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하딩을 추억하다
보스톤코리아  2010-08-30, 11:30:16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은 누구일까? 독자들이 누구를 떠올리건 간에 만만치 않은 맞수가 될 인물이 그 이름도 생소한 29대 대통령 워런 G 하딩(Warren G. Harding, 1865~1923)이다. 그런데 잠깐. 하딩 대통령 재임시기 미국 경제는 (지표만 놓고 보자면) “나름” 잘 돌아갔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기고 사교적이었던 하딩은 본디 정적도 없고, 친구는 많았으며, 대통령 선거에서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던 초절정 인기남이었다. 결정적으로 임기 중 심장마비로 사망해버린 하딩의 재임기간이래야 고작 2년 남짓이었다! 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뭘 그리 잘못했기에…?

개혁은 그만, 다시 정상으로? 몰래 먹는 술이 더 맛있다!
하딩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은 “다시 정상으로 (Return to the normalcy)”였다. 진보적 자유주의자였던 전임 우드로 윌슨 (Woodrow Wilson, 1856~1924) 대통령이 추구해온 개혁드라이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공화당 후보 하딩은 가볍게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저널리스트 윌리엄 화이트의 분석처럼 “쟁점을 다루는 일에 지치고, 이념에 넌더리 나고, 그리고 고매하게 되는 일에 싫증이 나버린”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얻었던 것이다. 한편 민주당출신 윌슨의 집권말기 미국은 (적색공포의 예에서 보다시피) 상당히 우경화되어 있었고 정국이 극도로 불안정했던 것도 공화당 집권에 유리했다. 덕분에 하딩은 집권과 동시에 노골적으로 감세, 친기업, 높은 관세로 설명되는 전형적인 공화당 정책을 펼친다.

그런데 문제는 정상으로 돌아가자는 그의 슬로건이 무색하리만치 하딩 재임시기 미국은 비정상이었다는 데 있었다. 주류의 운반 제조를 금지하는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기, 공식적인 미국은 도덕의 회복을 내세우는 척했지만, 결과적으로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들여온 주류의 밀거래를 담당하며 밤을 지배했던 마피아에게 엄청난 부를 축적시켜주었다. 이권다툼으로 갱들이 벌이는 총격전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일주일에 두번씩, 하딩대통령은 불법으로 제조된 위스키를 마시며 담배연기 자욱한 백악관 도서관에서 포커판을 벌였다고 한다. 한편, 이른바 <하딩 스캔들> 로 알려진 초대형 비리사건이 빵빵 터졌다. 점입가경인 것은 비리 스캔들의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하딩의 대선을 도왔던 그의 “좋은 친구들”이었던 것.

대통령의 절친들, 백악관을 접수하다
톡 까놓고 말해서 하딩은 대통령 재목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나는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 직책을 맡아서는 안된다”고 고백했을 만큼 (자기 인식만은 아주 훌륭했다). 정치적 야심은 둘째치고 대책 없이 무능하고 무식하기 한량이 없었고 연설도 형편 없었다. 게다가 도박, 여자, 술을 즐겼고, 골프광이었다. 이런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이가 바로 정치기획가이자 오하이오 공화당의 실세 정치기획가였던 해리 도허티다. 일찌감치 정치권의 계파 갈등의 틈새시장을 간파, 꼭두각시로 적합한 하딩을 대통령으로 내세운 혜안(!)덕에, 도허티는 하딩 행정부의 법무부 장관에 기용된다. 도허티와 더불어 오하이오 갱으로 불리는 대통령의 “절친”들도 골고루 요직에 임명되었다. 친구이자 뉴멕시코 출신 상원의원이었던 앨버트 폴을 내무장관에, 막역한 포커 게임 동료였던 찰스 포브스를 재향군인회장에 앉혔던 것.

제일 먼저 터진 비리 스캔들의 주인공은 재향군인회장 포브스. 보훈 병원 건립 예산으로 배정된 수백만 달러를 횡령하는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 이어 막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법무장관 해리 도허티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에서 압류된 독일 재산을 반환하는 과정에서 부정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포브스는 망명했고, 도허티는 겨우 기소를 면했지만 국정에는 타격이 컸다. 그래도 마음 약한 하딩은 도허티를 해임시키지도 못하는 훈훈한 우정(!)을 보여준다.

오하이오갱들이 출연한 비리 종합세트의 압권은 내무장관 폴이 주연한 티포트돔 스캔들이다. 미 해군은 1914년부터 와이오밍주의 티포트돔과 캘리포니아의 엘크힐스에 연방 원유 저장고를 설립,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폴이 연방 원유 저장고의 소관을 자신의 부처로 이관시킨 뒤, 수십만 달러 어치의 뇌물을 받고 민간 업자들에게 티포트돔의 석유 굴착권을 넘겨버렸던 것이다.

1923년 8월 알래스카, 하딩은 행정부에서 부패를 추방시키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런데 그 약속은 주어 없이 실현되었다. 알래스카에서의 연설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오던 중 샌프란시스코에 잠시 머물던 하딩에게 상원의 조사결과 티포트돔 스캔들의 주인공이 내무부장관 폴이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하딩은 (아마 정신적 충격에 의한) 심장마비로 급사했기 때문이다 (암살설도 있다). 하딩이 사망하자 영부인 플로렌스 하딩은 남아 있는 모든 서류들을 불태워 없앴다고 하는데, 또 다른 비리 스캔들의 증거는 그렇게 소각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새 내각 청문회, 하딩을 추억하게 하다
소통과 통합을 기조로, 젊어진 내각 친서민 정책을 펼쳐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개각발표 후, 새로운 장관 후보자들의 역량에 호기심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청문회 뉴스를 보다보니, 나이만 다소 젊어졌다뿐, 장관 후보들이 하나같이 각종 실정법을 위반했고, 크고작은 권력형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범법자들이었다. 당장 기소되어야 할 분들이 청문회에 나와서 죄송하다, 불찰이다, 기억이 안난다, 관행이었다고 변명한다. 반성하고 열심히 일하겠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청와대도 도덕적 문제지 업무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며 인선을 철회하지 않을 분위기다. 하지만 고위공직자에게 도덕과 준법의 문제가 어떻게 업무능력과 무관할수 있을까?

하딩이 최악의 대통령 꼬리표를 끊어내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그가 그렇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것도, 결국 그 짧은 기간 신나게 해먹은 측근들의 비리와 도덕불감증때문이었다는 역사의 가르침은… 멀쩡한 외모로 그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만큼이나 엄중하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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