드 포스트 닥터가 쉬운 자리는 아니지 않나.
원래 공부를 잘 못했다. 고등학교 땐 반에서 말 그대로 꼴찌도 해봤다. 그렇게 지방 삼류대를 가게 됐다. 과를 선택하게 된 이유 역시 순전히 ‘생명 공학과’라는 이름이 멋져서였다. 그러다가 군대 제대 후 정신을 차렸고, 그 후론 줄곧 좋은 성적을 유지해 부모님은 물론 주변에서도 다 놀래기도 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출신이며 배경을 너무 따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죽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들 외국으로 나가고 싶어하면서도 2,3군데 이력서를 넣어보곤 안되면 지레 포기하곤, 국내 작은 연구소에 정착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영어가 두렵다고들 하는데, 석,박사를 마친 경우라면 최소한 전공 영어는 하게 된다. 자신감을 갖고 우선 도전해 봤음 좋겠다. 확실히 시야가 넓은 곳에선 연구의 업적도 달라진다.

▶보스톤엔 얼마나 더 있을 생각인가.
연구소와 2년 계약으로 왔으니까, 내년까진 어떻게든 있게 되지 않겠는가. 원하면 계약 연장이야 되겠지만, 아직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 온지 얼마 안되선 겨울이 하도 혹독해 힘들었는데, 이젠 이곳에도 슬슬 정이 붙어 가는 터라 가능한 오래 있고 싶다.

보스톤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인 보스톤 커먼과 퍼블릭 가든이 집 앞에 있다는 것도, 한국에서처럼 도전해볼만한 과제가 무궁 무진하다는 것도 맘에 든다. 조만간 살사 댄스 클래스도 등록해볼 생각이다.

▶본인처럼 웹툰 작가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해주고픈 말 같은 게 있나.
카툰을 그리는 사람이 많은 줄 안다. 그 중 차별화 되려면 독특한 소재와 개성있는 그림체 는 기본이다. 요샌 네이버나 다음에 아마추어 작가들을 위한 공간들이 많아, 실력만 있다면 도전해 보긴 어렵지 않다. 꾸준히 올리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데뷔를 하게 되더라.

웹툰 연재가 많은 수입을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그에 따른 기회가 여럿 주어진다는 점에서 분명 매력적이다. 활동의 제약 역시 없다. 나 역시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제주도에 있는 다음 본사와 불편함없이 소통 중이니까. 독자와의 실시간 소통 역시 작가 들에겐 힘이 되는 웹툰만의 장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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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툰은 ‘딩스 뚱스 in 아메리카’의 작가 이다혜씨가 추석을 맞아 보스톤 코리아 독자들을 위해 선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