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보스톤코리아  2008-07-28, 09:38:59 
이른 새벽이면 어김없이 말간 노래를 불러주는 새들의 노래와 부엌 창문을 열어 재치며 만나는 싱그러운 바깥 공기와 햇살은 하늘이 주시는 아름다운 하루의 선물이다. 밤새 잠자던 몸과 마음의 모든 세포들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묵상/명상의 시간이기도 하다. 올봄에는 처음으로 부엌 창문 밖에 텃밭을 만들었다. 집 앞뜰과 뒤뜰에 꽃밭을 만들어 열심히 가꾼 경험은 있지만, 텃밭은 처음이다. 그 텃밭도 마음뿐 누가 해줘야 할 텐데 남편은 자신이 없는지 해마다 안들은 척 말이 없다. 올봄에는 가깝게 지내는 아는 아저씨가 텃밭을 하나 일궈주셨다.

세 아이가 어려서는 농장에서 모종 해 놓고 파는 고추나무 세 그루와 토마도 나무 세 그루 그리고 수박을 모종 해 놓은 것을 세 개를 사다가 집 앞뜰 꽃밭에 심어 자라는 것을 보여주곤 하였다. 심어 놓고 자라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어린 아이나 어른인 엄마나 마찬가지였다. 어려서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자랐지만,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에 대해 그리 신기하지도 신비롭지도 않았다. 그저 어머니가 가꾸는 꽃밭 정도로만 느끼고 자랐다. 이렇듯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과 함께 만나는 채소들과의 만남은 신기하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아이 어른이 따로 없을 만큼 세 아이보다도 엄마가 더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다.

텃밭이 생긴 동기는 다름이 아니라, 몇 년 전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이 녀석들이 밖에 나가 자유로이 놀 수 있는 공간을 위해 마련되었던 자리이다. 넓게 둘러쳐진 펜스(fence)는 강아지 두 마리가 껑충껑충 뛰어놀기에 접합한 장소였다. 그리고 강아지 두 마리는 다른 아는 집에 보내게 되었다. 때로는 게으른 것이 득이 되기도 한다. 펜스를 걷어치워야 하는데 게으름 탓에 몇 년을 놓아두었다. 물론, 그 안에서 자라는 잡풀은 무성해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 잔디를 깎아주는 랜스캡퍼(landscaper)도 그 펜스 안에 있는 잡풀은 손을 대지 않아 엉망이었다.

무엇이든 정성의 손길이 닿아야 빛이 나는가 싶다. 그 펜스가 둘러쳐진 잡초가 무성한 풀밭은 가깝게 지내는 동네 아저씨가 손수 잡초를 뽑아주시고 흙을 사다 밭을 일궈주신 것이다. 옆에서 쫓아다니며 "아저씨, 시원한 물이라도 드릴까요? 아니면 시원한 맥주라도 드릴까요?"하고 여쭈며 따라다녔다. 그 정성에 텃밭에 심은 씨앗이 며칠 후에 싹이 오르기 시작했다. 농장에 채소를 사러 다니며 지나다 몇 번씩 보는 일인데 내 집 텃밭이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게는 큰 기쁨이고 감동이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한 번씩 흐르는 바람에 새싹이 자라는 모습이 눈에 띌 만큼 보이는 것이다.

집 뒤뜰에 텃밭을 만드니 가깝게 지내는 동네의 동생이 자기 집에 들깨 모종 한 것이 있다며 깨 모종을 넉넉하게 준다. 밭에 채소들의 종류가 늘었다. 고추, 상추, 오이, 들깨, 토마도가 텃밭을 가득 메웠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이제는 텃밭에 먼저 가는 버릇이 생겼다. 엊그제부터는 처음으로 들깻잎과 상추를 뜯어 식탁에 올렸다. 보는 것도 신기하고 먹는 것도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다. 여느 때처럼 마_에서 사다가 먹는 것과는 마음 자세가 확연히 달라 있었다. 이렇듯 정성에 대한 감사와 기쁨인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는 정성과 밭에 돋아오른 잡초들을 뽑아내는 일은 땅과 내가 하나 되는 기쁨이고 감사이고 경이로운 일이다.

굳이 계산을 따지자면 마_에서 사먹는 것과 뭐 그리 큰 차이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른 아침 텃밭을 찾아가는 마음과 텃밭에 들어가 내 손으로 직접 오이와 고추의 꼭지를 따고 상추를 뜯어오는 일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이렇듯 이른 아침마다 텃밭을 드나들며 내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가 오르니 하루가 즐겁지 않겠는가. 땅에 대한 감사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땅에 숨구멍을 내고 씨앗을 뿌리고 새싹이 자라 꽃을 피우고 꽃 진 자리에 열매가 열려 기쁨을 선사하는 자연에 깊은 감사를 나눴다. 혼자일 수 없는 자연과 하나인 나를 만나는 순간은 황홀감에 젖었다. 마음과 몸의 정성을 들인 것만큼 기쁨과 행복을 선물하는 자연 앞에서 숭고한 마음마저 일렁거린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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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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