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216회 |
보스톤코리아 2009-09-28, 15:04:43 |
짧은 한국방문 일정 중 문학행사가 전라남도의 '장흥'에서 있어 처음으로 그 고장에 다녀왔다. 행사에는 350여 명의 문학인들과 이 고장의 유지들이 모인 가운데 귀한 만남과 나눔의 시간을 갖고 돌아왔다. 특별히 그 행사에서 고은 선생님을 뵐 수 있어 참으로 감사했다.
장흥은 근현대 한국소설문학의 뿌리로 이어진 여러 선생님들의 작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을 들자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지난해(2008년/69세)에 작고하신 未白 이청준 선생의 '서편제'이다. 또한, 소설이 영상으로 옮겨져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오랜 공명으로 남은 작품 영화 '서편제'(1993)는 남도의 판소리로 그들의 삶 속에 깊숙이 뿌리박힌 애환을 그대로 그린 작품이다. 한국역사의 보편적인 정서를 말하자면 '한(恨)'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 오랜 역사의 그늘에 둥지를 튼 '恨'의 정서를 잘 풀어낸 것이 바로 '판소리'일 것이다. 이렇듯 남도의 판소리는 그들의 삶의 한과 애환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의 가슴 아픈 상처를 달래주었던 것이다. '한과 소리'는 떼어놓을 수 없는 그들의 삶 속에 뿌리박힌 삶의 애환인 까닭이다. 이곳 장흥에서 이청준 선생과 함께 이 땅(고장)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송기숙 선생과 이승원 선생 그리고 한승원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여러 선생들의 작품은 단순히 그 고장의 소설이라기보다는 한국 현대소설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근현대사에서의 우리의 아픔과 애환이 그대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의 삶은 그대로 그 시대의 눌리고 억압받은 민중의 삶을 표현했으며, 우리 역사의 아픔과 현실을 그대로 묵시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장흥 고장은 여느 고장보다 가슴을 쿵덕거리게 했던 곳이었다. 지리적으로 소백산맥의 줄기를 따라 높은 산새를 이루며 겹겹이 둘려진 사자산, 제암산, 억불산, 천관산 등과 같은 명산의 산자락에 가슴은 이미 출렁거리고 있었다. 또한, 그 수려한 산자락을 쫓아 탐진강을 만나고 그 줄기를 따라 정남진, 회진포 그리고 수문포의 바닷길로 이어지는 것이다. 작은 사람의 눈앞에 펼쳐지는 푸른 산과 바다 그리고 남도의 너른 들녘의 장관 앞에 그만 멈칫 깊은 호흡으로 맞는다. 이청준 선생의 생가를 방문하며 소박하고 청렴하고 곧았던 그분의 숨결을 만날 수 있었다. 이청준 선생의 소설에서 만났던 고향과 어머니는 애절한 모자간의 사랑을 넘어 영혼 깊은 곳의 그리움의 뿌리였던 것이다. 절박하고 암울했던 현실을 극복하고, 그 시대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고통에서의 극기를 잘 표현하고 승화시켜 아름다운 노래가 된 것이다. 또한, 현실에서 방황하는 존재와 병든 언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하고 근본적인 비판과 그 시대의 아픔과 상처의 그늘진 곳에서의 해방을 염원하는 간절한 소망의 노래였던 것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고장, 장흥이라고 숨돌리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고장의 맑은 기운이 내 온몸과 마음을 타고 흘렀기 때문이다. 한승원 선생의 작품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선생의 소설 속에는 온 우주만물과 단절되지 않고, 그 어떤 것들과도 받아들이고 융화할 수 있는 우주적 생명질서를 만날 수 있다. 선생이 머무르고 있는 양지 바른 집 뒤에는 부드럽게 둘러쳐진 산새와 푸른 수목들이 있고, 너른 뜰에는 작은 연못과 동백나무 그리고 감나무와 사과나무가 있다. 또한, 눈앞에 훤하게 펼쳐진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했다. 이렇듯 전남 '장흥'은 굳이 소설가, 시인, 소릿꾼, 춤꾼 그 외의 이름이 따로 붙혀질 그 무엇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곳 장흥에 있으면 그 누구도 예술인이 되어 가슴이 뜨거워지고 출렁거리는 것이다. 그 오래도록 흘러온 뿌리를 따라 몸과 마음으로 글을 쓰며 소리를 내는 삶의 춤꾼이고, 노랫꾼이고, 소릿꾼인 것이다. 남도의 한서린 예술혼은 장흥의 고장이 이 시대의 소설문학과 판소리의 정신으로 남아 흐를 수 있는 이유이다. 문학과 예술은 언제나 지금의 처한 삶(현실)에서 답을 찾기보다는 내일을 묻고 또 물을 수 있는 물음인 까닭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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