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39회
보스톤코리아  2010-03-15, 14:36:19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털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삶과 침묵' 中 -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람과 자연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일깨워 주시던 '무소유' 법정(法頂)스님(78)이 2010년 3월 11일 입적하셨다는 한국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며칠 전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지병인 폐암으로 위중하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스님께서 입적하셨다는 얘기에 어찌나 서운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던지 밤잠을 설치고 말았다. 특별히 한국에서 80년대에 청소년을 지낸 사람들에게는 법정 스님은 그 어떤 종교를 떠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인생과 삶에 대해 깊은 사색에 있을 때 깊은 산 속에서 만난 나침반과 같은 귀한 존재였다.

새벽 울음이여! / 신 영
고요를 삼켜버린 송광사 사자루의 뜰에는
오랜 고목이 제 살을 발라 먹고 뼈를 세워
두들기지 않아도 소리 내는 목어를 키우고
부르지 않아도 찾아오는 바람은
비어 있는 마음을 두드리며 풍경을 흔든다

물이 없이도 물고기가 자라는 사자루 연못에
샛노랗고 진한 꽃분홍 수줍은 수련이 오르고
새벽을 부르는 달빛은 연못에 몸을 담그고
바람은 산사의 닥나무 틀에 매인 창호지를
흔들며
새벽 예불 준비하는 승려의 장삼 자락을
훔친다

새벽을 두들기는 여린 승려들의 손가락마다
억겁의 시간을 두들기며 공간을 어우르고
법고(法鼓)가 울릴 때마다 빈 가슴에서
울림이 되고
밤과 낮을 가르며 하늘로 오르는
운판(雲板)의 여운이
텅 빈속에서 울음을 내는 목어(木魚)가
새벽을 깨운다

- 순천의 '송광사'를 다녀와서 /2007년 -

몇 년 전 한국 방문 중에 불일암佛日庵)을 찾은 적이 있었다. '불일암(佛日庵)'을 떠올리면 '월든(Walden)'이 오버랩 되어 떠오른다. 법정 스님을 생각하면 데이빗 소로우가 떠오르듯이 자연과 더불어 함께 한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이 그리운 까닭이다. 불일암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산실이 되었던 곳이다. 스님이 홀로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함께 나누며 청빈의 삶을 살았던 곳이다. 물질문명에 젖어 편리함과 편안함에 익숙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때로는 너무 많아서 무엇을 가질까 고민하는 요즘 우리에게는 '무소유'란 의미는 너무도 먼 나라의 전설처럼 쉬이 다가오지 않는다. 요즘처럼 사랑도 삶도 쉬이 가지고 쉬이 버리며 사는 시대에 스님이 몸소 실천하며 삶을 살았던 아름다운 '삶의 노래'들이 더욱 그리움으로 남는다. 세상에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많은 것을 잃기도 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삶에서 무엇이든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심에 부모와 자식이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고부간이나 그 어떤 관계에서의 갈등도 모두가 소유하려는 욕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법정 스님의 귀한 말씀이 이른 아침에 하루의 깊은 묵상으로 다가온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온유란 말이 기독교에서 자주 듣고 쓰는 말이지만, '무소유'를 향한 마음이 바로 겸손과 온유로부터 시작된 마음이라는 생각이다. 자신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무소유 사랑'을 향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삶에서 진정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불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아는 까닭이다
깊은 산 속 작은 암자에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집을 지어 살면서 자연과 사람이 하나의 호흡으로 하루를 맞고 보내며 네 것과 내 것이 따로이지 않음을 익히 스님은 깨달았을 것이다. 홀로 있어도 홀로이지 않은 이유와 함께 있어도 홀로일 수 있는 깊은 삶의 사유를 산문집 '무소유'를 통해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진정 스님은 '무소유 사랑'을 평생 몸소 실천하며 사셨기에 '텅빈 충만'을 누렸던 것이다. 몇 년 전 한국 방문 중에 들렀던 불일암(佛日庵)과 송광사(松廣寺)에서 스님의 흔적을 따라 느꼈던 따뜻한 온기가 오늘따라 더욱 깊은 그리움으로 남는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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