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04회 |
보스톤코리아 2009-06-29, 14:13:52 |
언제부터인가. 한국을 방문하면 산사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는 지인들이 그림이나, 글 그리고 춤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발길 닿는 곳이 절이 되곤 했었다.
그분들로부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오곤 했다. 세상과 벗하며 욕심을 내려놓은 모습은 배우고 싶었지만 그리 생각처럼 쉬이 되지 않는다. 언제나 이유를 들추며 현실에 대한 불만과 속상함으로 있지만, 그것은 핑계일 뿐이다. 아직은 먼 여행길이지만 그 여행길이 조금은 가벼우면 좋겠다. 오늘도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수덕사(修德寺)에는 두 번 정도 가보았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의 오랜 생활만큼이나 고향의 그리움은 더욱 깊어간다. 이제는 세상을, 사람을, 삶을 조금은 눈치로 알아차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 낯선 곳의 사찰보다는 익숙한 교회당에 많이 머물렀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세상의 나이가 들어차서야 처음 둘러보는 수덕사는 내게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물론 그 길을 안내해주셨던 내가 좋아하고 마음이 잘 통하는 선생님과의 동행이 즐거웠고 처음 둘러보았던 그곳의 추억이 아주 오래도록 남아 흐른다. 산사를 오를 때의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다. 절이 산 위에 있다는 것이 가끔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산사를 오르며 가파른 언덕길에 몸이 힘에 부치는 느낌이 들 즈음 마음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우주 공간에서 자연과 하나인 나를 만나는 일은 그 어느 곳에서보다 산을 오를 때에 강한 느낌을 받는다. 하늘과 더욱 가까워지고 세상과 더욱 멀어지는 순간 황홀함이 밀려들기도 한다. 산사를 오르는 일은 산길을 오르며 마음이 이미 씻기고 맑아지기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의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수덕사에서의 처음 느낌이 바로 그랬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송골송골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고 마음에 가득한 행복도 젖어 차오른다. 한참을 오르니 치지 않아도 가슴에 울림으로 남아 흐르는 범종(梵鐘)이 바람을 흔든다. 기다림을 잊어버린 세상을 향해 일깨우는 소리, 마른 물고기 뱃살을 발라먹고 두들기는 목어(木魚)는 바람을 타고 있다. 얇은 염치에 굳어버린 양심은 동심원을 그리며 울음을 내고 둥둥 거리는 법고(法鼓)의 울림이 세상을 향해 멀리멀리 퍼진다. 모두가 흐른다. 범종도, 범종이 흔들던 바람도, 뱃속이 텅 빈 목어도, 법고의 울림도 그리고 우리의 마음도 모두가 흐른다. 대웅전을 오르는 계단에서 잠시 멈춰 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나 자신과 점점 멀어진 저 아래의 세상과 점점 가까워지는 또 하나의 세상 사이에서 문득 멈춰 선 나를 보았다. 칸칸이 정성스레 쌓여 올려진 돌계단을 올라 대웅전 앞에 서니 말없이 서 있는 삼층 석탑을 만났다. 세상의 오랜 그리움을 쌓아올린 삼층석탑에는 묵은 기다림에 젖은 이끼들이 검붉게 타들고 숭숭 뚫린 가슴마다 동여맨 자국이 보인다. 삼층 석탑에서 바로 나를 보았던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옮기며 가슴에서 차오르던 기쁨과 설움은 바로 황홀감이었을 게다. 삼층 석탑을 지나 추스르지 못한 마음을 달래며 대웅전을 향해 걸었다. 웅장하게 펼쳐진 대웅전 안의 모습은 낮은 첼로 음을 두들기듯 가슴을 더욱 깊이에서 흔들었다. 난생처음 눈을 마주하고 제대로 바라보았던 불상의 눈이었다. 순간 도망칠 줄 알았는데 그 눈의 깊이를 더욱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곁에서 이 순간을 눈치채지 못한 선생님은 구경꾼처럼 서 계신다. 그날 처음 수덕사에서 불상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고 왔다. 하지만, 그 불상의 눈은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대웅전 뜰을 한 바퀴 돌며 깊은 생각과 잠시 마주한 시간이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동행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대웅전 뒤뜰을 따라 오르니 작은 오솔길이 열리고 풀꽃 따라 걷다 보니 풀향이 가득하고 바람이 실어 다 주는 숲 향기 따라 수덕사(修德寺)의 뒤뜰을 걸었다. 10월의 가을 숲은 넉넉하고 하늘은 파랗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웃음은 환하다. 모두가 자연과 벗하며 마음을 비우니 행복한가 보다. 너도나도 우리가 되어 하나로 흐르는 하루였다. 처음 가보았던 수덕사(修德寺)와 오솔길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추억은 은은한 향기로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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