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시보기-사가현 III
보스톤코리아  2009-03-30, 15:46:30 
사가(佐賀)현의 가라츠(唐津)항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가카라시마(加唐島)라는 조그만 섬이 있다. 서기 461년에 이 작은 섬에서 한일 고대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사건이 있었다.

백제 25대 무령왕이 이 섬의 바닷가에 있는 한 동굴에서 태어난 것이다. '왕자가 탄생한 곳이 왜 이국땅의 동굴인가?' 하는 의문점은 당시 한반도의 정세를 알게 되면 납득할 수 있다.

당시 백제의 21대 개로왕은 바둑 두기를 몹시 좋아했었다. 이러한 허실을 감지한 고구려의 장수왕은 바둑 고수인 도림이라는 중을 백제에 첩자로 파견하고, 개로왕은 도림과 바둑에 미쳐서 국고가 탕진되고 민심이 이반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기회를 포착한 고구려의 백제 침공이 임박해서야 심각한 국면을 깨달은 개로왕은 신라의 원조를 구하지만 결국 장수왕에게 잡혀 왕비, 왕자와 함께 한강변의 아차산에서 참수를 당하고 만다. 여기까지가 삼국사기에 적혀 있는 내용이고 일본 서기에 그 후편이 적혀 있다.

고구려의 위협뿐만 아니라 국내의 민심조차 왕에게서 멀어지자 개로왕은 일본에 백제의 후왕(侯王)으로 가 있던 아우 부여곤지(昆支=좌현왕)를 위례성으로 불러들여 아주 심각한 지시를 하게 되었다.

자신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던 후궁 한 명을 아우인 부여곤지에게 짝지어주면서 왜국(倭國)으로 데려 갈 것을 지시하고는 장차 태어날 아이의 장래를 부탁하였다.

곤지는 형의 부탁을 받들어 자기 아내가 된 형수를 데리고 왜국으로 오는 도중에 규슈 축자(築紫)의 각라도(지금 사가현 가라츠시 가카라시마)에 도달할 즈음 갑자기 산기가 돌아 사내 아이를 출산하였다(서기 461년).

곤지는 그 아이의 이름을 섬에서 태어나서 '섬임금'이라고 지었다. 일본 서기에서는 도군(島君: Sum Gun)으로 이두표기 되어 있다. 일본 사람들이 'ㅁ' 받침 발음을 못해 '섬' 대신 시마로 불렀고 이것을 한자로 지은 것이 사마(斯麻)가 되어 그를 사마왕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상이 일본 서기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개로왕은 10여년 뒤에 결국 죽임을 당하고 사마왕은 부여 곤지가 백제의 후왕(候王)으로 있던 왜국의 나니와에서 살게 되었다.

그가 16세가 되던 해에(서기 477년) 부여 곤지가 야마토를 떠나면서 후왕의 자리를 사마왕이 물려 받게 된다. 40세 때에 동성왕의 뒤를 이어 백제왕이 될 때까지 24년 동안 왜국의 무왕(武王)이 되는 것이다.

서기 478년, 그가 왜국의 무왕으로 송나라에 보낸 표문에는 '자신의 친부 제왕(개로왕)과 자신의 형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한 것 때문에 긴 세월을 거상(居喪) 중에 있었지만 이제는 고구려의 침략에 결연히 대처하겠다.'는 내용이 송서(宋書)에 적혀 있다.

송서에는 무왕 이전의 100년 동안에 왜국을 통치했던 왜왕들의 이름이 '참, 진, 제, 홍, 무'였다고 적혀 있다. '홍'은 사마왕에게 왕위를 넘겨준 부여곤지였고, '제'는 표문에서 보듯 개로왕으로 되어 있다. 개로왕과 무령왕은 일본 후왕으로 있다가 백제왕이 되었던 것이다.

일본 서기의 백제신찬에서 사마왕이 개로왕의 아들로 되어 있고 송서(宋書)에도 사마왕이 개로왕을 친부로 부르고 있는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사마왕이 동성왕(부여곤지의 둘째아들)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잘못된 기록이다.

서기 1971년에 충남 공주 송산리에서 무령왕능이 발견되면서 모든 것이 정확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무덤 속에서 나온 지석에는 그의 이름이 사마(斯麻)이고 서기 523년에 62세로 사망한 것으로 적혀 있다. 그러니까 무령왕은 서기 461년에 태어난 것이다.

동성왕(東城王)이 즉위한 서기 480년에 그의 나이가 15세 미만이었다고 하는데 그때 무령왕은 벌써 19세가 되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부자관계가 아니고 사촌간이 되는 것이다. 무령왕이 동성왕의 뒤를 이어 백제왕이 된 것을 일본 서기의 백제신찬에 이르기를 말다왕(동성왕)이 백성들에게 무도포학하기에 국민들이 같이 힘을 모아 제거하고 무령이 즉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성왕과 무령왕이 왕권을 다툰 것이다.

삼국사기 동성왕 편에도 왕권쟁탈을 암시하는 문구가 있다. "두 범이 남산에서 싸웠는데 잡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동성왕이 암살당했다는 글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많은 곳에서 애매모호한 우회적인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삼국사기에서 무령왕은 신장이 8척이고 얼굴이 그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 민심이 귀부(歸附)하였다고 했다.

또한 고구려에 빼앗겼던 고토(古土)를 많이 수복하였다. 한국의 소진철 교수는 왜왕무에서 무(武)자를 따오고 백제왕 재임시 중국 양나라로부터 제수받은 령동 대장군에서 령(寧)을 따와 무령왕이란 시호를 사용하게 됐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왜왕과 백제왕을 모두 거쳤던 무령왕은 왜국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였다. 오경박사 단양이(段楊爾)와 고안무(高安茂)를 왜국에 파견하고 많은 문물을 왜국에 전파하였다. 서기 503년에 '인물화상경'이라는 청동거울을 왜나라 왕실의 친동생 오호도왕자(남대역: 훗날의 게이타이 천황)에게 하사하였는데 이 청동거울에는 말을 탄 백제왕과 신하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거울의 바깥 테두리에 48개의 한자로 된 명문(銘文)이 있는데 내용은 "계미년(서기 503년) 8월 10일 대왕(무령왕)시대에 오시사카 궁에 있는 오호도 왕자에게 사마께서 아우의 장수를 바라면서 이 거울을 보낸다."라고 적혀 있다.

원래 고대국가에서 칼이나 거울을 하사하는 것은 중요한 임무를 맡길 때 주는 임명장과 같은 것이다. 백제의 무령왕이 왜국의 게이타이 제왕(弟王)에게 거울을 보낸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인물 화상경은 현재 와카야마 현의 하시모토 시에 소재하는 스타하치만 신사에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보존 되어 있다.

후일에 게이타이가 천황이 되었을 때 무령왕은 딸 수백향(手白香)을 게이타이 천황에게 시집 보내는데 둘 사이의 소생이 후일에 긴메이(欽明) 천황이 되는 것이다. 게이타이 천황 때부터 일본의 천황 승계는 부계승계의 원칙을 지키면서 계속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즉 백제 왕가의 혈통이 일왕가에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2001년 12월 23일에 68회 생일을 맞는 아키히토 일본천황이 "간무 천황의 생모가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이 있어서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느낀다."라고 발언하자 황거를 관장했던 궁내청 관리들이 매우 당황했었다는 후문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와 같은 천황의 발언을 보도하지 않고, 유일하게 아사히 신문만 일황의 발언을 보도했을 뿐이었다. 또 천황은 일본 우익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감수하여야만 했었다.

서기 2004년 8월 3일에 아키히토 일황의 당숙인 아사카노 마사히고(朝香誠彦) 왕자가 충남 공주에 있는 무령왕능을 참배하였다. 아사카노 왕자는 일본에서 가져온 향로와 향의 일종인 1300년 이상된 향나무 뿌리인 심향목을 기증하면서 박물관이나 무령왕능에 전시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성어린 당부를 하였다.

만세일계의 황국사관을 고집하고 있는 일본 우익들의 눈치 속에서 자신의 조상을 마음 놓고 참배할 수 없는 일본 천황가에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이 치졸한 역사 왜곡의 작태에서 벗어나 우정어린 이웃으로 거듭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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