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 다른 생각 - 황진이
보스톤코리아  2008-07-21, 19:28:01 
황진이                    

2007년 작
감독: 장윤현
주연: 송혜교, 유지태, 류승룡


송도에는 꺾지 못할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박연폭포와 화담 서경덕, 그리고 황진이입니다. 후세에 사람들이 ‘송도삼절’이라고 불렀다지요. 송도는 지금의 개성을 일컫는 옛 이름입니다.  

황진이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 더 이상 양반 댁 아가씨로 살아갈 수 없게 되자, 기생이 되어 세상을 발밑에 두고 마음껏 조롱하며 살겠노라 다짐을 합니다. 천하의 명기가 된 황진이는 화담 서경덕을 꺾어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던 길에 크게 깨닫고 돌아옵니다. 자신을 찾아온 황진이에게 서경덕은 말합니다. “자연이 너의 마음을 흔들지 않는 것은 자연에겐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너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삶에 연연하는 너의 이기적인 마음이다.” 그러자, 황진이가 묻습니다. “제가 그 마음을 버린다면 세상을 알 수 있습니까?” 서경덕이 답합니다. “세상 모두가 너와 하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리요, 너의 참모습이다.”
황진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견과 모순으로 뒤엉켜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황진이도 사람들을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삶에 연연하는 마음을 버리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된다는 깨달음에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름 없는 풀처럼 아무 곳에서나 살아갈 수 있고 바람처럼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떠돌며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자기 안에 있는 원망과 분노와 미움, 설움 이런 것들을 다 버리고 편안해지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겁니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바람이 불면 그냥 바람이 부는 것일 텐데, 사람들은 산들바람이네, 폭풍이 몰아치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라는 둥 온갖 마음이 들어간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 한 점에도 다양한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의미를 따져보나 봅니다.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이 말려들어가고 있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한편에선 ‘느림의 미학’을 들고 나오고 있지요.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천천히 살아가는 것은 자연을 닮아가며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은 결코 지칠 줄을 모릅니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늘 한결같은 보폭으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늘 지칩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꾸 과하게 보폭을 넓히며 줄달음치기 때문이지요. 자, 이제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한 숨 돌린 후 다시 본래의 걸음걸이로 돌아가는 겁니다.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가기 위해서요.

한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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