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46회 |
보스톤코리아 2010-05-03, 15:17:37 |
4월 들어 내내 많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예전보다 집안일이 줄어들 때가 되었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다. 남편의 비지니스 시간을 맞추다 보면 출근 시간이 늦고 귀가 시간이 늦은 탓에 아침 시간 반나절은 훌쩍 지날 때가 많다. 요즘은 그 시간을 활용하느라 시간표까지 작성했다. 예전 같으면 싱크대에 설거지 거리와 세탁기에 빨랫감도 쌓아놓고 느긋하게 글을 쓰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무엇이든 미루지 않고 일찍 치우고 깔끔히 정리하고 시작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습관이 오래도록 이어지니 개운한 느낌이 들어 좋다.
그렇다고 그동안 해왔던 일들에 대해 잘했다, 잘 못했다는 지적은 나 자신에게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는 그때의 사정이 있었을 테니 굳이 지난 일을 들춰 마음 상할 일이 뭐 있을까. 오늘, 지금 여기에서 만나고 느끼고 누리는 행복이 제일 중요한 일인 이유이다. 세 아이가 훌쩍 자라 모두 대학생이 되고 곁에 함께 있어 고마운 남편의 머리가 희끗희끗 거리는 것을 보면 세월이 흐르긴 흐른 모양이다. 언제나 젊기만 할 것 같던 남편도 이제는 중년에 들었으니 저 사람이 바라보는 아내인 나도 역시 그저 중년의 여자로 보일까. 살면서 좀처럼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나 편한 대로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모자도 쓰고, 신발도 신고 다녔다. 그렇게 철없이 푼수처럼 살아온 날들이 있어 세상의 나이 50인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오늘에도 여전히 행복한가 보다. 우리들의 삶이 그렇듯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때로는 오늘의 행복을 놓치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 잃어버린 소중한 시간을 나중에 가서 찾으려 하면 찾을 수도 없거니와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나 주변의 사람에게 힘겨움을 주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긴 삶의 여정을 통해서 여러 번 바뀌는 나를 만난다. 부모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받고 자라던 어린 시절과 결혼 후 이루어진 남편과 시댁 가족들과의 새로 엮어진 삶이 있다. 또한, 아이들을 낳고 부모의 자리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다 보면 어느새 40을 훌쩍 넘어 50이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열심히 살아온 날을 뒤돌아 보면 흐뭇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잘 자라 준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기도 하다. 하지만, 문득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 '그럼, 나는 누구? 나는 뭘까?' 하고 멈칫 서서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다시 묻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살면서 인생에 대해 꿈을 꾸며 많은 밑그림을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 그림을 스케치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을 지우고 또 그리다 또 지우던 일이 반복되었던가. 그나마 그려가는 그림이 조금씩 마음에 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캔버스의 그림은커녕 그 종이마저도 어디엔가 구겨서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란, 이렇듯 하루의 일상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들이 모여 인생이란 긴 여정의 그림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그림이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던 그렇지 못하든 간에 그 그림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인생의 중반기인 40대에서 50대에 이르면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날들이 조금씩 제 색깔과 모양을 갖춰간다. 그 길이 평탄했든, 그러하지 못했든 간에 남이 아닌 내 삶의 행로이다. 그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도 없이 내가 걸어온 나의 인생길이다. 남을 탓하며 살기에는 남은 인생이 그리 길지만은 않음을 깨달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의 색깔과 모양이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닐지라도 그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동안의 삶이 보일 것이다. 삶의 굴곡진 마디 마디마다 간절하고 애틋했던 그 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다. 불혹(不惑)의 나이 40대까지가 매일 매시간마다 밑그림인 '삶의 스케치'를 하고 살았다면, 지천명(知天命)인 50에는 인생 여정의 명암(明暗)인 '인생의 소묘(데생)'를 하며 사는 나이라는 생각을 한다. 드로잉(Drawing)을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밑그림을 스케치하다 선의 굵기와 선의 강도 변화에 따라 대상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소묘(데생)에서 선의 강도 변화로 빛과 그림자의 명암관계를 표현하는 것처럼 우리의 긴 인생 여정도 그동안 살아온 삶의 굴곡의 경험과 이해가 지혜가 되는 것이다. 지천명으로 가는 길목에서 지혜로운 인생 소묘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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