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45회
보스톤코리아  2010-04-26, 12:21:43 
세상에 어찌 개만도 못한 사람이 있을까마는 가끔은 은혜도 모르고 배신을 일삼는 배은망덕한 사람을 보면 문득 스치며 지나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다. 주인 말에 순종하고 따르는 순한 개를 만나면 참으로 영특하다 싶다. 개는 그래서 옛 어른들 말씀에 영물이라 일컫지 않았던가. 우리 집에도 귀염둥이 강아지(종류: rat terrier) '티노'가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가족이 밖에 외출했다 돌아오면 대문에서 꼬리를 흔들며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모른다. 가끔 동네에서 미국 노인들이 지나칠 정도로 강아지를 사랑스러워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 부부와 가끔 만나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며 지내는 부부들이 몇 있다. 그중에서 한 부부가 아들 녀석이 대학에 들어가고 적적하니 강아지를 하나 키우게 되었다. 그 강아지가 그냥 여느 강아지가 아닌 한국의 그 유명한 '풍산개'라는 것이다. 하루는 우리 집에서 친구 부부들의 모임이 있어 그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아직은 태어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어린 '풍산강이지'였지만, 키는 제법 크게 보였다. 얼굴 생김새를 가만히 살펴보니 눈과 눈 사이의 미간이 어찌 그리 좁아 보이는지 정말 '한국 토종개'의 얼굴이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바로 '풍산 강아지'였다. 눈처럼 하얗고 고운 털을 가진 강아지는 늘씬한 몸매에 뒤태는 어찌 그리도 곱던지 강아지를 안고 온 부부가 자랑이 끊이지 않았다. 두 부부의 모습처럼 강아지도 순하고 낯설어하지도 않고 우리 집 강아지와 몇 시간을 잘 놀다 돌아갔다. 엄마 아빠를 따라 놀러 왔던 아이들 몇이 저렇게 하얗고 예쁜 강아지 하나 사달라는 통에 3개월 된 '풍산 강아지'에게 어서 강아지를 낳아달라고 애원을 하며 억지를 부렸다. 이미 강아지가 자라 새끼를 낳으면 가져갈 가족들의 순위가 정해지고 말았다.
한국 토종이라는 말에 더욱 점잖고 귀해 보인다. 우리는 강아지 이름을 듣고 한참을 웃음을 터뜨렸다. 다름 아닌 강아지 이름이 '풍월'이라는 것이다. 풍산개의 '풍'자를 따서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강아지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럼, 풍월이는 짖지 않고 읊겠네?" 하는 얘기에 우리는 또다시 한바탕 웃고 말았다.
그 풍산 강아지 여주인의 이름이 '명숙'이었다. 풍산 강아지 이름 덕분에 '풍월이 엄마는 명월'이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요즘 '명월'이 이름으로 그녀를 부른다. '풍월이와 명월이'의 모습이 여러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선사한다.

"개만도 못한 사람이 어디 있고 사람보다 나은 개가 또 어디 있을까.'"
이렇듯 말 못하는 짐승도 주인을 섬기고 따르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며 나누는데 때로는 삶에서 제대로 사람의 몫을 하지 못하고 외면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가끔 사람이 아닌 미물들에게서도 배울 때가 많다. 저 공중의 새들과 땅 아래의 미물들 그리고 들가의 들꽃을 보며 진정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자신에게 물을 때가 많다. 신(神)이 만들어 놓은 귀한 사람의 존재와 삶의 가치와 목적을 생각하며….

집에서 개를 키우다 보면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과 책임감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교육이 되기도 한다. 아침저녁으로 밖에 데리고 나가 걷기도 하고 볼일을 보고 치우는 일 처리까지 가르칠 수 있어 좋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랐다. 물론, 요즘처럼 집안에서 키우는 '애완견'이 아닌 밖에서 자유로이 활보하는 일명 '똥개'를 어머니는 늘 서너 마리를 키우셨던 기억이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천명'으로 가는 삶의 길목에서 그때의 그 기억들이 마음의 여유로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풍월이와 명월이' 얘기로 부부들이 만나면 할 얘기가 많다. 그야말로 '사람판'이 아닌 '개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나 아이들이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것도 바로 '개판'인 까닭이다. 가끔은 이렇듯 삶에서 함께라는 것을 동물이나 식물에게서도 느끼며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온 우주 만물의 생명들이 함께 어우러져 호흡하고 있다는 귀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이 너른 세상을 혼자서는 절대 살 수 없음을 안 까닭에 함께 사는 법을 매일 조금씩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작은 것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큰 마음인 까닭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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