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40회
보스톤코리아  2010-03-22, 14:26:52 
누군가를 만나 몹시 좋아하는 일은 하루의 삶이 즐겁고 행복해지는 이유이다. 삶의 여정을 살아오면서 만남의 기쁨보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 스치고 지날 때가 있다. 어쩌면 변명 같지만, 일찍 부모 형제를 떨어져 살면서 그리고 타국에서의 생활이 많이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의식 안의 보이지 않는 무의식 속에서 자리한 '덜 자란 아이'가 가끔 고개를 쳐들고 올라오기도 한다. 아마도 친정에서 쉰둥이 막내로 자라 철없이 칭얼대던 내 모습일 게다. 가끔 그 칭얼대는 아이는 사랑받고 싶어서 따뜻한 사랑이 그리워 표현하는 한 모습일 게다.

20대 초반, 몇 년을 뉴욕에서 지냈다. 그때를 기억하면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다. 뉴욕의 도시는 젊은 심장을 닮았다. 높은 빌딩 숲 사이 내딛는 빠른 걸음과 함께 움직이는 어깨는 시원한 바람을 일으킨다. 겨울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겨울의 뉴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무렵 한국말이 서툴고 눈망울이 말갛던 한 남자를 만나 그와 죽도록 사랑에 빠졌다. 우리는 준비 없는 결혼을 서둘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비지니스를 공부를 하는 상태에서 결혼 승낙을 얻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허락을 얻고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서로 자라온 환경과 언어 그리고 문화 차이로 타국에서 홀로 견뎌야 하는 결혼 생활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주변에 많은 시댁 가족들과 겪고 이겨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 답답한 마음을 남편에게 다 털어놔도 이 남자는 병든 속을 읽어내지 못했다. 아마도 그때 알게 모르게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생각이 한참 후에야 마음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토록 답답했던 속을 그 어디에다 내어놓지 못했다. 다만,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일 밖에 내 마음을 달랠 그 어떤 방법이 없었던 때였다.

그 시절 그 터질 가슴을 달래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며 살았다. 늦은 밤, 이른 새벽 남편과 세 아이를 재우고 아래층에 내려와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쓰며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고 안정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렵 교회에 새로운 담임 목사님이 오셨다. 여느 목사님과는 달리 영성에 관심을 갖고 성도들을 대하는 분이었다. 처음 만났던 느낌이 새롭게 다가온다. 첫 예배를 시작하고 귀한 말씀을 듣고 마치는 시간 성도들과 악수를 하며 처음 내게 하셨던 말씀이 '시인이시죠?' 하고 내게 악수를 청하셨던 기억이다.
'시인이시죠?' 하고 건네온 목사님의 그 말 한마디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시인'이 되었다. 김춘수님의 '꽃'의 시편처럼 그렇게 말갛게 피어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고운 삶의 노래가 아닌가 싶다. 가끔 교회지에나 다른 지면을 통해 글을 올리긴 했지만, 시인은 아니었다. 그 누군가 '시인'이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한 가정의 아내이고 엄마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목사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내게 귀한 인연이었다. 그분은 그 어느 종교에도 열린 마음으로 듣는 편이었고 타박하지 않고 마주하고 얘기하는 분이었다. 그런 그분의 목회 방향이 내게는 큰 도전으로 다가왔으며 신앙에 대한 열정의 골을 트게 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점을 끄집어 내는 놀라운 은사를 가지셨다. 그 후로 내게 있는 글쓰기 작업에 큰 도움을 주신 분이었다. 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준 분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 곁에 함께 했던 다른 목사님(시인)이 한 분 또 계시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에 있어 귀한 분을 만났다는 것은 큰 은혜이고 축복이다. 이 두 분을 생각하면 내게 주신 그 사랑이 너무도 고마운 마음이다. 물론, 교회 활동에서 회의 석상에서 서로 부딪히기도 몇 번 했지만, 그것은 공적인 일이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님을 다시 생각해 본다. 엊그제는 그분이 7월 1일 날짜로 다른 곳으로 떠나신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목사로서는 진정 좋은 일(감리사)로 떠나시는 것이지만, 못내 마음이 서운했다. 그분과의 인연이 벌써 8여 년이 흘렀던 것이다. 그 8여 년의 세월을 따라 하나하나씩 떠올리며 생각해 보니 고마운 마음 뿐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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