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223회 |
보스톤코리아 2009-11-16, 14:43:23 |
"말하기는 더디 하고 듣기는 속히 하라."는 옛 어른들의 교훈처럼 남의 얘기를 듣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바쁜 세상에 남의 얘기 들을 시간이 있기나 할까. 남의 얘기를 들으려면 여간 지루하지 않다.
"뭔, 얘기를 저렇게 길게 하지!" "또 시작이네. 남편 자랑에 자식 자랑…." 그 긴 얘기, 그 뻔한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의 못마땅한 부분은 다름 아닌 '내 모습'이다. 오래전 속이 답답할 때가 있었다. 처음 결혼 후 시아버지의 호된 시집살이가 있었다. 여느 가정에서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데 시어머니는 편안하고 좋으신 분이셨지만, 시아버지는 힘든 분이셨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화'를 내시고는 이내 '이유'를 만들어 가셨다. 때로는 너무도 당황스러운 상황에 며느리인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남편(시아버지)에게 아무런 말도 못하고 기다림으로 계시는 시어머니가 곁에 계셨다. 며느리인 나는 시아버지의 '별스런 성격'보다도 시어머님의 '답답한 성격'에 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분은 가정에서 '독재자'였다. 시어머님도 남편인 시아버지의 말씀에는 '토시' 하나 달지 못했다. 곁에 있는 며느리야 '언감생심(焉敢生心)' 꿈이나 꿀 수 있을까. 시어머니의 친정 동생들도 형부나 매형에게 의논 한 번 제대로 내어놓지 못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그렇게 결혼 10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시간(결혼 10년의 세월)이 내게는 참으로 힘에 겨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힘겹게 느꼈던 시간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는 삶의 여정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하다고 고백하게 되었다. 우리는 결혼을 손 위의 누나보다도 일찍 하게 되었다. 연애를 죽도록 하다가 결혼을 하겠노라고 선포를 하고 말았으니, 남편이 업스테잇 뉴욕에서 대학을 막 졸업하고 보스턴의 한 대학에서 비지니스 클래스를 1년여 듣고 있던 형편이었다. 경제적인 독립을 시작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는 결혼을 했다. 그렇게 결혼생활이 시부모님의 집에서부터 신혼이 시작되었다. 아이 둘을 낳는 2년 6개월 동안 그렇게 시댁에서 살다가 분가를 한 후 막내 아이를 갖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고 가장 힘겨웠던 시간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생이별'은 곁에 있는 여러 가족에게 마음에 깊은 상처와 멍울을 남기게 되었다. 시아버지는 큰아들의 결혼을 반대하시다가 결국 7년 동안을 큰아들 얼굴을 보지 않고 지냈다. 큰며느리 얼굴은 10년 동안 시아버지와 마주한 일이 없었다. 그 후 10년이 지나서야 서로 화해가 되어 그동안 어두웠던 가정에 환한 웃음이 시작되었고 가정의 사랑과 화목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 누구의 잘 잘못이라고 말할 것도 없는 우리들이 사는 삶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서로 '인연의 굴레'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이어지는 일 말이다. 그 10년 동안의 힘겨웠던 환경에 막내며느리인 나의 속은 까맣게 타들었었다. 그 어디를 둘러봐도 내 얘길 제대로 할 때가 없었다. 모두가 시집 식구들로 둘러쳐진 동네의 공간은 정말 내 편이라고는 찾아봐도 하나도 없는듯한 심정인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누군가에게 속 답답한 얘길 했었더라면 가슴 깊이에 있는 상처는 조금은 엷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쉬이 누군가에게 내 얘길 털어놓지 못했었다. 시집 얘기를 어설프게 잘 못 하면 결국 내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니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삶 가운데 혼자서 속이 상해 답답하고 억울함이 울컥울컥 오를 때 그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렇게 풀어내고 나면 응어리져 답답했던 속은 후련해진다. 누군가 내 억울한 속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져 온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먼저 찾듯이 마음이 아플 때면 언제든지 찾아가 수다를 실컷 떨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누군가의 속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친구이고 치유자이다. Listening the greatest healer(듣는 것이 가장 좋은 치유자)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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