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192화
보스톤코리아  2009-03-30, 16:01:14 
기다림이란 단어는 막연한 느낌이 들게 한다.

그 기다림이란 나와의 관계에서 만날 수도 있고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정법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기다림 속에는 '인연'이란 깊은 의미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누군가를 몹시 그리워하며 기다려 본 사람은 알 일이다.

그 기다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애타게 하는 줄 그리고 아픔과 슬픔과 고통도 함께 동반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랑이든, 삶이든 간에 기다림은 늘 상처를 동반한다.

서두부터 좀 무거운 느낌이 든다. 아무렴 어떨까. 우리네 삶이 그렇듯 기쁨과 슬픔과 고통과 행복으로 오르내리는 시소처럼 반복적인 것을 어찌할까. 오래전 일이다. 아는 분이 철학 박사님이시다. 그분을 만나면 많은 이들이 주눅이 든다. 그거야, 나라고 예외는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겁먹을 것까지야. "철학이라는 것이 뭐 특별할까?" 싶은 마음에 대답도 초등학교 학생 정도의 대답을 건넨다. 사실, 그 어떤 학문일지라도 사람의 삶과 사람의 도리에서 나오지 않았겠는가. 어렵사리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울 테고, 쉽사리 생각하면 또 쉽지 않겠는가. 우리네 삶과 똑 닮은 것이 철학이지 않을까 싶다.

해마다 반복되는 계절이라고 생활에 바쁘다 보면 그 어느 계절도 특별한 느낌 없이 흘려보내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가 같을 수 있으며 내일의 또 하루가 같을 수 있는가 말이다. 가끔 옆에서 있는 남편은 아내인 나를 보며 감성이 예민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 사람의 무딘 감성으로야 그럴밖에 더 바라지 않는 것이 답일 게다. 물론, 계절의 감각에 민감한 이유도 있을 테지만 이 아름다운 계절과 계절 사이의 이 바람을 어찌 그냥 보낼 수 있겠는가.

긴 겨울을 지나며 봄을 많이 기다렸던 모양이다. 봄눈이 채 녹기도 전에 벌써 마음에서는 노란 수선화를 피우고 있으니 아직도 남은 이 철없는 감성에 감사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어릴 때는 어찌 그리도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 친구와 약속이 있으면 언니 옷을 입고 어른 흉내를 내던 일도 있었다.

요즘 우리 집 막내 녀석이 운전 면허증(driver's license)을 받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곁에서 보는 온 가족이 웃음을 터뜨린다. 특별한 볼일도 없는데 동네 CVS(약국)와 Market Basket(수퍼마켓)을 수시로 들락거린다. 그 아이는 아마도 다 큰 어른이 된 기분일테지.

요즘 우리 집 큰 녀석은 2009년 올가을 대학 입학을 앞두고 어느 학교에서 합격통지서가 날아들까 싶어 우편함(mail box)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열어본다. 대학 입학 허가서를 몇 군데 받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심 다른 학교에서의 합격통지서를 받고 싶은 것이다. 물론, 곁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로서 더욱 간절한 마음이다. 그 간절한 기다림 끝에는 기쁨도 있을 테지만 허탈과 좌절도 있음을 알기에 마음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함께 기다리고 있지만, 그 기다림에 속이 타는 녀석을 보면서 엄마의 기다림은 더욱 애를 태운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이 시간이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그 간절함으로 기다렸던 기다림의 시간이, 아직도 갈 길이 먼 인생 여정에서 더욱 깊어지고 맑아지기를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어느 날, 어른이 되어 제 자식에게도 그 '기다림의 미학'을 일러줄 때 그때에는 그 아이도 제 어머니를 기억하리라. 기다림이란 어쩌면 오래된 미래의 약속으로 되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나(我)로 돌아가는 길 가운데 만나 나누는 시간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 기다림이란 것은 '홀로인 나(我)'로 돌아가는 길인지도. 결국, 기다림이란 나를 찾아가는 길이지 않을까. 오랜 기다림의 시간에 너도 만나고 나도 만나고 우리로 만나 걸어가는 길 말이다. 내 속에는 내 어머니도 살고 내 딸도 살고 있다. 아주 오래전 살았던 내가 그리고 먼 미래에 살 내가 함께 사는 것이다.

기다림은 또 다른 기다림을 마련하면서 그 기다림에 이름 하나하나씩을 붙여주는 것이다. 꿈, 희망, 소망의 각지지 않고 모나지 않은 이름으로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네가 있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긴 기다림 후에 만나는 반가움처럼, 고통 후에 오는 환희처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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