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과 점(占)-수상(手相)-2 |
보스톤코리아 2010-06-28, 12:11:24 |
옛날 중국의 은나라에 백이와 숙제라는 형제가 있었는데 주 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치려고 하자 그에 반대하다가 역부족하여 수양산으로 들어가 비참하게 굶어 죽었다. 백이 숙제는 자기의 비참한 운명을 한탄하며 죽어갔을 것이다. 공자님은 제자의 그 같은 질문에 답하기를 “인(仁)을 구하려다가 인을 얻었는데 거기에 무슨 한탄이나 원망이 있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논어술이편 참조)
선의 반대개념이 악이다. 백이숙제의 수양산 아사를 선이라고 한다면 폭군 주왕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굶어 죽은 것이니 주왕의 폭정은 최선이 되어야 한다. 백이 숙제의 아사에 대한 공자님의 견해는 과연 옳은 판단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적선지가 필유경(積善之家 必有慶) 이라는 말이 있다. 선을 많이 쌓으면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분히 유교적인 언어이다. 유교에 있어서 선은 기독교에 있어서 사랑과 같은 것으로 최고의 덕목이다. 그런데 적선이라는 그 말은 흔히 의연금이나 시주를 얻으려는 동냥의 속된 말로 들리기도 했다. 옛날 로마의 레오 10세 황제가 베드로 성당을 신축하기 위하여 자금을 조달하고자 면죄부를 만들어 현금을 촉구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일이겠다. 그런데 웃기는 일은 모금원이 말하기를 헌금통에 돈이 떨어지는 소리가 딸랑하고 들리는 순간 죄는 곧 소멸된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 말이 과연 진실한 것이었을까? 종교과학에 있어서도 진실의 반대는 가짜 즉, 허위라는 것이다. 1527년 마틴 루터가 면죄부를 반대하는 95개조로 된 성명서를 빈덴 베르크의 성문에 붙여 놓음으로써 종교개혁의 봉화가 올려졌던 것이다. 이에 따라 기독교와 세계사의 진운에 큰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중세사는 근세사로 넘어오게 된다. 헌금도 시주도 또한 분배도 가진 것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신라 제 27대 경덕왕은 아버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최대의 종을 주조하려다가 그만 실패하고 붕어하였다. 그 후 아들 혜공왕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대종을 주조하여 태종대왕의 원찰인 봉덕사에 안치하였다. 이 종이 속칭 에밀레 종이다. 에밀레 종의 전설에 의하면 혜공왕은 대종을 주조하기 위한 기금 마련으로 승려를 각처에 파견하여 모금하였던 것인데 한 가난한 여인이 시주에 나선 스님에게 안고 나온 어린 딸을 보이면서 이것밖에 줄 것이 없다고 자랑하다가 그만 스님은 그 아이를 빼앗아 가지고 가 대종을 주조하는데 사용하여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이 전설은 종교의 심오한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빙자한 적선이 얼마나 가혹하고 무리했던가를 잘 반영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어떤 위인이 죄를 범하고 그것을 모면하고자 인권을 앞세워 국법에 반항하다가 한계에 이르자 자살로서 끝을 맺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자살행위가 선이었겠는가. 아니면 운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자살행위가 선이었다고 본다면 국법은 그 반대로 악이 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했다. 국민이 법을 지키지 않으려고 하면 그 나라의 장래는 볼 장 다 본 것이다. 모든 것을 선 악의 2분 법으로 해석하려 한다고 비난할지 모르나 종교과학에 있어서도 선의 반대 개념은 악이라는 것이다. 소유를 말하다 보니 얘기가 딴 데로 많이 흐른 것 같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 손금에 대한 것을 말하기로 하자. 세상은 인생을 이름하여 운명적 존재라고 한다. 사람이 이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운명을 다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을 팔자소관이라고 한다. 공자님께서는 말하기를 나를 낳으신 것은 아버지요 나를 기르신 것은 어머니라고 하셨다. 서산대사 휴정은 “회심곡”에서 이르기를 아버지의 뼈를 빌고 어머니의 살을 빌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했다. 그것은 육신을 두고 한말이다. 그런데 구약성서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고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이세상에 보낼 때 맨손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시고 이세상에 나아가 만물을 지배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필요한 소유와 재능을 주어서 내보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세상에 태어날 때에 자기 일생의 운명을 손에 꼭 쥐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그것이 곧 손금인 것이다. 손금에는 생명선, 건강선, 감정선, 결혼, 재물, 관운 등을 표시하는 다양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손금을 보고 장래의 운수를 판단하려고 한다. 과연 손금이 일생의 운명을 말해 주는 것일까? 손금에 의하여 일생의 운수를 설명해주는 것을 수상법(手相法)이라고 한다. 수상법은 동양에서보다 서양사람들이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수상법은 서양에서 더 크게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어쨌든 서양사람들이 손금 보는 방법은 동양사람들의 손금 보는 방법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서양 사람은, 다음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상법을 체계화하여 구체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수상법은 우리네 동양사람이 손금 보는 방법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에 여기에 구태여 번역하지 않는다. 과연 손금이 진실로 인생의 운수를 말해주는 것일까?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손금이 인생의 운명을 표시해주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을 운명론자라고 한다. 자기가 운명론자인지 그것을 믿지 않는 이상주의자인지 또는 현실주의자 인지는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할 문제이다. 공수래(空手來)가 아니라, 공수거(空手去)이다. 인간이 이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의 복을 손에 꼭 받아 쥐고 태어났다가 일생의 운명을 다 마치고 저 세상으로 갈 때는 이세상에서 얻은 처, 자식, 친구, 명예, 재산 등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놓아두고 빈손으로 가야 한다. 공수거이다. 저 세상은 물질의 세계가 아니고 영의 세계이기 때문에 소유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이세상에 올 때 자기의 운명을 손에 꼭 쥐고 오지만 갈 때는 아무것도 가지지 아니 하였다고 손을 펴고 간다는 것이다. 말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1日 3성이라야 한다”는 말이 있다. 손금을 가지고 운명을 논할 것이 아니라 과연 자기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수하고 근면하여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매일 반성하면서 경건한 자세로 하루에 3번씩 기도 드리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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