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보스톤코리아  2009-07-20, 14:13:44 
멀리 있으면 더욱 그리운가 보다. 떨어져 있으면 더욱 보고 싶은가 보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다 보면 계절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훌쩍 지나쳐버리고 만다. 고향 하늘이 그리워 무심히 타향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고향과 타향 이전의 영혼 깊은 곳에서의 그리움일 것이다. 어린 유년의 뜰을 거닐며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버릇도 아마도 그로부터 시작된 일일 것이다.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의 갈증이 그리움이 되어버린 일 말이다.

여름 방학 중 한국을 방문한 때가 있었다. 고향 하늘이 그리워 한국을 방문하면 이제는 부모도 형제도 아는 이 없는 고향 땅, 시골에 한 번씩 가곤 한다. 이제는 나를 알아봐 줄 사람들도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남아서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올려다보던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수풀 우거진 산과 푸른 강 소슬 거리며 살랑이던 바람과 숲, 들판의 들꽃과 들풀 모두가 그리운 친구들이다. 고요한 마음으로 눈을 감으면 언제나 찾아오는 내 분신 같은 영혼의 친구 내 마음을 달래주는 귀하고 소중한 친구들이다.


내 어머니 무덤가에

당신께 가는 길
무작정 담긴 그리운 마음
오랜 세월에 씻긴 황톳길에
숭숭 뚫린 자갈들이 솟아있고
장맛비에 깊이 팬 남은 자국
골 깊은 그리움 더욱 시립니다
신작로 지나는 바람에도
귀 기울인 당신의 기다림을
가슴으로 만나봅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저토록 하얀 그리움을 꽃으로 피웠으니
초록의 나무들 무성하고
당신을 찾아드는 길목에
하얗게 마중하던 개망초를 보았습니다
작은 꽃잎들이 모여 눈꽃을 만들고
멀리서 찾아온 막내딸을 마중하는
당신의 마음인 줄 알았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반기던 개망초
오늘도 하얀 그리움으로 피었습니다
오랜 기다림에 그리움의 꽃으로.


어머니는 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리고 아버지가 누워계신 산소에 앉아 딸자식에게 하신 말씀이 있었다.

"얘들아, 내가 죽으면 나는 5년만 아버지 곁에 있게 해다오."
"마음 같아서는 화장을 해달라 하고 싶은데…."
"동네 어른들께 자식된 도리로 혹여 너희가 욕될까 싶어 하는 말이다."
"5년만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아버지와 엄마를 화장해 주렴." 하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었다.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성격이 강직하신 편이었다. 아버지의 성품이 조용하신 이유로 어머니의 삶은 어쩌면
많이 바쁘셨는지도 모른다. 아들자식을 셋이나 낳고도 못내 키우지 못한 죄罪와 한恨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사셨던 내 어머니.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가신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아직 우리 딸 넷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워계신 산소를 옮기지 않았다. 어머니가 염려하셨던 이유 때문은 아닐 게다. 아들자식이 없었던 두 노인네 산소를 외손자들이 때가 되면 찾아가 벌초를 하곤 한단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부모님의 벌초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방문하면 꽃 한 다발 사서 들고 시골에 모셔진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는 불 효녀이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떨어져 살았던 철없는 막내딸의 걱정과 염려 그리고 그리움으로 나날을 기다림으로 보내셨으리라.

한 여름날 고향 땅에 누워계신 아버지 어머니 산소를 찾게 되었다. 요즘이야 시골길도 차들이 다 들어갈 수 있어 참으로 편안하다. 언제나 그리운 시골 냄새, 흙내 가득한 논두렁 밭두렁을 사이에 두고 차창 문을 모두 열어 놓았다. 어려서 엄마 따라 올라보았던 시골길이었는데 이제는 차를 타고 오르니 그 느낌은 조금은 싱겁다는 생각을 했다. 우거진 수풀 사이 샛길에 차를 세워두고 아버지 어머니 누워계신 곳을 바라보니 가슴 속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핑 돈다. 오래도록 차올랐던 그리움을 알기라도 하듯이 수풀 사이에 하얗게 핀 개망초가 환하게 반겨준다.

내가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날보다 어머니가 더 막내딸을 그리워했을 그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치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때 때마다 그 그리움을 달래느라 얼마나 많은 날 눈물을 흘리셨을까, 하고 생각하니 가슴에 아파져 왔다. 늦은 막내라고 어머니는 설거지 한 번 시키지 않으시고 아버지는 꿀밤 한 대 주신 적 없으시다. 내 욕심만 부리고 살았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늙은 부모님께 죄스런 마음이 남는다. 이맘때 즘이면 아버지 어머니 누워계신 고향에는 개망초 하얗게 피고 있을 게다. 멀리 있는 막내딸의 그리움을 달래며 기다림으로 계실 게다. 오늘처럼 아버지 어머니 그리운 날에는 개망초 하얗게 피던 그날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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